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이 '동조자'에 대한 작품 비하인드를 전했다.
18일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는 쿠팡플레이 독점 HBO 오리지널 리미티드 시리즈 '동조자'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이날 박찬욱 감독은 “외국에서 작품을 만들고 발표하려다 보니, 혼자서 오게되었다. 배우도 있고 그래야 재미있는데, 혼자하려니까 고독하다”라고 너스레를 떨며 첫 인사를 전했다.
‘동조자(The Sympathizer)’는 자유 베트남이 패망한 1970년대, 미국으로 망명한 베트남 혼혈 청년이 두 개의 문명, 두 개의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겪는 고군분투를 다룬 이야기로, 원작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호아 쉬안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산드라 오 등의 출연과 박찬욱 감독의 신작으로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다.
지난 15일 공개된 1화에서는 패망을 앞둔 자유 베트남에서 공산주의 스파이로 활동하는 주인공 ‘대위(호아 쉬안데)’가 암약하는 공산당 간첩을 색출하는 임무와, 또 한편 자유 베트남 군사 기관의 기밀 정보를 북으로 빼돌리는 임무를 동시에 수행하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원작 소설을 드라마화한 것에 대해 박 감독은 "극장용 영화가 아니라 시리즈를 만드는 데에 있어서, 영화가 따라올 수 없는, 많은 인물을 다룰 수 있다는 점이 있다"라고 운을 떼며 "일단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은 소설에 많이 적어놓지 않나. 행동과 대사로 이뤄지는 영화 대본과는 다르다. 이것을 영화로 옮기기에는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대위가 강압에 의해 진술서를 쓴다’는 기본적인 세팅이 있었고, 이를 강요한 사람이 써놓은 것을 읽고 대위에게 심문하는 시간이 있다는 장치가 있었다. 이 두 가지 장치를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내러티브 장치를 설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또 코미디를 많이 만들려고 노력했다. 원작에도 문학적이고 재치 있는 표현, 흥미로운 비유를 동원에 유머가 곳곳에 있지만, 그것 이상의, 인물의 얼굴을 보고 환경, 공간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문학에는 없는 요소,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모두 동원했다. 이 상황을 가지고 있는 부조리한 상황을 드러낼 수 있는 유머를 최대한 만들려고 했다. 그냥 웃기는 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이상한, 비극적이기도 한 상황에서도 벌어지는 씁쓸한 유머가 있지 않나. 그게 저는 제일 중요하다고 봤다. 소설과 제일 다르고, 제가 제일 노력해서 다르게 만든 부분이 있다면 ‘코미디’라고 말할 수 있겠다"라고 강조했다.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도 놓치지 않았다. 박 감독은 "원작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를 각색할 때 정리하지 않고, 모두 등장시키며 모든 인물의 매력을 드러내려고 했다. 제가 주인공 빼고 가장 애착을 가진 캐릭터는 ‘장군’이다. 이 사람은, 제가 만든 표현인데, 왕관을 쓴 광대다. 그런 표현대로, 언뜻 보면 우스꽝스러운 광대 같은 면이 있는데, 사실 그의 직업과 일을 보면 잔인하고 무서운 사람이다. 하지만 대위에게는 아버지같이 자애롭달까, 그런 면도 보여주는 사람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위에게 베트남 아버지가 장군이라면, 서양 세계를 대표하는 아버지는 클로드라는 인물이다. 이 사람도 무서운 사람이다.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하나의 개인으로서, 사상에 있어서는 대위에게는 또 다른 아버지다. 그리고 미국의 재밌고 풍부한 대중 문화를 소개해 주는 인물이다. 그래서 대위의 분열된 자아를 이끌어서 더 분열 시켜주는 사람들인데, 대위에게 중요한 것뿐만 아니라, 시청자에게는 한명 한명이 나름의 개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부연했다.
'동조자'는 돈 맥켈러와 박찬욱 감독이 각본에 참여한 가운데, 1~3화는 박찬욱이 연출을, 4화는 페르난도 메이렐레스가, 5~7화는 마크 먼든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이에 박 감독은 "저도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다 하고 싶었지만, 7개를 다 하는 건 좀 무리더라. 체력으로나, 일의 진행 상황을 봐서도, 각본을 미리 써놓는다고 해도, 많은 관계자들의 지적, 요구, 변수도 등장하고. 수정해야 하는 일이 생기고, 앞부분을 찍는 동안에도 뒷 분량은 아직도 써야 하는 상황이라,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른 감독을 기용해야 했을때, 좋은 감독을 모셔서 다행이다. 각본은 제가 쓰니까, 그러다 보니 전체의 일관성을 거기서 담보가 된다"라고 전했다.
박 감독은 "제가 연출하지 않은 에피소드를 담당한 감독을 만나서 미리 다 이야기 했다. 의도를 한줄한줄 다 이야기 했다. 다만 예외는, 네번째 에피소드를 맡은 감독이다. 그 분을 모신 이유는, 그 에피소드는 완전히 독립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그것은 좀 다른 스타일의 감독이 하셨으면 해서 그분을 모셨다. 지금 업계에서 저와 그보다 반대된 스타일을 가진 감독은 없을거다. 마침 그게 7개 중에 딱 한복판에 있는 에피소드라 더 잘 됐다. 아주 활기있는 연출을 보여주실거다. 나머지 세개를 맡은 감독님께는 저와 같은 톤을 요구했다. 아주 자주 소통하고, 각본 쓰지 않을때는 현장에 제가 가서 함께 의논했다. 제가 먼저 찍었다 보니, 그 분량을 계속 보게 하면서 스타일을 익힐 수 있게끔 했다. 후반 작업은 제가 하니까, 4화를 빼고는 한 감독이 만든 것 같은 균일한 톤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글로벌 프로젝트에 대한 비하인드도 전했다. 박 감독은 "영화 만드는 것은 사실 한국에서 할때와 근본적 차이는 없다. 영화만드는 방식은 어디나 같기 때문이다. 또 이 업계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다 비슷하다. 배우들은 배우들대로 나름의 다른 종족이지만, 배우들끼리는 다 비슷한 것 같더라. 사용하는 용어도 비슷하다. 그래서 몇개 용어만 알면 오해없이 소통할 수 있다. 물론 저는 통역이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불편이 없지는 않았다. 그래도 워낙 오래 함께한 사람이고, 잘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통역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바로바로 의사소통이 일어나기도 했다. 베트남 분량은 태국에서 많이 촬영을 했는데, 다들 금방금방 알아듣고 잘 움직이더라"고 전했다.
다만 "어려웠던 점은 캐스팅"이라며 "베트남 배우들을 많이 캐스팅 해야 하는데, 베트남에서는 캐스팅하기가 어려워서, 교포들, 2세들을 주로 많이 캐스팅했다. 정말 어마어마한 노력을 기울였다. 호주, 캐나다, 영국, 아시아 여러 나라에 베트남계 배우들은 물론이고, 배우가 아닌 사람들까지도 대상을 넓혀서 베트남 커뮤니티에 알리고, 수없이 많은 오디션을 거쳤다. 제가 몇 천명의 영상을 봤다. 결국 캐스팅된 사람 중엔 배우가 아닌 사람이 많다. 배우 지망생, 처음 작품을 찍는 사람, 동네 극단에서 작은 역을 해본 사람, 아예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도 많았다. 장군 역은 디즈니의 웹 디자이너였다. 연기를 처음 한 거였다. 소령 역을 한 사람도 있는데, 이 사람은 베트남의 아주 유명한 영화감독이다. 다만 연기는 처음이다. 박찬욱이 어떻게 영화 찍나 보러 왔다고 하더라"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그런 사람 찾는 것도 어려웠고, 그들을 믿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오디션이라는 건 짧게 보는 것 아닌가. 이 사람을 캐스팅하고, 긴 기간 동안 다양한 장르를 해야 하는데 잘할 수 있을까, 심지어는 중간에 힘들다고 도망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도 했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라며 "현장에서 소통할 때도 경험 많은 배우는 한마디면 이해하겠지만, 아는 분들은 기본적인 것을 가르쳐야 할 것도 많았다. 물론 그런 것은 초창기에 모두 끝나긴 했다. 그래서 그만큼 보람도 크다. 전혀 경험 없는 사람들과 만든 작품 아닌가. 저 혼자 한 것은 아니지만, 좋은 배우를 잘 골라냈구나, 하는 마음과 그들을 잘 이끌어서 좋은 배우로 성장시켰구나 싶다"라고 전했다.
한국인으로서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게 된 지점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다. 박 감독은 "한국인으로서 (작품 안에) 한국적 요소를 넣을 이유도 없지만, 제가 미국인도, 베트남인도 아닌 사람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거리감이 있다. 그 시대에 대해 잘 알지도 않고, 아주 모르지도 않는다. 세대로 보나, 인종으로 보나, 모든 면에서 ‘어느 정도는 알지만, 동일시하지는 않는’ 입장이기 때문에 객관성을 헤치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동병상련의 마음도 있고, 대위가 매몰되어 있는 미국의 대중 문화에 대해서도, 저도 어느 정도 그 마음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리즈를 만들기에 적당한 수준의 거리감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한 그런 저의 정체성을 잘 유지하고 활용해서 만들려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자격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라는 질문에는 "그런 자격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잘라 말하며 "작가가 어떤 소재를 취하는 데에 있어서 꼭 그 집단에 속해야 한다던가, 그것에 자격이 있다고는 생각 안 한다. 만약에 어떤 독일인 감독이 와서 한국의 역사를 다룬 이야기를 만들겠다고 하면, 저는 그것을 비웃을 생각은 없다. 궁금할 거 같다. 독일인이 본 한국 사회는 어떨까? 다른 관점이 있을까? 하고 생각할 것 같다. 결국은, 소재가 되는 역사, 사건을 얼마나 진지하게 공부하느냐, 일 것 같다. 저는 원작이 있고, 원작가 님이 살아 계셨기 때문에 많은 대화를 통해 의도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저 나름의 객관적인 관점을 넣어서 제가 할 수 있는 존중, 역사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의 존중을 담고, 제 나름의 영화적 표현을 구상해서 만든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또한 박 감독은 "스스로 자꾸 내가 왜 이런 이야기에 끌리는지 이유를 잘 알기는 어려웠다. (떠올려보면) 저는 사춘기 때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라는 소설 번역을 읽고 굉장히 심하게 반했었다. 그 작품을 영화로 만든 것도 아주 좋아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음모를 꾸민다, 거대한 거짓말을 창조하고 이를 진짜인 것처럼 디테일하게 설계한다, 또 큰 국가나 자본주의, 공산주의 같은 큰 시스템이 투쟁하고 있는 가운데, 개인이 톱니바퀴처럼 종사하다가 비극적으로 파멸한다는 이야기에 깊이 빠졌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 한국의 상황도 반영되어 있을 거도, 개인의 성향도 있었을 것 같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그게 결국 제가 영화감독이 된다는 것과도 연결이 있었던 것 같다. 소설 안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스마일리’라는 마스터가 있지 않나.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영화감독이 하는 일 같다. 제작과 각본을 겸하는 사람과 굉장히 유사하다. 거짓말을 만들고, 진짜라고 믿게끔, 그럴듯하게 만든다. 예산을 따고, 집행할 팀을 꾸린다, 전면에 나서서 사람을 속이게끔 배우, 스파이를 캐스팅하고 훈련한다. 또 여기에 필요한 모든 디테일, 진짜처럼 보이는 사소한 디테일을 설계한다. 그런 것이 비슷한 거 같다"라고 전했다.
특히 박 감독은 "냉전 시대는 스파이-첩보 전쟁이 격화됐고, 흥미로운 이야기도 당연히 많다. 지금은 끝났지만, 신냉전이라는 말도 있고, 절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남한 사회에서의 이념 갈등은 또 얼마나 격렬한가. 생각해 보면, 저에게는 그렇게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진 않는다"라며 "남북한도 내전을 겪고, 이를 둘러싼 강대국도 있었다. 이것은 참 미국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감성의) 대목이다. 보면서는 이해하겠지만, 만들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 우리에겐 숨 쉬듯이 쉬운 일이고, 우리를 둘러싼 공기 같은 환경이다. 그래서 한국인으로서 이런 관점을 넣어서 해야지, 하는 것은 없다. 원작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잘 구현하기 위해서 적어도 미국인 보다는, 잘했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박 감독은 "요즘 시청자들은 한꺼번에 보는 걸 좋아하는 세대지 않나. 하지만 하나씩 공개되는 걸 기다리는 맛도 꽤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볼 때, 다음 주를 기다리는 마음, 끝날 때 마무리를 감질나게 가차 없이 끊어버리지 않나. 이게 어쩌면 싸구려 트릭으로 취급받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게 좋다. 티브이는 그런 맛에 하는 거라고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걸 만끽하기 위해서는기다렸나 보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라며 "남의 나라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느껴지는 바가 굉장히 클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 봐주십사 싶다. 또 유머가 많은 작품이다. 여기서 웃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웃으라고 만든 거다. 그러니 음미해 가면서 봐주시면 좋겠다"라고 관전 포인트를 전했다.
한편 ‘동조자(The Sympathizer)’는 15일 쿠팡플레이를 통해 첫 공개됐으며 매주 1편씩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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