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KBO리그 최초로 홈 13경기 연속 매진 신기록을 세웠다. 43년 리그 역사상 최초의 흥행 대박 행진을 이어갔지만 잔칫날이 초상집으로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화는 지난 26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홈경기가 오후 6시48분부로 1만2000석 전 좌석이 매진됐다. 지난해 10월16일 롯데와의 시즌 최종전을 시작으로 올해 홈 12경기까지 13경기 연속 만원 관중이 가득 들어찼다.
홈 13경기 연속 매진은 KBO리그 최초 기록이다. 삼성이 지난 1995년 5월9일 쌍방울전부터 6월1일 해태와의 더블헤더 1차전까지 12경기 연속으로 대구 시민야구장을 가득 메웠는데 올해 한화가 29년 만에 KBO 흥행 기록을 바꿨다.
이렇게 의미 있는 날 한화는 5-10으로 패하며 6연패 수렁에 빠졌다. 특급 신인 황준서가 선발로 나섰지만 3⅔이닝 6피안타(2피홈런) 5볼넷 2탈삼진 6실점으로 데뷔 후 처음으로 무너지면서 패전을 안았다. 평소답지 않게 제구가 흔들리면서 볼넷 5개를 내줬고, 수비 실책도 있었다. 슬라이드 스텝에 약점을 노출하며 양의지와 양석환에게 여유 있는 도루를 2개나 허용했다.
황준서야 이제 19살 신인이고, 계속해서 잘 던질 수만은 없다. 그보다 1회 무사 1,2루를 살리지 못한 3~5번 중심타자 노시환, 채은성, 안치홍의 동반 부진이 아쉬웠다. 노시환은 3구 루킹 삼진 당했고, 채은성은 스윙을 하다 멈춘 게 배트 끝에 맞으면서 허무한 1루 땅볼로 물러났다. 안치홍마저 유격수 뜬공 아웃되면서 기선 제압 기회를 무기력하게 날렸다. 25일 수원 KT전 원상현(6이닝 무실점)에 이어 이날 두산 김유성(5이닝 2실점)까지 2경기 연속 신인 투수에게 데뷔 첫 승을 헌납했다.
수비도 흔들렸다. 3회 무사 만루에서 두산 강승호의 우익수 희생플라이 때 우익수 요나단 페라자가 후속 플레이를 느슨하게 하면서 1루 주자가 2루로 가는 걸 지켜봤다. 5회 2사 1,2루에선 투수 한승혁이 2루 견제구를 던진 게 뒤로 빠져 한 베이스씩 공짜로 내줬다. 이후 박준영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으면서 경기 흐름이 완전히 두산에 넘어갔다.
최근 급격한 부진에도 불구하고 1만2000석을 가득 메운 한화 팬들도 경기 후반 승부가 일찍 기울자 하나둘씩 구장을 빠져나갔다. 맨정신으로 끝까지 보기 힘든, 한숨밖에 안 나오는 경기 내용이었다.
한화는 올 시즌 KBO리그 최고의 화제 팀이었다. 시즌 전 메이저리거 류현진이 12년 만에 복귀하며 기대를 한껏 높였고, 7연승 포함 개막 10경기 8승2패로 단독 1위에 오르며 창단 후 최고 스타트를 끊었다. 개막 전 출정식 때 구단 차원에서 ‘리빌딩 종료’를 선언하며 야심 차게 시작한 시즌답게 성적과 인기 두 마리 토끼 모두 잡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한화의 봄은 짧아도 너무 짧았다. 지난 5일 고척 키움전부터 최근 18경기에서 3승15패(승률 .167)로 믿기지 않는 추락을 거듭하며 8위로 내려앉았다. 한때 승패 마진 +6이었지만 어느새 -6으로 떨어지며 10위 롯데(8승18패1무)에도 2경기 차이로 쫓기고 있다.
개막 극초반 기세가 너무나도 폭발적이었기에 믿기지 않는 부진이다. 그 사이 유격수 하주석(햄스트링), 투수 김민우(팔꿈치), 포수 최재훈(옆구리) 등 주력 선수들의 부상 악재가 있었지만 이 정도로 무너질 줄은 몰랐다. 기복이 있긴 하지만 나름대로 버티고 있는 선발진에 비해 불펜이 집단 난조를 보이고 있고, 타선은 팀 타율(.248) 10위로 떨어졌다. 도루(7개), 성공률(38.9%) 모두 최하위로 치는 것 외에는 득점을 낼 방법이 없는데 이마저 막히고 있다.
선수들의 표정이나 움직임에도 쫓기는 기색이 역력하다. 세계 최고 무대 메이저리그에서도 웬만해선 동요하지 않고 덤덤한 표정으로 평정심을 유지하던 류현진도 지난 24일 수원 KT전에선 경기 중 ABS 판정에 흔들리며 포커 페이스가 되지 않았다. 이튿날 평소 그답지 않게 ABS존에 공개적인 불만을 터뜨린 것도 한화의 무거운 팀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최원호 한화 감독도 “아무래도 최근 연패를 하다 보니 팀 분위기상 선수들이 예민해진 게 사실이다. 선수들도 이기려고 하는데 그런 걸로 인해 (경기가) 그렇게 되니까 조금 더 예민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코칭스태프뿐만 아니라 선수들도 큰 중압감 속에 공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야구는 멘탈 게임이라고 하는데 이런 분위기에선 선수들 플레이가 경직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