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2016), ‘미스터 션샤인’(2018), ‘슈룹’(2022), ‘외계+인’(2022), 그리고 ‘서울의 봄’(2023)까지. 배우 김의성(58)은 다양한 영화 속에서 얕은 꾀를 쓰며 자신만의 이익을 챙기는 캐릭터들을 도맡아 존재감을 드러냈다.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든 그의 이름 앞에 ‘명존세’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이번 영화 ‘서울의 봄’에서는 무능력한 국방장관이다. 자리를 유지하며 이름 좀 떨쳐보려 했으나,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는 내란이 일어나자 냅다 가족들과 도망가 피신한다. 국민들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는 고위공직자 캐릭터다.
김의성은 21일 오후 서울 성수동 메가박스 성수에서 진행된 OSEN과의 인터뷰에서 “실존 인물을 재현한 게 아니다. 그래서 나무위키 정도 참고했다”며 “역사적 사실 그대로 그려진 건 아니고 과장되고 희화화했다. 어쩌면 본래 더 희극적 인물인데 (영화에서) 약하게 간 것일 수도 있겠다. 저는 실존 인물에 매몰되진 않았다”라고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소화한 과정을 전했다.
영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 제공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다. 김의성은 국방부 장관 오국상 역을 맡았다.
그가 넷플릭스 드라마 ‘택배기사’(각본연출 조의석)를 촬영하고 있을 때 ‘서울의 봄’으로부터 출연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김성수 감독님을 20대부터 알고 지냈는데 같이 작품을 한 적은 없었다. 한 번쯤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었는데, 가끔 뵙고 인사만 했다. ‘택배기사’를 찍을 때 감독님과 미팅했는데 처음부터 ‘이 캐릭터를 김의성 배우가 꼭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그때 제가 수염을 기르고 퍼머를 하고 있는 데다 스케줄상 도저히 어려울 거 같았다. 제 꼴을 보여 드리며 못 할 것 같다고 얘기했는데 제 분량을 후반부에 찍겠다면서 기다려주겠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감사하게도 참여할 수 있었다”고 출연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서울의 봄’에 대해 “역사를 배경으로 했지만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좌우이념을 다루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출연에 앞서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드라마 장르 영화이기 때문에 실존 인물들에 대해서 너무 깊게 알아볼 생각도 안 했다”고 김성수 감독과 고민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기억 나는 관객들의 반응과 관련, “이 캐릭터로 인해 저를 한 대 때리고 싶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명존세까지는 아니고.(웃음) 무대인사를 할 때 관객들이 ‘엉덩이를 한 대 차주고 싶다’고 하시더라”며 “국방장관이라는 캐릭터가 진짜 이상한 인물이었다. 밉지만 귀여웠다”고 말하며 웃었다.
‘실제 성격과 다르게 야비한 캐릭터 소화를 잘한다’고 칭찬하자, “제 안에 그런 요소들이 있다. 사람이 누구나 그렇지만 사소한 욕망 때문에 도덕을 저버릴 수도 있지 않나. 맡은 인물에 가장 가까운 저를 찾아내는 것이다. 제가 특별히 새 인물을 창조하는 능력은 없어서 제 안에서 찾아낸다”고 대답했다.
김의성은 자신의 성격에 대해 “저는 이랬다저랬다 하는 변덕이 많다. 하찮은 성격이다. 기분에 따라 좋은 사람, 잔인한 사람도 되는 듯하다. 그런 면이 배우라는 직업을 하기에 좋다. 때에 따라 끄집어낼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서울의 봄’은 누적 관객수 942만 2548명(12월 21일 기준· 영진위 제공)을 기록하며 천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다.
천만 관객 돌파를 앞둔 것에 대해 그는 “이 영화는 흥행이 안 될 조건만 갖춘 영화였다. 죄다 남자배우들만 나오는데 거기에다 대부분 4050 아저씨다. 군복 입고 소리 지르고 전화통화만 하고.(웃음)”라며 “근데 N차 관람을 하신 관객들이 많았다. 한국 인구가 약 5천만 명인데 1천만의 관객이 든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려면 본 사람들이 또 봐야 하고 평소 영화를 안 보던 관객들까지 봐야 한다”고 기적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서울의 봄’ 출연 배우들은 개봉 이후 200회 이상의 무대인사를 진행하며 관객들과 소통했다. 이에 김의성은 “객석을 꽉 채워준 관객들을 보고 울컥했다. 이렇게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아주셨다는 것에 마음이 되게 복잡했다. 기뻤지만 앞으로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야 하나 싶다”는 부담 섞인 행복을 털어놨다.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 소화할 공약을 얘기해 달라는 말에 “제 분량이 많지 않았는데 무슨 공약까지 걸겠느냐”면서 “정우성에게 엉덩이 한 대 차이는 게 어떨까 싶다”고 농담을 던졌다.
‘서울의 봄’은 12·12 군사반란을 소재로, 진압군 대 반란군의 기록되지 않은 갈등을 가능성 있는 상상력으로 촘촘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정치 스릴러 누아르를 표방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자, 자리 하나 꿰차기 위한 기회주의자를 대비시키며 관객들에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김의성은 “그게 이 영화의 감동 포인트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면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 속) 기회주의자들이 최선을 다했다. 서로의 가치관이 정점을 달려서 강하게 울렸다. 역사는 반복되기에 앞으로도 그런 모습은 항상 존재할 것”이라며 “올바르게 산다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 저만 해도 조금씩 비겁해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영화에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울림이 있어서 젊은 층도 열광한 것 같다. 그렇다고 함부로 가르치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 울림이 가슴 속에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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