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류현진(37)이 다시 한 번 수비 실책에서 비롯된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류현진은 그 누구보다 위기를 막고 싶었을 것. 하지만 실투 하나가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볼배합 싸움에서 완패를 당했다.
류현진은 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84구 8피안타 7탈삼진 5실점을 기록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5회 수비 실책에서 비롯된 빅이닝을 견디지 못했다. 팀의 1-6 패배를 막지 못했고 류현진은 시즌 4패 째를 기록했다. 시즌 평균자책점도 5.65로 급상승했다.
두 번의 우천 취소를 딛고 8일 만에 선발 마운드에 올랐다. 지난달 30일 대전 SSG전에서 6이닝 7피안타 2볼넷 1탈삼진 2실점(1자책점)으로 승리를 거뒀다. 이 승리는 시즌 2승 째이자 통산 100승이었다.
이후 등판이 두 번이나 미뤄졌다. 5일 광주 KIA전 선발 등판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우천 취소됐다. 그리고 7일 사직 롯데전에 다시 선발로 예고되어 있었지만 다시 한 번 폭우로 취소가 됐다.
두 번의 우천 취소를 딛고 이날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등판 루틴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날 류현진은 그런 기색 없이 오히려 힘을 갖추고 더 날카로운 제구력으로 롯데 타자들을 압도해 나갔다. 초반에는 그랬다.
류현진은 1회 실점을 했지만 특유의 위기 관리 능력이 돋보였다. 윤동희와 고승민에게 연속 안타를 맞았다. 정타는 아니었지만 모두 코스의 힘으로 안타로 연결됐다. 레이예스를 투수 땅볼로 요리했지만 주자들의 진루를 허용했다. 1사 2,3루에서 전준우를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면서 점수와 맞교환 했다. 선제 실점을 허용했다.
류현진의 위기는 여기까지였다. 완벽한 피칭을 이어갔다. 실점 이후 계속된 2사 3루 위기에서 나승엽을 삼진으로 솎아내 1회를 마무리 지었다.
2회에는 선두타자 유강남에게 우전 안타를 맞았다. 하지만 김민석와 이주찬을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바깥쪽과 몸쪽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완벽한 피칭을 이어갔다. 박승욱을 2루수 땅볼로 유도하며 2회를 마무리 지었다.
3회부터는 범타 행진이었다. 선두타자 윤동희를 투수 땅볼, 고승민을 좌익수 뜬공, 레이예스를 삼진으로 처리했다. 4회에도 전준우를 2루수 땅볼, 나승엽을 삼진, 유강남을 유격수 땅볼로 요리했다. 2스트라이크의 유리한 카운트를 먼저 선점했고 또 좌타자 상대로도 몸쪽 승부를 피하지 않았다. 과감하게 파고 들었다. 5회 선두타자 김민석까지 삼진으로 요리하면서 10타자 연속 범타 행진을 이어간 류현진이었다.
하지만 1사 후 이주찬에게 1볼 2스트라이크의 유리한 카운트에서 우전 안타를 내줬다. 빗맞은 안타로 범타 행진이 깨졌다. 이후 박승욱에게 다시 중전안타까지 맞았다. 1루 주자 이주찬은 3루까지 내달렸다. 이때 중견수 정은원의 포구 실책이 발생했다. 타자 박승욱이 2루까지 달렸고 세이프 판정. 중견수 경험이 부족한 정은원이 수비를 서두르다가 실수가 나왔다. 1사 2,3루 위기에 몰리면서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내야진은 전진 수비를 펼쳤다. 하지만 윤동희를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처리했다. 추가 실점을 허용했지만 아웃카운트를 추가하며 2사 3루 상황을 만들었다. 아웃카운트 1개만 책임지면 최대 위기를 최소 실점으로 틀어막고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다. 0-2 스코어 정도면 경기 중후반 역전도 가능한 점수 차였다.
하지만 너무 막고 싶었던 의지가 컸을까. 류현진은 힘을 짜냈다. 2사 3루에서 맞이한 고승민을 상대로 강하게 몰아붙였다. 초구 145km 패스트볼을 바깥쪽 높은 코스에 꽂아넣었다. 2구 째도 145km의 패스트볼을 한가운데로 꽂았다. 2스트라이크의 유리한 상황을 선점했다. 하지만 류현진은 조급했다. 2개의 패스트볼에 반응이 없는 고승민을 보고 3구째도 패스트볼을 선택했다. 145km의 패스트볼. 하지만 한 가운데로 몰렸고 고승민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좌익수 옆으로 날카롭게 뻗어가는 적시 2루타로 연결됐다. 이 타구를 허용한 뒤 류현진은 너무 아쉬운 듯 했다. 마운드 위에서 별 다른 감정 표출이 없는 류현진은 펄쩍 뛰면서 성급했던 정면 승부에 아쉬움을 내비쳤다.
경기 후 고승민의 말을 들어보면 류현진은 볼배합 싸움에서 완패를 했다. 고승민은 “첫 번째 타석에서 제가 커터를 쳤고 두 번째 타석에서는 체인지업을 쳤다. 패스트볼 타이밍에는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패스트볼 타이밍으로 치면 될 것 같았다”라면서 “앞에서 (김)민석이나 (나)승엽이에게 패스트볼로 위닝샷을 던지시더라. 그래서 두 번째 타석까지 초구에 변화구가 왔는데 3번째 타석에서 초구 패스트볼이 오고 2구도 패스트볼을 던지셨다. 거기서 늦다고 판단해서 패스트볼을 또 하나 던질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해서 좋은 결과가 있었다”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고승민과의 승부가 이날 경기의 승부처이자 분수령이었다. 류현진은 이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강철 멘탈도 이렇게 흔들렸다. 레이예스에게 중전 적시타, 전준우에게 우중간 적시 3루타까지 내줬다. 순식간에 4실점. 0-5로 스코어가 벌어졌다. 류현진은 고개를 떨궈야 했다.
천하의 류현진도 볼배합 싸움에서 완패를 했고 실투까지 던지면서 스스로 무너졌다. 모든 노력이 물거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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