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에 상륙한 ‘바람의 손자’ 봄바람이 매섭다. 이정후(26·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또 안타를 쳤다. 시범경기 데뷔와 함께 5경기 연속 안타 행진으로 4할대(.462) 맹타를 이어갔다.
이정후는 5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 솔트리버필즈 앳 토킹스틱에서 열린 2024 메이저리그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시범경기에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 2타수 1안타 1타점 1볼넷으로 활약했다. 시범경기 데뷔 후 5경기 연속 안타, 타율 4할6푼2리(13타수 6안타)로 고공 비행 중이다.
시범경기 데뷔전이었던 지난달 28일 시애틀 매리너스전(3타수 1안타 1득점)을 시작으로 1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3타수 2안타 1홈런 1타점 1득점), 2일 텍사스 레인저스전(3타수 1안타), 4일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전(2타수 1안타 1타점 1볼넷 1도루)에 이어 이날까지 5경기 연속 안타로 멀티 출루만 3경기나 된다. 시범경기 출루율은 5할3푼3리.
이정후는 4회 안타를 치고 난 뒤 파울 타구에 오른쪽 종아리를 맞은 여파로 교체됐지만 큰 부상이 아니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날 2경기 연속 출장한 이정후에게 6일 밀워키 브루어스전은 예정된 휴식일이고, 7일은 샌프란시스코 시범경기가 없는 휴식일이다. 첫 연이틀 휴식을 통해 종아리 통증을 다스리고 회복하는 시간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경기는 난타전 끝에 샌프란시스코가 10-12로 패배했다. 시범경기 전적 2승6패2무.
이날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중견수) 마이크 야스트렘스키(우익수) 마이클 콘포토(좌익수) J.D. 데이비스(1루수) 패트릭 베일리(포수) 데이비드 비야(3루수) 파블로 산도발(지명타자) 닉 아메드(유격수) 브렛 위슬리(2루수) 순으로 선발 라인업을 내세웠다. 선발투수는 우완 스펜서 하워드.
콜로라도에선 우완 다코타 허드슨이 선발로 나섰다. 2016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34순위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지명된 유망주 출신 허드슨은 2018년 데뷔 후 지난해까지 메이저리그 6시즌 통산 114경기(79선발·470⅔이닝) 38승20패1세이브12홀드 평균자책점 3.84 탈삼진 315개를 기록했다.
지난해 18경기(12선발·81⅓이닝) 6승3패1홀드 평균자책점 4.98로 가장 저조한 성적을 냈고, 시즌 후 논텐더로 풀려 세인트루이스를 떠났다. 지난 1월 콜로라도와 1년 150만 달러에 FA 계약하며 선발 후보로 경쟁 중이다. 평균 91.6마일 싱커(147.4km)가 주무기로 땅볼 유도 능력이 우수한 투수.
허드슨을 상대로 이정후는 날카로운 타구를 생산했다. 초구 91마일(146.5km) 패스트볼이 존을 통과한 것을 지켜본 이정후는 2구째 90마일(144.8km) 패스트볼을 잡아당겼다. 땅볼이었지만 타구 속도가 103.5마일(166.6km)로 빨랐다. 콜로라도 2루수 브렌든 로저스가 백핸드로 타구를 잡은 뒤 1루로 러닝스로하며 이정후를 아웃 처리했다.
3회 2사 2루에 들어선 두 번째 타석에선 볼넷으로 1루에 나갔다. 허드슨을 상대로 초구 89마일(143.2km) 높은 볼, 2구째 81마일(130.4km) 낮게 잘 떨어진 볼, 3구째 86마일(138.4km) 높은 볼을 연이어 골라낸 이정후. 4구째 90마일(144.8km) 스트라이크를 지켜본 뒤 5구째 87마일(140.0km) 슬라이더가 높게 벗어나자 1루로 걸어나갔다. 시범경기 두 번째 볼넷으로 2경기 연속이었다. 2사 1,2루 찬스를 연결한 이정후는 후속 야스트렘스키의 잘 맞은 타구가 중견수 뜬공으로 잡히면서 잔루로 남았다.
4회 무사 1,3루 찬스에서 맞이한 3번째 타석에서 이정후의 안타가 나왔다. 상대 투수는 메이저리그 3시즌 통산 32경기(31선발·147이닝) 6승14패 평균자책점 6.06 탈삼진 128개를 기록한 우완 라이언 펠트너. 초구 96.5마일(155.3km) 몸쪽 낮은 포심 패스트볼에 스윙을 낸 이정후는 타구가 자신의 오른쪽 종아리 쪽을 맞고 3루 쪽으로 튀었다. 파울. 이어 2구째 몸쪽 86.7마일(139.5km) 체인지업에 배트가 헛돌았다.
투스트라이크 불리한 카운트에 몰렸지만 이정후의 대응력은 불리할 때 빛났다. 펠트너의 3구째 바깥쪽 높게 들어온 87마일(140.0km) 체인지업을 밀어쳐 좌측으로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보냈다. 콜로라도 좌익수 샘 힐리아드가 뒤로 타구를 쫓아가 낙구 지점을 잡는 듯했으나 강한 햇빛에 가렸는지 갑자기 몸을 웅크렸다. 타구는 힐리아드를 넘어 좌측 펜스 쪽으로 향했다.
그 사이 3루 주자 아메드가 홈을 밟아 이정후의 타점이 기록됐다. 시범경기 3타점째. 하지만 뜬공으로 잡힐 줄 알았던 1루 주자 위슬리가 2루에서 멈췄고, 이정후도 1루에서 2루 사이 절반 지점까지 갔다 1루로 돌아갔다. 약간의 행운이 따른 안타이긴 하지만 투스트라이크 불리한 카운트에서 만들어낸 4번째 안타로 이정후의 대응력이 다시 한 번 돋보였다.
타구의 질도 무척 좋았다. 시속 96.6마일(155.5km), 발사각 29도로 352피트(107.3m)를 날아간 장타성 타구였다. 좌익수 힐리아드의 실수가 겹치긴 했지만 안타 확률 33%로 힘이 잘 전달된 타구였다.
이정후는 1루에 나간 뒤 대주자 체이스 핀더로 교체돼 이날 경기를 마쳤다. 3타석을 소화하긴 했지만 4회로 비교적 이른 시점에 빠졌다. 앞서 초구 파울 타구에 오른쪽 종아리 쪽을 맞은 여파였다. 교체된 뒤 다음 이닝 때 원정팀 클럽하우스로 들어간 이정후는 치료를 받은 뒤 현지 취재진과 인터뷰했다.
다리를 절뚝이는 모습을 보여 놀라게 했지만 이정후는 이내 밝은 미소로 “괜찮다. 한국에서 이렇게 많이 맞아봤다”는 말로 취재진을 안심시키며 근육통 수준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이정후와 현지 취재진의 일문일답.
-4회 대주자로 교체됐는데 몸 상태가 안 좋았는가.
▲ 파울 타구에 (오른쪽) 종아리를 맞았다. 한국에서도 주자 맞은 부위다. 종아리 근육이 맞아서 근육통이 심하다. 뼈에 안 맞아서 다행이다. 뼈는 맞을 리 없었다. 왜냐하면 보호대가 있기 때문이다. 더 안쪽에 보호대가 안 돼 있는 곳에 맞아서 종아리에 바로 맞았는데 처음에 괜찮았는데 (밥 멜빈) 감독님이 그냥 빼주셨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까 아픈 것 같은데 괜찮다. 한국에서 이렇게 많이 맞아봐서(웃음). 뼈를 안 다쳐 다행이다.
-내일(6일) 경기(밀워키 브루어스전) 출전은 어려울 것 같은데.
▲ 어차피 내일은 경기 안 나가는 날이다. 내일 쉬고, 모레는 (경기가 없어) 완전히 쉬는 날이다. 오랜만에 (연이틀) 쉰다.
-4회 안타는 체인지업을 공략한 것이었는데.
▲ 초구를 친 게 몸쪽 직구였는데 커터성이어서 파울을 치다 (종아리에) 맞았다. 이어 체인지업에 헛스윙을 했다. 체인지업에 헛스윙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한국 투수들과 체인지업이 다른 것 같다. 체인지업 스피드가 한국 투수들보다 조금 더 빠르다. 헛스윙한 것도 87~88마일(140.0~141.6km)인데 그 정도면 140km 정도 된다. 그 정도 스피드의 체인지업을 가진 한국 투수는 사실 없다. 그런 체인지업에 한 번 헛스윙하면 ‘아, 이렇게 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 그래서 체인지업이 왔을 때 쳤던 것 같다.
-타구의 질이 계속 좋은데 벌크업 효과라고 봐도 되나.
▲ 그렇다. 운동 열심히 했다. 한국에 있을 때도 타구 스피드는 좋았다. 타구 스피드에 신경을 많이 썼다. 내가 (노)시환이나 (이)재원이, (강)백호 그런 친구들처럼 최고 타구 속도는 나오지 않았지만 평균적으로 150~170km 사이의 타구를 정말 많이 쳤다. 그 정도 타구 스피드에 미국에선 투수들의 공이 더 빠르고 하니까 중심에 맞으면 그만큼 빠르게 날아가는 것 같다.
-맞춤 제작 헬멧이 도착했는데.
▲ 원래 쓰던 것보다 좋았다. (김)하성이형이 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동료 외야수 마이크 야스트렘스키가 외야 수비에 대한 칭찬도 했는데.
▲ 한국에서 하는 것처럼 한다. 한국에서도 내가 느끼기에 수비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하던 대로 하고 있다. 물론 나보다 수비 잘하는 형들도 있었지만 그 형들에 비해 내가 방망이를 잘 쳤기 때문에 수비가 그만큼 돋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형들이 수비를 더 잘함으로써 가치를 끌어올렸다면 난 방망이로 그렇게 한 것이다. 우리 키움 히어로즈 경기를 보셨던 분들이라면, 팬분들이라면 내가 수비를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정말 수비하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타자 하는 걸 좋아하는 것도 투수는 공만 던져서 팀에 기여하지만 타자는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방망이를 못 쳐도 수비로 도와주고 활약할 수 있다. 한국에 있을 때도 (타격이) 잘 안 풀리면 수비에 더 집중하려고 했다. 그런 것들이 미국 와서도 하던 대로 하다 보니 나오는 것 같다.
-샌프란시스코 선수단 전원이 경기 전 국민의례를 하는데.
▲ 미국의 문화인 것 같다. 한국은 국민의례를 해도 루틴이 있는 선수들은 그 루틴을 하는데 여기는 그런 것 없이 다 나와서 한다. 다른 팀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팀은 선수들이 다 나와서 한다. 불펜투수부터 선발투수까지 다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