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슈퍼팀 뒤에는 '슈퍼감독'이 있었다. 전창진 부산 KCC 감독이 '명장'의 품격을 보여주며 16년 만에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부산 KCC는 5일 오후 6시 수원KT아레나에서 열린 2023-2024시즌 정관장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7전4선승제) 5차전에서 수원 KT를 88-70으로 제압했다.
이로써 KCC는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을 거머쥐며 통산 6번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지난 2010-2011시즌 이후 13년 만의 정상이다.
정규시즌 5위 팀 우승이라는 새로운 역사도 탄생했다. KCC는 개막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지만,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호흡 문제로 생각보다 강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전창진 감독도 팬들의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엔 해피엔딩을 만들었다. KCC는 시즌 막판부터 화력을 뽐내기 시작하더니 플레이오프(PO) 무대에서 진짜 날개를 펼쳤다. 6강 PO에서 서울 SK를 가볍게 눌렀고, 4강 PO에서는 정규시즌 챔피언 원주 DB까지 잡아냈다.
한 번 불붙은 KCC의 기세는 챔프전에서도 꺾일 줄 몰랐다. KCC는 적지에서 열린 1차전부터 승리하며 기선을 제압했다. 3쿼터 초반 15-0런을 만들며 일찌감치 승기를 잡았다.
물론 KT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허훈과 패리스 배스 '원투펀치'가 맹활약을 펼치며 2차전을 가져왔다. KCC는 97점을 넣고도 101점을 올린 KT에 승리를 내주고 말았다.
부산으로 돌아간 KCC는 곧바로 미소를 되찾았다. 치열한 접전 끝에 3차전과 4차전을 내리 따내며 시리즈 3승 1패를 만들었다. 우승까지는 단 한 걸음만 남은 상황. 역대 챔프전에서 3승 1패를 기록하고 우승하지 못한 팀은 단 하나도 없었다.
굴욕의 새 역사를 쓰느냐 혹은 영광의 새 역사를 쓰느냐의 갈림길에 선 KCC. 8부 능선을 넘은 만큼 방심할 수도 있었지만, KCC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다시 찾은 수원에서도 승리를 거머쥐며 3연승으로 왕좌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전창진 감독이 말한 마지막 10%를 채워준 선수는 한둘이 아니었다. 허웅이 21점을 쓸어담았고, 라건아도 20점 9리바운드로 펄펄 날았다. 최준용도 17점 7리바운드로 포효했다. 전창진 감독이 강조한 대로 누구 하나 욕심 부리는 선수가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전창진 감독이 있기에 가능한 우승이었다. 허허 웃으면서도 날카로운 전략으로 KT를 꿰뚫은 그가 아니었다면 KCC의 우승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전창진 감독은 1차전서부터 '옛 제자' 송영진 KT 감독 앞에서 스승의 품격을 보여줬다. 그는 경기 전 예고한 대로 허훈과 배스가 아니라 다른 득점원을 묶는 데 집중했고, 전반에 라건아를 아끼면서 버틴 뒤 후반에 승부를 갈랐다. 배스를 불러내기 위한 깜짝 드롭존도 100% 효과를 봤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창진 감독의 생각대로 흘러간 경기였다.
전창진 감독은 이후로도 선수들 체력을 적절히 안배하는 '슈퍼 로테이션'과 유연한 수비로 KT를 무너뜨렸다. 때로는 선수들을 북돋우는 말로 각성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4차전 전반 내내 밀리던 KCC가 3쿼터에 뒤집을 수 있었던 비결도 "너희들은 강하다. 절대 지지 않는다"라고 격려한 전창진 감독의 한마디에 있었다.
송영진 감독도 스승을 상대로 멋진 사제대결을 펼쳤지만, 청출어람을 쓰진 못했다. 그는 생애 처음으로 밟은 챔프전 무대에서 끝까지 도전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스승의 벽을 넘진 못했다. 이제는 다시 스승과 제자 사이로 돌아가 소주잔을 기울일 전창진 감독과 송영진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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