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에는 KBO리그 어느 팀에 내놓아도 밀리지 않을 마무리투수가 있다. 지난달 초 마무리로 승격된 우완 주현상(32)이 그 주인공으로 올 시즌 14경기 2승2세이브2홀드 평균자책점 0.57을 기록 중이다. 15⅔이닝 동안 안타 9개, 볼넷 1개만 내줬을 뿐 삼진 12개를 잡으며 WHIP 0.64, 피안타율 .170으로 압도적인 투구를 펼치고 있다.
시즌을 시작할 때 한화 마무리는 박상원이었지만 지난달 5일 고척 키움전부터 주현상이 뒷문을 책임지고 있다. 그러나 이날부터 한화의 22경기 중 주현상은 7경기밖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세이브는 2개로 이마저 지난달 16일 창원 NC전이 마지막이다. 이후 한화가 12경기를 치렀지만 주현상에겐 세이브 기회가 없었다.
이 기간 주현상은 겨우 2경기밖에 등판하지 못했다. 지난달 19일 대전 삼성전, 27일 대전 두산전 모두 9회 5점차 리드 상황에 나와 세이브 조건이 성립되지 않았다. 그 사이 한화가 6연패를 당할 때는 일주일 동안 강제 휴업했다. 25일 수원 KT전에선 컨디션 조절 차원에서 불펜 피칭을 자청하기도 했다. 최근 3경기에서도 주현상이 마운드에 오를 타이밍이 오지 않았다. 팀의 확실한 강점인 0점대 평균자책점 마무리를 보유하고도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황이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다.
1일 대전 SSG전에서 그 이유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날 한화는 타선이 4회까지 6점을 폭발한 가운데 선발 펠릭스 페냐가 5이닝 1피안타 3볼넷 3탈삼진 1실점으로 막으며 5회까지 6-1로 넉넉하게 리드했다. 그러나 6~7회 무려 7점을 내주며 7-8로 역전패했다.
6회 가장 먼저 올라온 좌완 김범수가 2사 1루에서 폭투로 추신수를 2루에 보낸 뒤 기예르모 에레디아에게 1타점 적시타를 맞았다. 이어 7회에는 장시환이 올라왔지만 선두타자 안타에 이어 볼넷 2개로 1사 만루 위기를 자초한 뒤 추신수에게 희생플라이로 1점을 내주고 박상원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그러나 박상원은 최정을 볼넷으로 출루시켰고, 2사 만루에서 한유섬에게 좌중간 빠지는 3타점 2루타를 맞으며 6-6 동점을 허용했다. 블론세이브. 이어 에레디아에게 우중간 적시타를 맞으면서 스코어가 뒤집혔다. 위기 상황이 8회에 왔다면 주현상 조기 투입 카드라도 꺼냈겠지만 7회부터 쓰기에는 너무 일렀다.
올해 한화는 19패 중 10패가 역전패로 롯데와 함께 리그에서 가장 많다. 그 중 7패가 7회 이후 결승점을 내준 경기. 7~8회가 각각 3경기씩, 총 6경기를 7~8회 싸움에서 졌다. 만약 6경기 중 절반만 잡았어도 시즌 전체 승률도 5할이 될 수 있었다.
지난해 마무리와 필승조로 활약한 박상원(11G 1패1세이브1홀드 ERA 8.31), 김범수(14G 1홀드 ERA 7.36), 장시환(10G 2승2패1홀드 ERA 5.40)의 동반 부진이 뼈아프다. 박상원과 김범수는 지난달 조정 차원에서 2군에도 다녀왔지만 좀처럼 안정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롱릴리프를 비롯해 전천후로 투입된 이태양(8G 1패 ERA 8.22), 한승주(3G 1패 ERA 15.75)도 좋지 않다. 추격조로 활약을 한 윤대경은 아직 1군의 부름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올 시즌 초반 필승조로 호투를 펼친 한승혁(16G 4패3홀드 ERA 7.07)도 멀티 이닝을 시도할 때마다 흔들리며 2군에 내려갔다. 이민우(16G 1세이브3홀드 ERA 3.46)를 제외하면 현재 믿을 만한 중간이 없는 상황이다.
불펜투수는 1년, 1년이 다르다. 오르내림의 폭이 크다. 시즌 중에도 좋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필승조 재설정이 끊임없이 이뤄지곤 한다. 그만큼 변수가 큰 보직인데 이렇게 한꺼번에 같은 시기에 핵심 불펜들이 동반 부진에 빠지는 것은 흔치 않다. 보직 특성상 새로운 자원이 꾸준히 나오는 자리인데 올해 한화에선 그런 투수도 잘 보이지 않아 앞으로가 걱정이다.
한화가 개막 10경기에서 8승2패로 상승세를 탈 수 있었던 것은 주현상이 6~8회 위기 상황에 투입돼 확실하게 틀어막아준 게 컸다. 멀티 이닝까지 너끈히 막으며 ‘하이 레버리지’ 상황을 극복했다. 그런데 주현상이 9회 마무리로 이동한 뒤 그 자리를 맡아줄 투수가 없다. 이럴 거면 주현상을 다시 7~8회 쓰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팀 내 최고 불펜을 9회에 써야 한다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이 경우 또 9회를 막아줄 투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뚜렷하게 답이 안 나오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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