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현 감독의 연출이 처음부터 끝까지 좋았다. 제가 많이 배웠다.”
배우 최민식은 17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 서울에서 열린 새 영화 ‘파묘’의 제작보고회에서 “감독님이 형이상학적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영화적으로 조작해 나가는 과정이 좋더라. 모든 감독님들이 열심히 하지만 장 감독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본인이 원하는 조건이 될 때까지 가더라. 배우가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수장이었다”라며 이 같이 밝혔다.
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제공배급 (주)쇼박스, 제작 ㈜쇼박스·㈜파인타운 프로덕션, 공동제작 ㈜엠씨엠씨)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
최민식의 말에 장재현 감독은 “최민식, 유해진, 김고은 모두 경험이 많은 배우들이다. 저도 찍다가 헷갈리면 중간에 ‘잘 모르겠다’면서 배우들과 회의를 한 적도 있었다. 이 배우들에게 기대면서 많이 웃은 현장이었다”고 돌아봤다.
장 감독은 이어 “영화는 이장 의뢰를 받고 미스터리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진 과정을 담았다”며 “제가 어릴 때 시골에서 살며 (밖에서) 놀았다. 그때 밟고 놀던 묘가 있었는데 당시 고속도로가 생긴다면서 묫자리를 이동하게 됐다. 그때의 흙냄새와 색깔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땅 안에서 나무관을 꺼내고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봤을 때, 관을 통해 느껴지는 무서움과 두려움 등 복합적 감정을 느꼈다. 그때 ‘나는 관을 참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관을 보면 가슴이 콩닥콩닥거린다. 제가 ‘관 페티시’가 있는 거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종교에 관한 영화는 아니”라는 장재현 감독은 “우리가 사는 땅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재차 강조했다.
배우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이 각각 땅을 찾는 풍수사, 원혼을 달래는 무당, 예를 갖추는 장의사, 경문을 외는 무당으로 분했다.
최민식은 풍수사 상덕 역을 맡아 또 한번 캐릭터 변신을 시도했다. “저는 원래 무서운 영화를 안 본다. 근데 장재현 감독 때문에 하게 됐다”고 출연 이유를 전했다. 그는 데뷔한 지 35년 만에 처음으로 오컬트물을 하게 됐다.
출연을 결정한 또 다른 이유에 대해서는 “상덕은 반 평생 풍수를 직업으로 삼은 속물 근성을 가진 인물”이라며 “근데 상덕이 땅을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땅을 향한 그의 가치관이 좋았다. 세계관이 명확한 사람이다. 땅에 대한 가치와 고귀함을 유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고 와 닿았다”고 설명을 더했다.
이어 최민식은 “어릴 때부터 굿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걸 좋아했다. 요즘엔 미신이라고 터부시하나, 과거의 노인들은 동네에서 집에서 굿을 많이 했었다”며 “저는 굿을 보면서 한 편의 공연을 보는 거 같더라. 기승전결과 카르시스가 담겼다. ‘파묘’에서 나온 굿 하는 신은 아주 좋다. 김고은이 역할을 아주 잘했다. 보면서 너무 걱정하기도 했는데 ‘이러다 투잡 뛰는 거 아닌가, 돗자리 까는 거 아닌가’ 싶더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원혼을 달래는 무당 화림 역의 김고은은 “일단 배우 생활을 열심히 해보고 안 되면 한번 고려해 보겠다”고 화답했다. 이어 김고은은 “(무당이) 전문직이기 때문에 직업적 특성과 행동,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을 어설프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젊지만 능력을 인정받은 프로페셔널 무당이다. 그런 모습을 잘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녀가 출연을 결정하는 데 배우 박정민의 제안도 있었다.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을 찍고 있을 때 박정민이 대뜸 전화해서 ‘파묘라는 대본을 봐달라’고 하더라. ‘사바하 감독님이 너를 원하는데 너가 그 대본을 거절할까 봐 내가 미리 얘기를 한다’고 하더라”는 일화를 전했다.
그러면서 김고은은 “박정민이 ‘장재현은 내가 사랑하는 감독님이다. 사바하를 하면서 행복했는데 인간적으로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칭찬하더라”고 ‘파묘’ 시나리오를 관심 있게 볼 수 있었던 계기를 밝혔다.
‘대살굿’ 신에 대해 “큰 굿이어서 사전에 무속인 선생님, 감독님과 동선을 짜며 리허설을 했다. 어떤 동작을 넣을지, 어떤 퍼포먼스를 넣을지 상의한 것”이라며 “특히 신 내림 받을 때 몸짓이나 춤사위를 알기 위해 무속인 선생님의 집에 자주 찾아갔었다. 밥이 너무 맛있어서 식사를 하면서 배웠다.(웃음) 피땀눈물이 들어간 영화”라고 준비한 과정을 들려줬다.
이에 최민식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말이 있듯 김고은이 굿하는 연기를 할 때 집중해서 지켜봤다. 김고은의 파격적인 모습이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장의사 영근을 연기한 유해진도 김고은을 칭찬하며 “감독님이 욕심이 많으신 분이라 ‘다시 한 번 가자’고 했을 때 김고은이 찌푸리지 않고 또 하는 걸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촬영기를 떠올렸다.
유해진은 그러면서 “화림과 봉길(이도현 분)이 파트너라면, 영근과 상덕이 파트너”라며 “영근이 상덕과 오랜 시간 작업을 해서 그 세월이 관계에 녹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민식 선배님이 어떤 역할을 맡든 캐릭터에 녹아 있어서 걱정은 안 했다. 처음부터 너무 편했다”고 말했다.
장재현은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실제 같은 오픈 세트를 구현해냈다. “이상하게 볼 때마다 기분이 안 좋은 묘를 구현하고 싶었다. 원래는 실제의 산꼭대기에 묘를 만들어서 찍으려고 했다. 거기서 한 달 가까이 촬영을 해야 하는데, 겨울에 눈이 오면 촬영이 힘들다. 그래서 오픈 세트를 지었다. 진짜처럼 미술팀이 잘만들어주셔서 리얼하게 담겼다”고 예고했다.
장 감독은 “전작들과는 정반대의 스타일로 작업했다. 그동안 어떻게든 예쁘게, 한 컷 한 컷 공을 들였다”며 “‘파묘’는 안 보이는 기운과 에너지를 담고 싶었다. 움직이는 기세가 있는데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를 담고자 했다. 예쁜 그림보다 배우들과 공간에서 나오는 에너지 등 눈에 안 보이는 걸 찍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느낀 불확실성에 힘들었다”는 고된 촬영기를 회상했다.
영화 ‘검은 사제들’(2015), ‘사바하’(2019) 등을 통해 일명 ‘오컬트 장인’이라고 불리게 된 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 예고편이 1800만뷰를 기록한 만큼 ‘파묘’의 흥행 여부에 기대가 쏠린다.
극장 개봉은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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