인성이 둘째가라면 서러운 KT 외국인투수 웨스 벤자민(31)은 왜 팀 내 선발투수들이 줄부상을 당하는 와중에 돌연 3주 휴식을 요청했을까.
프로야구 KT 2선발 벤자민은 지난 12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더블헤더 1차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1이닝 3피안타 2볼넷 3실점을 남기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사유는 부상. 0-2로 뒤진 2회말 무사 2, 3루 위기에서 두산 헨리 라모스 상대 볼 2개를 연달아 던진 뒤 벤치에 교체 신호를 보냈고, 자진 강판했다. 왼쪽 팔꿈치에 통증이 발생하며 스스로 투구를 중단했다.
벤자민은 경기 이튿날 병원으로 향해 정밀 검진을 받았다. 다행히 뼈, 인대, 근육에서 모두 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의사의 1주일 휴식 소견을 듣고 귀가했다.
KT는 그럼에도 팔꿈치와 전완근에 통증을 호소한 벤자민을 13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다만 이는 당시 기준 열흘이면 회복이 가능할 것이란 판단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KT 트레이닝파트에 따르면 주사 및 약물을 통해 치료가 가능한 수준의 부상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벤자민이 이강철 감독을 직접 찾아 열흘이 아닌 3주 휴식을 요청한 것이다. KT 관계자는 “병원 소견이 따로 없었지만 선수가 3주 휴식을 요청했다. 본인이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호소했고, 감독이 이를 수락했다”라며 “물론 3주는 선수가 정한 기간이라 이보다 복귀가 빨라질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KT 선발진은 시즌 초반 부상 악령에 신음하고 있다. 지난해 소형준의 팔꿈치 수술에 이어 토종 에이스 고영표가 4월 초 우측 팔꿈치 굴곡근이 미세 손상되며 3주 재활 소견을 받았는데 약 40일이 흐른 현재 아직 피칭도 시작하지 않았다. 지금의 재활 속도라면 당초 예정 복귀 시기인 5월 말 컴백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예비 FA’ 시즌을 맞이한 엄상백마저 15일 휴식 차원에서 1군 말소됐다. 엄상백은 14일 수원 롯데전에 선발 등판해 6이닝 2실점 퀄리티스타트 호투했지만 이강철 감독은 “선수 본인이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몸이 덜 풀린다고 해서 휴식 차원의 말소를 결정했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결과적으로 5선발 로테이션 가운데 에이스 쿠에바스 1명만이 생존한 셈이다.
벤자민은 2022년 5월 부상으로 떠난 에이스 윌리엄 쿠에바스의 대체 외국인선수로 KT 유니폼을 입었다. 입단 당시 KIA 타이거즈 에이스 양현종과의 인연으로 주목을 받았다. 2021시즌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양현종과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인연을 맺었고, 이에 이강철 감독이 옛 제자인 양현종에게 벤자민의 정보를 물으며 영입에 도움을 얻었다. 이 감독은 “(양)현종이가 벤자민을 적극 추천했다”라고 뒷이야기를 밝혔다.
벤자민은 기량과 더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인품을 뽐내며 KT에 융화됐다. 본인 스스로 한국어 ‘앱’을 설치해 기본 의사소통을 할 정도의 실력을 키웠고, 평소 행실에서도 선수, 코칭스태프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어느덧 KT에 3번째 시즌을 맞이하게 됐다. 그런 벤자민이 선발진이 줄부상을 당한 상황에서 의사 소견과 달리 3주 휴식을 요청했기에 이강철 감독도 아쉽지만 선수의 요청을 수락했다.
벤자민의 구체적인 재활 플랜도 공개됐다. KT 관계자는 “벤자민이 일주일 정도 휴식을 취한 뒤 2주차부터 공을 던지면서 몸을 만들 계획이다. 3주 후에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다고 보면 된다”라고 전했다.
벤자민과 엄상백의 공백은 일단 불펜 요원 주권과 성재헌이 메운다. 이 감독은 이선우, 조이현, 손동현, 김민 등 수많은 대체선발 자원 가운데 두 명을 택한 이유에 대해 “주권은 그래도 제구력이 있는 투수다. 또 성재헌은 오늘(14일) 2군에서 잘 던졌다는 보고를 받았다. 결정구로 체인지업을 갖고 있다. 제구력도 어느 정도 갖췄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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