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 ㅇ난감’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정의는 정의일까?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4.02.14 15: 04

[OSEN=김재동 객원기자] ‘살인자 이응 난감’으로 읽는 거야? 아니면 ‘살인자 오 난감’으로 읽는 거야? 제목부터가 난감하다.
지난 2월 9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살인자 ㅇ난감’의 반향이 예사롭지 않다. OTT 서비스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이 13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 넷플릭스 세계 순위 TV 쇼 부문 4위에 올랐으며 한국을 포함해 인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필리핀, 카타르,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등 11개국에서 1위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총선 정국과 맞물려서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저격 논란으로 세간을 시끄럽게 하기도 했다. 드라마 속 송촌(이희준 분)에게 경동맥을 찔려 사망하는 형정국 역의 승의열 배우가 이재명 대표와 싱크로율이 높게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중간의 ‘ㅇ’이 애매하지만 제목은 대단히 직설적이다. 드라마를 끌어가는 살인자 이탕(최우식 분)과 송촌, 그리고 결국 사람을 죽이게 되는 장난감(손석구 분)까지가 모두 난감한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목 속 ‘난감’이 배역 ‘장난감’의 이름과 동일해 시즌2가 만들어지면 ‘살인자 장난감’이 이야기를 끌어갈 지도 모르겠다는 실없는 생각도 얼핏 든다.
어쨌거나 이 드라마의 등장 인물들은 뭐가 그리 난감할까?
먼저 주인공 이탕은 계획없는 청춘이다. 대학생활도 설렁설렁, 취업 준비도 설렁설렁, 편의점 알바도 설렁설렁이다.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군 입대 전 여자친구가 있긴 했지만 동아리 여자 선배와 바람도 피웠고 걸리면 헤어지면 된다 생각했었다. 고등학교 시절엔 친구의 물건을 슬쩍 하기도 했었다. 수치심 따위를 느낄만큼 도덕적이지도 않았다. 안들키고 넘어간 것을 ‘모든 정황들이 내 편’이라 느껴 다행스러워한 편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런 것처럼.
이탕의 유일한 계획이라곤 사회에 나서기가 부담스러워 워킹홀리데이나 떠나겠단 것 뿐이었다.
그런 이탕에게 그 일은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야간 알바 퇴근길에 호의로 건넨 오지랖이 취객의 무차별 폭행으로 돌아왔다. 그 폭행은 왕따 당하던 고교시절의 트라우마까지 건들이며 우발적 살인으로 이어졌다. 하릴없던 청춘에서 살인자가 돼버렸으니 오죽 난감할까.
난감한 상황은 단발로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상황타개의 결론은 언제나 살인. 이탕은 그렇게 연쇄살인범이 되어갔고 그 와중에 스스로에게 죽어 마땅한 자를 느끼는 능력이 있음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우발적 살인은 자발적 살인으로 변질돼 간다.
상황에 몰려 살인자가 된 이탕과 다르게 송촌은 목표의식 분명한 연쇄살인범이다. 진작 이 세상의 더러운 것들은 내 손으로 치우겠다는 작심을 하고 나선 인물이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트레비스(로버트 드니로 분)와 많이 닮았다. 둘 모두 비정한 사회에 대한 절망과 분노를 안고 있고 정의 구현에 대한 강박을 갖고 있다. 또한 트레비스는 패전한 베트남전 참전용사고 송촌은 수배당한 전직 형사다. 둘 모두 이전 신분에선 정의구현에 실패했던 인물들이다.
그런 송촌을 난감하게 하는 것은 확신의 부재다. 죽어 마땅할듯해 죽이기는 하는데 정말 죽어 마땅한 지는 아리송하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확률을 따지게 됐고 피해자들로부터 반성문을 받게 됐다. 기준을 지키기 위해서 기준을 세우는 헛수고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송촌에게 죽이는 족족 죽어 마땅한 자들 뿐인 이탕을 동경하는 것은 너무나 마땅한 일. 송촌은 이탕의 그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한다.
형사 장난감을 난감하게 만드는 것은 이탕이란 존재 자체다. 심증은 뚜렷한데 물증이 하나도 없는 이탕이란 존재가 시작부터 장난감을 난감하게 하더니 이탕의 피해자들이 용서받지 못할 자들임이 드러나면서 난감함이 가중된다.
하지만 법의 수호자로서 사적처벌이란 단지 또 다른 범죄일뿐이라는 신념 속에 이탕을 쫓지만 드라마 말미에 가선 그 신념조차 흔들릴 수밖에 없는 난감한 처지에 빠지고 만다.
드라마는 재밌다. 시공간을 교차편집한 연출은 세련됐고 그 효과로 살인의 잔혹함마저 담백하게 소화해 냈다. ‘정의란 무엇인가?’란 주제의식도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으며 평범한 모두의 내면에 깃든, 특별할 것 없는 악의 실체도 무리하지 않게 드러냈다.
액션도 그렇다. 현란하고 그림같은 액션을 포기하고 개싸움으로 몰아감으로써 찰나의 우연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 지를 보여주었다. 죽어라 패다가도 한순간 날아든 벽돌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것처럼 이탕같은 겁많은 대학생도 어느 한순간 강요된 우연에 살인마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정의가 정의겠어요?”라며 자조하면서도 이어지는 이탕의 살인. 이탕은 과연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낸 것일까? 시즌2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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