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타이틀 저주’다. 슈퍼 스트라이커를 질시하는 신이 안긴 천형(天刑)이런가. 우승을 좇아 둥지를 옮긴 해리 케인(30·바이에른 뮌헨)이 감내해야 할 시련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해리 케인은 잉글랜드가 낳은 불세출의 골잡이다. ‘축구 종가(宗家)’가 배출한, 21세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대표하는 뛰어난 골게터다. 세 차례씩(2015-2016, 2016-2017, 2020-2021시즌)이나 EPL 득점왕에 올랐던 데에서도, 빼어난 득점 솜씨를 뚜렷하게 읽을 수 있다. 2020-2021시즌엔 어시스트 왕좌에까지 앉았을 만큼 발군의 플레이메이킹 능력까지 겸비한 월드 스타다.
우승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뛰어든 새로운 마당인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도, 한결같이 맹위를 떨치는 케인이다. 분데스리가 득점 기록사를 새로 써 가며 폭풍의 기세로 휩쓸고 있다.
그러나 외연을 팀으로 넓히면, 짓궂은 신의 희롱에 맞닥뜨려야 하는 케인이다. 신이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 깔아 놓은 뜻밖의 걸림돌에 막혀 도전이 좌절될지 모르는 고비에 직면한 형세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종잡기 힘든 분데스리가 등정 도전 첫 시즌이다.
유럽 최고 골잡이로 우뚝, 그러나 새로 옮긴 둥지는 ‘절대 지존’의 위세 잃어
분데스리가 개척의 첫걸음을 내디딘 2023-2024시즌, 케인이 내뿜는 기세는 회오리바람을 연상케 한다. 아니 그 이상이다. 태풍이라 할 만하다. 유럽 5대 리그를 통틀어 케인이 일으킨 ‘골 바람’을 능가하는 위력을 나타낸 골잡이는 아무도 없다.
이번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케인은 27골(2월 29일 기준·이하 현지 일자)을 터뜨렸다. 감히 넘보기 힘든 형세를 앞세워 유럽 득점 천하를 평정했다. 2022-2023시즌 유럽 마당을 호령했던 엘링 홀란(23·맨체스터 시티)을 멀찍이 떨어뜨리고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5위(17골)에 머문 홀란을 물경 열 걸음 차로 제친 모양새를 연출한 케인이다(표 참조). 이번 시즌에도, 홀란은 EPL에서만큼은 득점 1위에 올라 있다.
케인은 홀란만 주눅 들게 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세리에 A의 라우타로 마르티네스(26·23골·인터 밀란), 프랑스 리그 1의 킬리안 음바페(25·21골·파리 생제르맹), 스페인 라리가의 주드 벨링엄(20·16골·레알 마드리드) 등 유럽 빅리그를 휩쓰는 골잡이들에게 넉넉히 앞서고 있다. 내로라하는 그들이건만 케인의 놀라운 득점 폭발에 움츠러든 꼴이다.
개인 득점이 팀 전체 득점에서 차지하는 공헌도 비율에서도, 케인은 가장 윗자리에 오르며 유럽 리그 최고의 매임을 입증했다. 5대 리그 득점 선두 주자 가운데에서, 케인은 유일하게 40%대를 차지하며 확실한 주득점원임을 뽐냈다. 이번 시즌 바이에른 뮌헨이 뽑아낸 63골 가운데 42.9%가 케인이 차지한 비중이었다.
그뿐이랴. 케인은 분데스리가 득점사에 새 이정표를 세웠다. 역대 최소 경기 27골의 신지평을 열었다. 분데스리가 스물세 번째 무대였던 홈 RB 라이프치히전(2월 24일·2-1 승리)에서 두 골을 터뜨리며 새 지경에 올라섰다.
지금까지 27골을 잡아내는 데 필요한 최소 경기는 28로, 두 번 있었다. 홀란(2020-2021시즌)과 독일 축구사의 상징적 존재인 우베 젤러(1963-1964시즌)가 각각 한 차례씩 기록했었다.
이처럼 눈부신 발자취를 남겨 가는 케인이다. 그러나 우승만큼은 인연이 없나 보다. 토트넘 홋스퍼의 역사로 자리매김했던 영광을 뒤로하고 우승을 좇아 분데스리가 ‘절대 지존’인 바이에른 뮌헨에 둥지를 틀었는데도, 정상에 드리운 짙은 구름에 휩싸여 좀처럼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토트넘 시절 리그컵(EFL컵)에서 2회(2014-2015, 2020-2021시즌)와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1회(2018-2019시즌) 등 세 차례 준우승이 그나마 정상에 다가선 성적이었다. 지독한 ‘우승 징크스’에 시달려 온 케인이다.
바이에른 뮌헨은 분데스리가 33회 우승의 혁혁한 전과를 올린 최강이다. 2012~2013시즌부터 2022-2023시즌까지 믿기 힘든 11연패를 달성한 분데스리가 절대 강자이자 최고 명가다.
그 뮌헨이 이번 시즌 ‘죽을 쑤고’ 있다. 팀당 총 34경기 중 23경기를 소화한 분데스리가에선 바이어 04 레버쿠젠의 돌풍에 휘말려 2위에 머물러 있다. 승점이 8점이나 뒤져(53-61) 쉽지 않은 추격을 펼쳐야 하는 처지에 내몰려 있다. UCL도 험난한 여정이다. 16강 어웨이 1차전(2월 15일)에서, 예상을 뒤엎고 세리에 A의 SS 라치오에 0-1로 분패했다. 비록 홈에서 열릴 2차전(3월 6일)에서 역전의 기회가 남아 있긴 해도, 요즘 같은 페이스라면 희망스럽지만은 않다.
특히, DFB-포칼 참패가 뼈아팠다. 지난해 11월 1일, 3부리그 자르브뤼켄에 어이없이 1-2로 무너져 일찌감치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 대회 20회 우승의 관록과 명성이 허무하게 스러진 순간이었다.
과연 케인은 자신에게 걸린 주술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할까? 그렇다, 아니다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매 시즌 대장정의 마지막까지 한결같이 온 힘을 쏟아부은 케인의 ‘축구 열정’이 이번 시즌에도 재현되리라는 점이다. ‘좌절’이란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운 케인이 이번 시즌 ‘타이틀 저주’를 벗어던지고 정상을 밟을지 그 결말이 궁금하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