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도, 트리플A 평균자책점 1위 투수도 모두 대량 실점으로 무너졌다. KBO리그 타자들의 수준이 결코 만만치 않아 보인다.
지난주 KBO리그의 최대 이슈는 류현진(37·한화 이글스)의 부진이었다. 지난 5일 고척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4⅓이닝 9피안타 2볼넷 2탈삼진 9실점 패전을 안은 류현진은 KBO리그 개인 최다 9실점과 함께 빅리그 커리어 통틀어 첫 9자책점 경기로 무너졌다. 시즌 성적은 3경기 2패 평균자책점 8.36.
키움전에서 류현진은 4회까지 무실점으로 잘 막다 5회에만 7연속 안타 포함 8안타를 맞고 한꺼번에 9실점 빅이닝을 내줬다. 앞서 지난달 23일 잠실 LG 트윈스전, 29일 대전 KT 위즈전에도 그렇고 투구수 60구 이후로 집중타를 맞고 실점을 허용했고, 체력적으로 힘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FA가 된 뒤 계약이 늦어지면서 2월 중순 2차 스프링캠프 때 한화에 합류한 류현진은 청백전과 시범경기에서 3차례 실전 등판을 거쳐 시즌에 들어갔다. 시즌 준비 과정이 무척 짧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아직 완성된 몸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최원호 한화 감독은 “몰리는 공이 많아서 집중타를 맞았다. 70구 이후 구위가 떨어지면 문제인데 구위가 떨어진 건 아니고, 공이 몰린 게 문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개선될 여지가 있다. 투수코치, 배터리코치와 미팅을 통해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앞으로 나아질 것이다”고 제구 문제를 언급하며 피칭 디자인 변화를 예고했다.
외부에서도 류현진의 초반 부진을 단순히 구위나 체력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타자들은 메이저리그 타자들처럼 계속 큰 스윙을 하지 않는다. 대체로 배트를 짧게 쥐고 컨택한다. 메이저리그에선 타자들이 따라나올 만한 체인지업이나 커브에 스윙이 잘 나온다. 류현진도 그런 점에서 한국이 더 힘들게 느껴질 수 있다”고 봤다.
류현진의 헛스윙 스트라이크 비율은 지난해 9.5%에서 올해 6.6%로 떨어졌다. 체인지업이 잘 떨어지지 않는 영향도 있지만 타자들이 노림수를 갖고 들어오는 공이 아니면 배트를 잘 내지 않는다. 큰 스윙보다는 짧고 간결한 스윙으로 류현진 공에 컨택을 한다. 구위가 살아있는 60구 이전까지 힘으로 막을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타자들의 배트에 공이 쉽게 걸린다. 지금까지 류현진이 허용한 안타 23개 중 장타는 2루타 1개뿐으로 나머지 22개는 전부 다 단타였다.
류현진만 이렇게 크게 무너진 게 아니다. SSG 랜더스의 외국인 투수 로버트 더거(29)는 지난 6일 창원 NC 다이노스전에서 3이닝 12피안타 4볼넷 3사구 4탈삼진 14실점(13자책)으로 크게 난타당했다. 1회부터 9실점 빅이닝을 허용하더니 2회 3실점, 3회 2실점을 추가로 내주면서 KBO리그 역대 한 경기 최다 실점 타이 기록 불명예를 썼다.
더거는 이날 사사구만 7개로 제구가 너무 흔들렸지만 안타 12개 중 장타는 2루타 2개밖에 없었다. 가랑비에 옷젖듯 NC 소총 부대에 혼쭐이 났다. 더거도 헛스윙 스트라이크 비율이 지난해 트리플A 12.3%에서 올해 9.8%로 감소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타자들이 배트를 쉽게 내지 않는 데다 불리한 카운트에서 밀어넣다 컨택에 당하고 있다.
더거는 지난해 트리플A 퍼시픽코스트리그(PCL)에서 평균자책점(4.31), 탈삼진(143개) 1위를 차지한 투수다. 극단적인 타고투저 리그에서 경쟁력을 보였고, 복수의 팀에서 영입 경쟁이 붙었던 선수였다. 고점이 높진 않아도 안정성 측면에서 계산이 서는 유형으로 평가됐는데 의외로 쉽게 공략당하고 있다. 주무기 투심이 ABS존에 불리한 구종이라는 점도 악재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3경기밖에 던지지 않았지만 2패 평균자책점 12.86으로 성적이 처참하다.
2~3년 전까지 메이저리그 풀타임 선발, 불펜으로 활약한 윌 크로우(30·KIA 타이거즈)도 3경기에서 2승1패를 거뒀지만 평균자책점 5.40으로 꽤 고전하고 있다. 평균 5이닝 소화에 그치고 있는 크로우는 “주무기 체인지업으로 카운트를 잡거나 맞혀 잡으며 투구수를 조절하는데 상대 타자들이 잘 참는다. 그래서 투구수가 늘고 있다”며 “KBO리그 타자들이 다 좋다. 1번부터 7번까지 모두 상위 타선에 가도 될 만큼 좋은 실력을 갖고 있다. 상위권 리그”라고 말했다.
아직 시즌 초반이고, 몇몇 선수들의 부진으로 KBO리그 수준이 올라갔다고 하는 건 지나친 비약일 수 있다. 하지만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그리고 시즌 후 포스팅을 예약한 김혜성(키움)까지 야수 쪽에서는 꾸준하게 메이저리그 진출 선수가 나올 정도로 타자들의 경쟁력이 상승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