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영화'에 등극한 '파묘'에서 세상 우아한 씬스틸러가 나왔다.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MZ무당'들을 바라보더니 차분한 음성의 영어 대사로 존재감을 과시한 배우 정윤하다.
정윤하는 최근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에서 OSEN과 만나 영화 '파묘'(감독 장재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다. 이 가운데 정윤하는 파묘를 의뢰한 박지용(김재철 분)의 아내로 등장했다.
박지용은 미국에서 성공한 교포로 '그냥 원래부터 부자인 사람' 대우를 받는 인물이다. 자연스레 그의 아내를 연기하는 정윤하는 극 중 미국을 배경으로 한 장면들에 등장했고, 동시에 교포 사회에서도 상류층의 우아함과 차분한 분위기를 보여줘야 했다. 이 가운데 정윤하 특유의 우아한 음성과 출중한 영어실력이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학업으로 인해 2005년부터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지낸 정윤하는 자연스럽게 어학연수로 시작해 영어를 익혔다. 2007년에는 제 51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뉴욕 3LAB에 선발되기도. 역사학과 국제학을 전공하고 기후변화센터에서 인턴까지 경험한 그는 데뷔 전,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국제아동기구를 후원하기도 하며 지성미와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춘 배우였다.
그런 정윤하가 연기에 관심을 가진 시작은 고등학생 진학 시기부터였다. "16세에 안양예고로 시험을 보러 갔는데 떨어지기는 했다"라며 웃은 그는 "그 당시에는 연기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간 거였다. 지금 생각하면 다시 못할 일이긴 한데 이후에 한국에서도 에이전시를 찾아 프로필을 돌리고 미국에서도 찾다가 광고로 먼저 데뷔해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인턴을 하면서도 영화 오디션을 계속 보고 연기에 대한 끌림을 놓을 수 없더라"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우연히 '연극심리치료'를 접하고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나중에는 찾아보기도 하게 됐다. 그게 너무 매력적이었다. 어떤 나의 트라우마적인 상황에 대해서 그 상황을 노혹 배우 두 분이 좋은 나, 나쁜 나를 시연해주면 내가 선택할 수 있더라. 그 상황을. 그러면서 상담을 받는 날도 치료를 받고 시연하는 배우들도 치료를 받아서. 배우가 시청자와 관객한테 이런 걸 해주는 구나 하는 느낌을 받아서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마음까지 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여전히 연기가 재미있다. 열정이 많으니까 통증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성장통처럼. 어느 순간 그 조차도 재미있고 감사한 일이더라. 오디션에 감독님 한분만 앉아계셔도 내 연기를 봐주는 한 명의 관객이라는 생각으로 임하게 된다"라고 밝혔다.
정윤하가 '파묘'를 만나게 된 것 역시 오디션이 계기였다. 그는 "제주도에서 한달살이를 하던 중에 오디션 연락이 왔다. 그 때 여건 상 대면으로 오디션을 못하고 동영상으로 연기를 보내드리게 됐는데 한, 두 달 있다가 역할을 하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서울에 돌아와서 고사도 지내고 선배님들도 뵈면서 인사를 드렸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장재현 감독으로부터 "영어 대사를 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유학으로 다진 영어 연기를 신경 써서 보낸 게 작품과 함께 한 계기가 됐다고.
직접 본 장재현 감독은 어땠을까. 정윤하는 "감독님은 천재인 것 같다"라고 눈을 빛내며 "사실 제 분량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다. 한 줄 두 줄의 대사 정도 있었는데 제가 현장 대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열어주셨다. 그런 와중에 현장에서 경우의 수를 많이 들고 갔는데 영어 대사로 해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을 해주셨다. 그래서 대사들을 현장에서 애드리브로 영어로 다 변경을 했다. 그런 것들이 영화적으로 LA 배경에 있는 캐릭터 특징으로 보이게도 됐다"라고 밝혔다.
또한 "그게 저한테도 포인트가 된 경우다. 감독님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영화적으로도 필요한 이님루이고 저한테도 배우가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장을 마련해주신 거라 글로벌 오픈이 돼서 저한테는 너무 감사했다. 그 방향성을 제제시해주신 게 너무 현명하신 분인 것 같다"라고 거듭 감사를 표했다.
더불어 그는 "감독님은 인간적으로 굉장히 맑고 투명하고, 소년 같은 분이다. 굳이 꼽자면 아티스트들이 이너차일드라고 하지 않나. 그런 것들이 순수하게 지켜진 분들이 저는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을 너무 잘 간직하고 계시더라. 격이 없으시다. 현장에서 제 역할이 크지 않았는데도 기회가 넓어졌다. 배우를 존중해주시고 밥도 같이 먹자고 불러주시고 귀한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정윤하는 이어 "감독님의 전작인 '사바하'를 특히 좋아했는데 두 번, 세 번 더 볼 때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제가 사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불교 철학을 좋아하고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사바하'에 그런 철학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 있어 좋았다. '뒤집어진 세상' 같은 부분이 특히. 이번 작품은 감독님이 의도하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요소들을 더욱 완성도 있게 많이 넣으셨다는 느낌을 받았다. 굳이 전반, 후반으로 나뉘는 분위기도 관통할 수 있도록 일관성 있게 풀어내신 점이 특히 대단한 시도이고 또 훌륭했다. 그걸 조화롭게 융합해서 아웃풋을 보여준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정윤하가 극 중 호흡한 김고은, 이도현은 어땠을까. 그는 극 중 무당 이화림(김고은 분), 윤봉길(이도현 분)을 못미더워 하면서도 이들 덕에 갓난아기 아들이 살아나자 기뻐하는 모습으로 극 전반부 몰입과 분위기의 격차를 보여줬다.
이와 관련 정윤하는 "영화 안에서 김고은, 이도현 배우가 무당 일을 굉장히 익숙하게 해왔다는 느낌을 받았다"라며 함께 호흡한 두 배우에 대해 놀라움을 밝혔다. 그는 "연기적으로 굉장히 욕심을 내면서 강약 조절을 하고 싶은 욕심이 많았을 텐데 실제 그 인물들이 해왔던 것처럼 일상적인 연기로 소화를 잘하고, 또 그걸 계획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모습을 보고 '왜 저 분들이 사랑받는지 알겠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굉장히 세련된 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그는 "김고은 배우는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이다. 같은 여자로서도 닮고 싶은 면이 많다"라며 선망의 시선을 보냈다. 그는 "그냥 있어도 매력이 너무 넘치는데 배우로서는 더한 것 같다"라며 "실제 아기를 두고 화림이 휘파람을 부는 장면에서는 상황적으로 무서울 수밖에 없었는데 너무 태연하게 실제 무속인처럼 연기를 해주시더라"라며 감탄했다. 이어 "함께 무대 인사를 돌면서 김고은 배우의 팬들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특히 여성 팬 분들이 많은 것 같았다. 팬들의 열기에 놀라면서도 어째서 김고은 배우를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정윤하는 "이도현 배우는 제가 아는 연기자 가운데 인성이 가장 좋은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라며 눈을 빛냈다. 그는 "제가 예전에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전부터 이도현 배우님과 연기 은사님이 같아서 연습실을 같이 다녔던 때가 있다"라고 밝히며 "그 때부터 봐왔는데 제가 봐온 사람들 중에 손에 꼽도록 인성이 좋은 친구"라고 극찬했다.
특히 그는 "항상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고 볼 때마다 누군가와 겸손하게 소통하는 모습들을 보여줬다. 타인을 대할 때 닫혀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람 자체가 많이 열려있고, 모난 것 없이 겸솧나게 초심을 유지하는 것 같아 멋졌다"라고 이도현에 대해 호평했다.
중장년층까지 쉽게 접할 수 있는 무속 신앙을 담아낸 결과 '파묘'는 천만영화를 넘어 계속해서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다. 정윤하 역시 "무대인사를 조금 가봤는데 중장년층 분들도 많이 보시고, 저희 어머니도 영화를 좋아하셨다"라며 "22번까지 영화를 본 분도 봤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더불어 그는 "제 이름으로 된 플래카드를 들고 계신 분들도 뵀다"라며 놀라워 했고, "책임감이 생기고 조심스러워지더라"라고 깊은 감사를 드러냈다.
연극을 좋아해 무대인사로라도 관객들과 만나는 경험도 귀했다는 정윤하. 그는 넷플릭스 새 오리지널 '트렁크'로 다시금 대중 앞에 설 예정이다. 새 작품에서 그가 파내서 보여줄 매력은 무엇일까. '파묘' 이후 정윤하의 필모그래피에 귀추가 주목된다. / monamie@osen.co.kr
[사진] 씨제스 스튜디오, 쇼박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