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MBC 금토드라마 ‘원더풀 월드’는 복수에 관한 이야기다.
한국인 최초의 로잘린 문학상 수상자 은수현(김남주 분)은 생명보다 귀한 아들 건우(이준 분)를 잃었다. 가해자인 권지웅(오만석 분)은 아이를 치어놓고 유기한 채 도주했다. 제때 병원에 만 갔었어도 생명은 건질 수 있었던 아이를 유기함으로써 죽였다. 수습못한 사고가 아닌 명백한 살인이다.
은수현은 집행유예로 풀려난 권지웅에게 진정한 사과를 요구했지만 권지웅은 아이의 죽음마저 조롱했다. 그래서 건우와 똑같이 차로 치어 죽였다.
권선율(차은우 분)은 다정한 아빠를 잃었다. 심장이 약해 세 번이나 수술 받아야 했던 선율에게 다시 없이 든든한 울타리였던 아빠다. 하지만 아빠는 죽음마저 비난받았다. 생전 본 적도 없는 이들이 빈소까지 쳐들어와 “살인자!”라며 행패를 부렸다.
아빠를 죽인 여자 은수현은 최후진술에서 “그 일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에 몰려든 사람들은 ‘은수현을 살려내라’ ‘은수현 처벌 반대한다’ 등의 피켓을 들고 그녀를 응원했다.
앵커라는 그녀의 남편 강수호(김강우 분)는 감히 뉴스 생방송에서 “그저 아이를 잃은 엄마였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그자를 용서했고 이제 그녀를 범죄자라고 부릅니다. 시청자 여러분, 그녀가 왜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 지 단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 주십쇼. 과연 누가 그녀를 심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지껄였다. 그래서 선율은 그 심판을 제가 감당하기로 했다.
영국의 심리학자 스티븐 파인먼은 ‘복수의 심리학’에서 ‘복수는 원래 우리 인간의 생물사회적 기질이며, 슬픔이나 비탄, 굴욕감, 분노 등으로 촉발되는 원초적 본능’이라고 규정했다. ‘어그러진 정의를 바로잡는 기능도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원더풀 월드’의 비극도 이 어그러진 정의에서 비롯됐다. 개인의 복수심을 외주 받아 정의를 대행해야 할 사법체계가 그 역할에 실패했다. 판결문의 상당 부분이 모순으로 점철됐다.
“특정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도주 치사의 혐의에 관해 살펴 보건데 목격자 진술 등 여러 증거를 종합하면 피고인의 혐의는 인정된다.” “이 사건으로 피해자가 사망하는 등 사안이 가볍다고 할 수 없다.” 해놓고 ‘자백’·‘뉘우침’·‘우발’ 등의 수식 끝에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의 배후엔 전 서울시장인 국회의원 김준(박혁권 분)을 필두로 ‘우리가 남이가’하는 권력 커넥션이 개입됐다. 무조건적인 용서, 불순한 의도가 개입된 용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이럴 때 복수는 정의를 실현하는, 손상된 명예를 회복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거기에서부터 은수현과 권선율의 비극은 시작됐다. 분명한 건 복수의 감정이란 것이 해당 개인에겐 크나큰 고통이란 사실이다. 복수의 끝이 아름다울 순 없다. 공자마저 “복수의 길을 떠나기 전에 무덤 두 개를 파놓아라. 너도 죽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은수현도 재봉틀이 제 손을 박는 줄도 모를만큼 고통 속에 살았고 유리 친모(조연희 분)까지 동원해 수호(김강우 분)와 유리(임세미 분)의 불륜 사실을 까발린 선율도 개운치못한 감정에 흔들린다.
이야기를 비극으로 끌어가는 데는 아집도 한 몫한다. 은수현이 최후진술에서 권지웅의 유족들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를 덧붙였으면 어땠을까? 죄없이 졸지에 아빠와 남편을 잃은 유족은 마땅히 사과받을 자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수현의 시선은 그들에까지 닿지 않았다.
호숫가에서 만난 선율에게 “죽는 건 쉬워. 계속 살아내는 게 어려운 거지. 나는 건우 엄마로서 후회하는 것도 부끄러운 것도 없어. 나를 죽일 순 있어도 이 마음을 죽일 순 없어.”라며 제 딴의 신념만을 강조하고 돌아선다.
강수호 역시 선율의 멱살을 거머쥐며 “넌 내 아들을 죽인 놈의 아들일 뿐이고, 내 아내가 안 했으면 그날 내가 했어. 알아?”라고 다그치기만 한다.
제 아들을 죽여놓고 진심어린 사과를 안했다고 내 아버지를 죽인 저들은 왜 나와 내 어머니의 고통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걸까? 이러면 내 복수를 멈출 수 없잖아. 그딴 게 당신들의 신념이라면 내 신념도 처절히 알려줄게.
결국 선율의 칼끝은 강수호와 유리를 거쳐 은수현의 하나 남은 가족 고은(원미경 분)을 향하게 되고 선율로 인해 강수호와 유리의 불륜을 알게된 고은은 실신하고 만다.
다시 한번 선율을 찾아나선 수현. 선율은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 버티고 선 수현을 향해 알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혀 가속페달을 힘껏 밟아버린다.
복수는 자신과 사회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려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이다. 인류가 창작해온 문화컨텐츠의 상당부분이 복수를 테마로 하고 있기도 하다. ‘정의구현’이란 허울까지 뒤집어쓰고나면 복수극은 대중의 열광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한 탈법적 행위는 금기파괴의 욕구까지 자극하며 선정적 매력을 확보한다.
하지만 ‘원더풀 월드’의 복수극은 통쾌하지도 후련하지도 않다. 김남주와 차은우는 복수심이란 고통스런 감정을 안고 살아내는 은수현과 권선율을 걸맞게 구현해 내고 있다. 둘을 보면 이미 두 개의 무덤이 파여있는 기분이다.
타면자건(唾面自乾)이란 말이 있다. 남이 내 얼굴에 뱉은 침은 가만 두어도 스스로 마른다는 뜻이다. 문득 그런 경지가 있기는 한 건지 궁금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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