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캠프 맨투맨 지옥훈련과 미국 강정호 아카데미 수강 효과를 보는 것일까. 부진에 부진을 거듭했던 ‘115억 거포’ 김재환(36·두산) 호주 스프링캠프에서 달라진 스윙으로 2024시즌 부활을 기대케 하고 있다.
지난 9일 두산 1차 스프링캠프가 열리고 있는 호주 시드니 블랙타운 인터내셔널 스포츠파크에서 만난 이승엽 감독은 “글씨로 치면 김재환이 악필에서 명필로 가는 단계가 아닌가 싶다. 미국에 다녀오고 더 좋아졌다”라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김재환은 전날 7일차 훈련에서 웃음기를 싹 뺀 가운데 타격훈련에 임했다. 이승엽 감독, 박흥식 수석코치, 김한수 타격코치가 보는 앞에서 배팅볼 투수의 공을 부드러운 스윙으로 때려냈고, 배팅케이지 밖으로 이동해 박흥식 코치가 던지는 공을 또 쳤다. 스윙을 유심히 지켜본 김한수 코치는 “아직 배팅볼 투수가 던져주는 공이지만 조금 달라진 모습이 보인다. 정규시즌까지 지금 흐름이 이어질 수 있도록 계속 많은 대화를 나눌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민타자’ 이승엽 감독의 평가도 같았다. 이 감독은 “지금까지는 잘 되고 있다. 이것만 잘 유지하면 된다. 지난해보다 더 떨어질 일은 없을 것 같다”라며 “본인이 생각한대로, 또 내가 (김)재환이에 대해 예상한대로 잘 흘러가고 있다. 기대를 해도 좋을 것 같다”라고 바라봤다.
4년 115억 원 초대형 FA 계약 후 2년 동안 부진에 시달린 김재환은 지난해 11월 이천 마무리캠프로 향해 이승엽 감독의 맨투맨 지옥훈련을 소화했다.
통상적으로 마무리캠프는 루틴이 정립되지 않은 신예들이 대거 참여하지만 이승엽 감독의 요청과 선수의 부활 의지가 합쳐져 16년차 베테랑 선수의 이례적인 훈련 참가가 결정됐다. 김재환은 KBO 역대 최다 홈런 기록(467개) 보유자인 이 감독의 홈런 노하우를 전수받으며 FA 계약 3년차 시즌 부활을 꿈꿨다.
김재환이 마무리캠프에 참가한 이유는 딱 하나. 슬럼프 탈출이었다. 대형 계약 첫해 128경기 타율 2할4푼8리 23홈런 72타점 OPS .800에 이어 이 감독이 부임한 지난해 이전보다 못한 역대급 커리어 로우를 겪었다. 132경기 타율 2할2푼 10홈런 46타점 장타율 .331의 부진과 함께 시즌 막바지 오른손 부상이 겹쳐 두산의 순위싸움에 힘을 보태지 못했다.
김재환의 의지는 결연했다. 후배들 앞에서 거포를 꿈꿨던 어린 시절보다 더욱 강도 높은 훈련을 묵묵히 소화했다. 하루는 훈련 종료와 함께 방망이와 장갑을 땅에 내려놓은 뒤 땅에 주저앉으며 체력 저하를 호소했고, 이 감독이 “아프면 이야기해라”라고 말하자 “토할 거 같은데요”라고 답하며 훈련의 강도를 실감케 했다. 19차례 훈련 모두 이 정도의 강도로 진행됐다.
김재환은 지옥훈련 소화도 모자라 작년 12월 휴식을 반납하고 11월 26일 자발적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마무리캠프 때 느낀 부분을 12월과 1월에도 잘 기억한 상태에서 2월 스프링캠프에 합류하고 싶다”라는 게 사비를 들여 항공권을 구입한 이유였다. 김재환은 마무리훈련의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현역 시절 KBO리그와 메이저리그의 장타자로 활약한 강정호를 멘토로 삼았다.
손아섭의 생애 첫 타격왕을 도운 강정호 스쿨. 그 효과가 김재환에게도 나타나고 있다. 이 감독은 “미국에 다녀오고 더 좋아진 것 같다. 배팅볼투수가 던지는 공만 치고 있어서 섣불리 판단할 수 없지만 뭔가 정립이 된 느낌이 든다. 타격폼만 봐도 알 수 있다. 확실히 지난해와 비교해 굉장히 좋아진 거 같다”라고 기대를 드러냈다.
김재환은 2024시즌 5위 그 이상을 바라보는 두산의 키플레이어다. 새 외국인타자 헨리 라모스, 양의지, 양석환, 허경민 등 많은 중심타자들이 호주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지만 김재환이 4번에서 중심을 잡을 때 타선의 공격력이 극대화될 수 있다. 두산의 지난해 팀 타율 9위에는 김재환의 부진이 제법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감독은 “빅이닝이 없으면 경기를 운영하기가 힘들다. 끝날 때까지 계속 어려운 경기를 해야한다”라며 “모든 건 김재환이 터져주면 해결된다. 타선을 짜기도 수월해진다. 작년에는 무릎도 안 좋고 팔꿈치 수술해서 페이스가 빨리 안 올라왔는데 지금은 예쁜 스윙을 하고 있다. 달라질 거로 본다”라고 잠실 거포의 부활을 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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