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게 몰아친 폭풍우에도 꺾이지 않았다. 감내키 어려운 시련에 맞닥뜨려도 꿋꿋이 버텼다. 오히려 활짝 꽃을 피우기 위한 밑거름으로 여겼다. 장맛비에 굴하지 않고 땅을 바라보며 짙은 홍색 꽃을 피우는 땅나리일까? 고초를 딛고 맺은 열매는 더욱 달콤하고 값졌다.
0-12! 참혹했다. 0-10! 비참했다. 형용할 수 없는 대패의 나락은 끝이 없을 듯했다. 조롱거리로 전락한 한국 축구였다.
그러나…. 아니었다. 아무도 거들떠보거나 눈여겨보지 않는 음지의 어둠 속에서도, 다지고 다진 생명력은 위대한 반전을 이뤘다. 9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의 눈부신 꽃으로 만개했다. 전 세계 축구를 통틀어서 오직 하나뿐인 귀중한 과실이다. 올림픽 축구사에 깊이 아로새긴 빛나는 최초의 발자취다.
역시 진리였다. “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음지 된다.” 그 누가 이와 같은 한국 축구의 화려한 비상을 내다봤을까?
이제 더 높은 지경에 발을 내디디려 한다. 두 자릿수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의 신천지 개척에 나선 발걸음이다. 물론, 세계 최초다. 이제까지 아무도 가 보지 못한 세계에, 위대한 첫발을 옮기려는 한국 축구다. 축구팬의 시선을 사로잡을 그 첫발자국이 남겨질 신지평은 2024 카타르 AFC(아시아축구연맹) U-23 아시안컵(4월 15일~5월 4일)이다.
절망의 가시밭길을 헤치고 희망의 나래를 편 한국, 세계 최초 금자탑 세우려
한국 축구가 올림픽 축구 기록사에 올랐다. 그런데 불명예스러운 기록이다. 올림픽 대승 기록의 희생양으로 조명됐다. FIFA(국제축구연맹)가 2024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정리해 발표한 누리집 뉴스난에서였다. ‘역대 올림픽 남자 축구 대승[(10골 차 이상)·Biggest wins at Men's Olympic Football Tournament(by 10 goals or more)]’ 제하의 기사에서, ‘대한민국(Korea Republic)’은 두 차례나 나왔다. 두 번 모두 대승을 거둔 나라의 제물이었다.
첫 번째는 한국이 처음으로 올림픽 마당을 밟은 1948 런던 대회였다. 준준결승전에서, 스웨덴에 0-12로 참패했다. 첫 경기에서 멕시코를 5-3으로 물리치고 승전고를 울렸던 기세를 찾을 수 없었던 한판이었다. 역대 큰 점수 차 경기 목록의 세 번째에 자리한 일전이었다.
두 번째는 16년 뒤 1964 도쿄(東京) 대회에서 일어났다. 조별 라운드(C) 마지막 판에서, 아랍연합공화국(이집트와 시리아 합병국)에 0-10으로 크게 졌다. 모두 여섯 경기가 열거된 대승 경기의 마지막 순위로 꼽힌, 한국엔 부끄러운 졸전이었다.
이 부문에서, 최다 점수 차 경기는 1908 런던 대회에서 나왔다. 8개 팀이 출전해 토너먼트로 펼쳐진 이 대회 4강전에서, 덴마크가 프랑스를 17-1로 유린했다. 지금 FIFA 랭킹 2위인 프랑스와 21위인 덴마크의 위상을 봤을 때,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양상으로 펼쳐진 한판이다. 역시 고난을 헤치고 정진의 길을 걸으면 그에 따른 결실이 뒤따름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 맥락에서, 한국의 올림픽 출전사는 대반전의 극적 묘미를 한결 자아낸다. 세계 축구의 ‘동네북’ 신세였던 시절은 어느덧 역사의 뒤안길에 파묻혔다. 20세기 후반부에 올림픽 연속 출전 기록의 막을 올린 이래 세월의 흐름과 함께 세계 으뜸의 발자취를 아로새겨 가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이 부문에서, 한국은 자신을 상대로 기록 도전의 여정을 계속하는 형세를 보인다. 이미 8년 전 올림픽 최고 기록을 세우고 이후 이를 늘려 가는 발걸음으로 신천지 개척에 여념이 없다. 2016 히우 지 자네이루(리우 데 자네이루) 대회에 나감으로써 최고 기록을 작성했다. 종전 이탈리아가 두 차례 작성했던 7연속 출전 기록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로 말미암아 1년이 미뤄져 열린 2020 도쿄 대회에서 또 일보를 전진했다. 1988 서울 대회 이후 9회 연속 올림픽 본선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물론, 세계 최고의 금자탑이다(표 참조).
15일 막을 올린 2024 카타르 AFC U-23 아시안컵에서, 한국 축구는 거보(巨步)를 내디디겠다는 열망을 부풀린다. 올림픽 기록사에 찬란히 빛날 최초의 두 자릿수 연속 출전에, 힘차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2024 올림픽 티켓이 걸린 이 대회에서, 3위 안에 들면 파리 무대에 오를 수 있다. 자칫 4위에 그치면 CAF(아프리카축구연맹) U-23 네이션스컵 4위인 기니와 플레이오프를 치러 티켓을 따내야 염원을 이룬다. 물론 2020 태국 대회 이후 4년 만에 정상에 복귀하면 금상첨화다.
올림픽 바다에서, ‘황선홍호’는 한국 축구가 쌓아 온 화려한 항해를 이어 가려 한다. 희망봉까지 돛을 올리고 순항을 계속하리라 기대된다. 우리나라 시각으로 오늘 밤(17일 오전 0시 30분) 아랍에미리트(UAE)전에서, 닻을 올리고 대망의 항해에 나선 황선홍호가 어떤 항진의 궤적을 그릴지 궁금하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