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여왕’ 김지원 감싸준 ‘반창고’ 김수현, 그리고 ‘들통’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4.03.18 10: 24

[OSEN=김재동 객원기자] 때는 2006년의 어느 날이었고 곳은 한일외국어고등학교 운동장이었다. 여자 아이는 그 시간에 하교를 하지 않을 수도 있었고, 남자 아이는 가까스로 그 시간을 피해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니 그 약속되지 않은 만남은 전적으로 우연일 뿐이었다.
여자 아인 넘어져 무릎이 까였고 남자 아인 그 생채기에 밴드를 붙여주었다. 눈물을 떨구던 여자 아이는 황급히 자리를 떴고 남자 아인 그녀가 떨구고 간 MP3를 주워들었다. 둘은 아무도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했다. 스쳐간 무수한 시간 속에 사소하기 짝이 없는 순간였을 뿐이었으니까.
17일 방송된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 4회가 제목에서 강조한 ‘눈물’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백현우(김수현 분)의 고향 용두리에 이장선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판세는 현 이장이자 현우의 아버지인 백두관(전배수 분)쪽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현우 누나 백미선(장윤주 분)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올케인 홍해인(김지원 분)에게 SOS를 쳤고 “평소 안하던 거 위주로 하며 살겠다”던 해인은 뷔페를 포함한 선물보따리를 바리바리 쟁여 용두리를 찾았다.
마을이 온통 잔치로 들썩일 때 해인은 슬며시 요즘 부쩍 사랑스러워진 남편 현우의 옛 방을 찾았다. 그리고 그 서랍 한귀퉁이에서 발견한 MP3. 어쩐지 반가운 기분이 든다. 미국 유학 가기 전인 고교시절 자신이 잃어버렸던 것과 같은 기종이다. 정확히는 그 시절 자신을 향한 세상의 온갖 비난 어린 뒷담화를 막아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했던 동반자.
사실 해인의 유학은 오빠의 사망과 무관치 않다. 오빠의 이름은 홍수한. 사고사로 규정된 그 죽음이 해인과 무슨 연관이 있는 지는 내막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해인은 여전히 그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그리고 당시 학교엔 해인이 오빠 사망 이후 미쳐서 유학이 아닌 정신병원에 가는 것이란 소문까지 돌았었다.
남들의 입초사는 한 때일 뿐이다. 정작 해인을 괴롭히는 것은 엄마 김선화(나영희 분)여사다. 김선화는 “해인이한테 그러지 마. 옛날 일 때문에 해인이한테 언제까지 그럴래?”라 만류하는 홍범준(정진영 분)을 향해 “누구 잘못도 아닌데 우리 수한인 지금 어디에도 없어. 난 아직도 매일 억울하고 숨막히게 아파. 나한텐 매일이 그날이야. 자식 죽은 날 속에 갇혀서 살고있다고 난. 그런 나한테 제 정신까지 기대하진 마.”라 울분을 토했고 그 엄마의 속울음을 해인은 숨어 들었었다.
그런 김선화지만 해인이 멧돼지에 피습당했다는 홍수철(곽동연 분)의 전언을 듣자마자 뒷 말 듣지도 않고 정신없이 뛰쳐나갈만큼 모정을 상실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딸을 향해 “너는 너만 생각하는 뼛속까지 나쁜 년이니까. 넌 니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든 말든 그저 너 살 길만 찾잖아. 그러니까 니 오빠..”라며 독설을 퍼붓기도 한다.
김선화의 독설로 미루어 오빠 홍수한의 사망 당시 해인이 함께 있었으며 오빠만 죽고 해인은 살아남아 김선화의 원망의 대상이 된 모양새다.
해인은 앓고 있는 병을 가족들한테 얘기하자는 현우에게 “놀랄까봐 그래. 우리 엄마 아빤 자식을 먼저 보낸 사람들이거든. 괜히 겁줄 필요 있어?”라며 말리는 이유를 설명했다.
눈 앞에서 오빠 잃고 그로 인해 엄마의 사랑을 잃은 해인은 뱃속의 아이까지 잃었다. 해인 핸드폰의 비번은 1031. 해인과 현우의 첫 아이 출생예정일이었다. 둘 사이에 아이는 없고 아이방으로 꾸몄던 현우방엔 당시의 흔적으로 천장에 웃고있는 형광별 하나만이 깜빡이고 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생명마저 잃을 위기에 처했으니 해인은 중요한 모든 존재들을 잃어왔고 잃어가는 중인 말 그대로 ‘눈물의 여왕’이 아닐 수 없다. 아직 붙잡을 수 있는 하나의 존재라면 무릎 생채기에 반창고를 붙여주던, 지금은 남편이 된 현우 정도랄까?
고교시절 자신이 잃어버렸던 MP3인지도 모른 채 음악을 듣던 해인은 다시 병증이 도져 와본 적 없는 시골길을 헤맨다. 또다시 무릎이 까인 채 흙투성이가 되어 헤매는 해인 앞에 노란 자전거 불빛. 이번에도 현우다.
걱정으로 화를 내는 현우에게 “환자 취급하지 말랬지?”란 매운 말로 상처를 준 해인, 돌아서는 현우의 와이셔츠는 물론 조끼까지 땀으로 흠뻑 젖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남편의 노고가, 남편의 걱정이 느껴진 순간 해인은 고백한다. “기억이 안나. 집 앞에 있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모르는 곳이었어. 내가 언제 갔는 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갔는 지도 모르겠어... 너무 무서웠어!” 현우는 성큼성큼 걸어와 그런 해인을 깊게깊게 안아주었다.
의사 앞에선 피가 차가운 사람이라 스스로를 평했지만 정작은 차가운척만 했던 해인도 안도한다. 이 반창고같은 남자 품에서라면 맘껏 울어도 되지 않을까? 몸에 든 멍은 약을 써야 풀어지지만 마음에 든 멍은 실컷 울고나야 풀어지는 법이다.
그렇게 해인은 현우 품에서 무장해제했는데 5회 예고를 보니 이게 웬걸? 현우의 이혼 시도가 들통나고 만다. ‘백현우, 너마저도!’ 당연히 해인은 다시 방어기제를 작동시키게 되고 그 틈을 윤은성(박성훈 분)이 파고드는 모양이다.
하늘은 병을 주면 약도 준다고 한다. 하지만 해인의 병에 백현우란 처방이 기능하기까지는 아직도 한참 요원한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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