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드라마, 영화 제작진이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연상호는 그 중에서도 꾸준히 다작하는 감독으로 손꼽힌다. 만화가이자 애니메이션・영화감독, 그리고 각본가로서 다양한 소재를 생명력 있게 재현하고 있다. 그런 그가 극본에 참여한 드라마 ‘선산’으로 전세계 시청자들을 만날 준비를 마쳤다.
‘선산’(극본 연상호·민홍남·황은영, 연출 민홍남)은 존재조차 잊고 지내던 작은아버지의 죽음 후 남겨진 선산을 상속받게 되면서 불길한 일들이 연속되고 이와 관련된 비밀이 드러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로, 이달 19일 오후 공개된다. 선산은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산을 가리킨다.
연상호 감독은 1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OSEN과의 인터뷰에서 “시골 마을의 사이비종교나 선산이라는 소재를 떠올렸는데 선산이라는 소재가 재미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선산이라는 소재를 손에 쥐게 되면서 이게 무엇에 관한 이야기일지 고민했다. 선산은 아무래도 가족과 연관된 것이니, (그 중심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선산에 대한 이미지가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최초의 사회이자 따뜻한 가족에 대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있어서 재미있겠다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전했다.
이어 연 감독은 “두 개가 상충되는 통념인데 장르적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을 했다. 초현실적인 이미지가 들어감으로써 시리즈 전체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싶었다. 가족이 그 원동력인데 어떻게 보면 가족은 종교적인 느낌도 든다. 사실 가족이 이렇게까지 충격적, 극단적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중성은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가족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싶다”고 가족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가족의 이중성에 대해 연상호 감독은 “저도 아이 둘을 키우는 아빠인데 힘들다.(웃음) 가족의 이중성을 내가 받아들일 준비가 돼야 한다. 저의 큰 아이만 해도 저와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다. 제 자식이자 하나의 객체이기 때문에 인정해줘야 할 거 같다”고 가족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연상호 감독은 이어 “제 작품에서는 항상 가족이라는 개념이 등장해왔다. ‘선산’을 통해서 더 깊숙하게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며 “‘선산’의 인물들이 통념과는 멀지만 봤을 때 이해할 수 있길 바랐다. 마지막 선택에서 다른 감정을 남기고 싶었다”고 소재와 주제를 정한 이유를 전했다.
그러면서 연 감독은 “어떤 가족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무속적 이미지로 해보자 싶었다. 업보, 죄의 대물림이라는 단어가 잘 맞겠다고 생각했다”고 서사와 인물을 쌓아나간 과정을 들려줬다.
“정상 범위에서 벗어난 가족을 만들어보자 싶었다”는 연 감독은 “그러면 이야기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여기 저기 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그게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됐다. 통념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서 태어난 아이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 가족이라는 단어가 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릴 것인가에 집중하며 극단적으로 설정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깊이감을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현주는 연상호 감독의 ‘지옥’(2021~2024) 시리즈, ‘정이’(2023)에 출연했던 바. ‘선산’에서도 주인공으로 캐스팅돼 네 번째 호흡을 맞췄다.
김현주를 또다시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항상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거 같다. ‘선산’에서도 저는 김현주의 다른 모습을 봤다”라며 “‘지옥’에서 김현주가 인물의 내적갈등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뢰하게 됐다. 그녀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 제가 그동안 알고 있던 것과 항상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거다. 그래서 신선하고 좋았다”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연 감독은 “김현주가 아주 젊었을 때 다른 이미지의 캐릭터였지만, 최근에는 정의로운 이미지를 보여줬다”라며 “‘선산’을 하면서는 김현주의 찌질하고, 욕망을 드러내는 모습을 봤다”고 그녀의 캐릭터 변신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김현주와 네 작품째 작업한 연 감독은 “같이 했던 배우들과 다시 만나면 동료애가 있다. 같은 팀이라는 느낌이 든다. 감독은 힘이 되는 팀을 만든다는 게 쉽지는 않다. 최근에 ‘지옥2’의 촬영을 끝내고 김현주에게 영화적 동료애를 느꼈다”고 말했다. 김현주의 ‘지옥1’ 캐스팅은 OCN드라마 ‘왓쳐’를 시청한 뒤 이뤄졌다.
“김현주를 캐스팅할 때는 추천을 받았다. 평소 저는 독립영화를 보면서 그렸던 이미지와 맞는 배우가 있으면 캐스팅을 한다. 예를 들면 김신록 배우를 ‘방법’에 캐스팅했고, 구교환 배우도 독립영화를 보고 (‘기생수: 더 그레이’에) 캐스팅했다. 전소니 배우도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를 보고 ‘기생수: 더 그레이’에 캐스팅했다”고 전했다.
‘선산’이 전세계 공개된 이후 글로벌 시청자들로부터 듣고 싶은 반응이 있느냐는 물음에 “제가 올드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같이 본 사람들이 격렬한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이 던진 가족의 의미부터 가벼운 얘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연상호 감독은 그동안 연출한 영화, 애니메이션, 만화 등을 합쳐 이른바 ‘연니버스’를 구축했다.
이에 연 감독은 “내 의지와 다르게 언제든 은퇴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한다. 근데 두려움만 갖고 작업을 할 순 없다. 여유가 있어야 작품을 할 수 있는 단계로 진입한다. 그래서 만화 작업도 하면서 (심리적・물리적) 공간을 확보하려고 한다”며 “저도 흥행에 대한 부담은 항상 있다. 근데 그걸 항상 맞출 수 있다면 저는 주식을 해야 한다.(웃음) 제가 ‘돼지의 왕’(2011)이라는 애니메이션으로 인터뷰를 했었는데 당시 ‘어떤 감독이 되고 싶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 제가 ‘적당한 존중과 적당한 조롱을 받으면서 작업하고 싶다’고 대답했었다. 그 말대로 가고 있는 거 같다”고 밝혔다.
꾸준히 작품을 선보이는 그는 “하지만 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작업을 하지는 않는다. 한 작품을 끝내고 그 다음 작업으로 넘어간다”고 자신의 스타일을 설명했다.
이어 연 감독은 “저희 집 근처에 제 작업실이 있다. 큰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작업실에 가서 매일 뭐라도 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오후 5시 반에서 6시쯤 집으로 간다. 그렇게 집과 작업실만 다닌다. 요즘엔 특히나 좁은 일상 안에 있으려고 한다. 그게 마음이 편하다”라며 “작업실에서 사건사고(뉴스)를 접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다큐멘터리, 영화, 유튜브를 많이 본다. 이렇게 생활을 한 지 꽤 오래됐다. 큰 아이가 이제 10살인데, 걔가 태어면서부터 이렇게 살고 있다”고 일상 스케줄을 전했다.
/ purplish@osen.co.kr
[사진] 넷플릭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