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민기 대표의 암투병, 학전의 재정난 폐관 위기 등에 후배 아티스트들이 자발적으로 힘을 모아 '학전 AGAIN' 프로젝트가 성사됐다.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지하1층 KOMCA홀에서는 '학전 AGAIN 프로젝트'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배우 설경구, 장현성, 방은진, 배해선, 가수 박학기, 작곡가 김형석, 작사가 김이나, 크라잉넛 한경록, 유리상자 박승화, 여행스케치 루카(조병석) 등이 참석했다.
학전은 '아침 이슬' '상록수'를 만든 가수 김민기가 1991년 문을 연 곳으로, 대학로 소극장 문화의 상징이다. 하지만 김민기 대표가 위암 판정을 받으면서 투병에 들어갔고, 학전 자체가 오랜 재정난을 겪으면서 폐관한다는 소식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번 '학전 AGAIN 프로젝트'는 한국 공연문화의 발원지 학전과 김민기 선생님에 대한 인사를 전하기 위해 론칭하게 됐다. 학전은 1991년 3월 대학로 소극장으로 개관한 이후 다양한 예술 장르간의 교류와 접목을 통한 새로운 문화창조 공간으로서 역할을 해왔다. 소극장 뮤지컬 최초로 라이브 밴드를 도입했고, '지하철 1호선' '모스키토' '의형제' '개똥이' 등 학전만의 특색을 담은 공연을 기획·제작하며, 한국적인 창작 뮤지컬 성장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가수 윤도현·박학기·알리·동물원·장필순·권진원·유리상자·이한철·이은미·자전거탄풍경·여치·시인과촌장·크라잉넛·유재하동문회·하림·이정선·노찾사·한상원밴드·왁스·김현철·한영애·이두헌(다섯손가락)·강산에·정동하·김필, 배우 황정민·설경구·장현성·김윤석·방은진·배해선·정문성·이정은·김원해·전배수·김희원·박명훈·오지혜·최덕문·안내상 등 많은 예술인들이 학전 무대를 거쳐 성장했다.
이런 가운데 학전이 창립 33주년을 맞는 내년 봄, 폐관을 앞두고 '학전 AGAIN' 프로젝트 공연을 진행한다. 학전에서 싹을 틔우고 김민기의 그늘에서 나무로 성장한 문화예술인들이 뜻을 모은 것. 현재 공연 문화에 대한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을, 또 학전과 김민기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공연으로 대신하려는 마음을 담았다.
박학기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부회장은 '아침이슬 50주년' 영상에 대해 "자발적으로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만들었다. 다들 음악을 시작할 때 누군가를 바라보면서 시작한다.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이 김민기 선배님"이라며 "학전은 우리가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는 꿈의 장소였다. 거기서 음악을 시작했고, 많은 연극인들이 나왔다. 덕분에 우리가 뿌리를 내리고 나무로 성장했다. 나름대로 살다보니까 돌아보면 선배님이 그자리에 있는 바위처럼 항상 계셨다. 형님은 나이가 드셨고 힘든 걸 혼자 감내하셨다"고 밝혔다.
이어 "사실 학전이 지금의 원형 형태로 유지하고 있는 게 말이 안 되는 상태다. 자본주의 상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마케팅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걸 하지 않으셨다. 형님을 존경하고 따랐지만 지금은 형님이 많이 나이 들고 아프시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분명 40~50대는 김민기의 노래를 들으면서 마음이 뜨거웠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박학기 부회장은 "이 상황을 보면서 우리 모두가 안타까워했고 김민기라는 사람과 학전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어서, 그 빚을 샆고 싶어서 시작하게 됐다. '형님이 아프다. 어떻게 하지요?'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이렇게 큰 프로젝트가 됐다. 유사 이래 이렇게 큰 프로젝트는 없었던 것 같다. 바로 김민기라는 존재 하나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설경구는 "사실 이 자리에 오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 박학기 형이 연락 왔을 때 안 오겠다고 했는데 몇 시간 후 다시 전화해서 참석하겠다고 했다. 금방 장현성 씨가 사회에 첫 발을 들인 게 학전이라고 했는데, 나도 연기한지 30년 됐는데 학전이 사회생활의 시작점"이라며 "장현성 씨는 오디션을 보고 '지하철 1호선' 작품에 탑승했지만 난 포스터를 붙이다 탑승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날 받아주는 극단이 없어서 용돈벌이 하러 학전에 포스터 붙이러 갔는데, 한 달 정도 붙이다가 선생님이 '지하철 1호선'을 하자고 했다. 왜 하자고 했는지 나중에 물어보니까 성실해 보여서 그렇다고 하더라. 그때가 기억나는데 와이리스가 6개 밖에 없었다. 나랑 무용했던 친구는 노래가 안 돼서 와이리스를 안 줬다. 하지만 끝까지 날 끌고 가서 시작시켜주신 분"이라며 김민기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냈다.
또한 설경구는 "내년 2월부터 공연이 시작되는데 배우들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학기 형이 무대에 올라오라고 해서 올라 갈 것"이라며 "과거 2001년 '지하철 1호선'을 들고 독일 공연을 갔는데, 그때 현지 단원들이 이상한 푸념을 했다. 어마어마한 규묘였는데도 불구하고 불만을 얘기했다. 당시 베를린시에서 제공했고, 일전 부분 경제적 지원도 해줬는데 투정을 하더라. '배부른 소리하지마라 우린 자급자족한다'고 했다. '아침이슬'의 뿌리인 학전도 이제는 그런 재단 쪽에서 이어가 줄 수 있지 않나 싶다. 청년 문화의 상징적인 존재로, 문화적 가치로 상징적인 곳이라고 생각한다"며 애정을 내비쳤다.
김형석 작곡가는 "K팝 근간에는 김민기 형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음악 공연이 펼쳐진 학전이란 공간이 계속 유지되면서 새로운 꿈나무들에게 그런 기회가 마련되면 좋겠다. 역사 있고 의미있는 공연장이 계속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다"고 했다.
유리상자 박승화는 "나의 고향 같았던 학전 소극장이 문을 닫는다는 얘기를 듣고 슬펐다. 가끔 운전하다가 어릴 때 살던 동네만 바뀌어도 마음이 이상한데 대학로 학전 소극장은 그 이상일 것"이라며 "그 섭섭한 마음을 설명할 수 없다. 김민기 선배님의 건강과 학전의 유지를 위해서 애쓰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박학기 부회장은 "오늘날의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가 있는 건 과거 어려운 날 출발했던 누군가가 있었다. 150층이 있기 위해선 누군가 1층을 쌓았다. 계단이 있어서 누군가는 출발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한층 더 쌓는것만 생각하지 '첫 삽을 떴구나'는 생각하지 못한다"며 "지금 많은 분들이 얘기한 것처럼 나도 애들을 데리고 '아빠 살던 곳이야' 하면서 찾아간다. 나의 처음을 보고 시작을 보게 하는 건 계속 출발할 수 있고, 거울을 보게 한다. 관객들에게도 분명히 오늘날 이것이 있기 전에 무엇이 있었는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가 광개토대왕, 세종대왕을 알아야 하나? 특별히 필요한가? 하는데, 분명히 무언가 시작이 있고 뿌리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걸 모르면 자연섭리를 잊고 산다고 생각한다. 음악에 있어서도 그게 꼭 필요하다고 본다. 각광받고 있는 분들만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다"며 "민기 형과 학전에서 노래를 하고 싶다. 내 친구들 중에서도 기사를 보고 전화가 많이 온다. '학전 잊고 살았는데 네 덕분에 그 시절 음악을 듣고 있다.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고 하더라. 공연을 하고 볼 수 있는 다양한 채널과 창구가 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지나가면 묻혀버리는 그런 문화가 많은 듯하다. 새로운 걸 좋아해서 눈부시게 발전하지만 양날의 검"이라고 했다.
이날 Q&A 시간에는 학전의 재정난와 김민기 대표의 건강 상태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박학기 부회장은 "학전의 재정 상태가 엉망이다. 내가 저작권협회 부회장이지만 김민기 선배님은 개인 저작권까지 모두 학전에 넣었다. 개인사업자라서 책임도 본인이 다 했다. 안타깝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우리가 도움이 되면 좋겠다. 우리가 모은 모든 돈은 학전의 재정상태와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 쓰일 것"이라고 알렸다.
방은진은 "(암투병 중인) 김민기 선배님의 치료는 적극적으로 하고 계신다. 평소 생활과 전혀 다르게 지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방은진은 학전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언급하면서 눈물을 닦기도 했다.
장현성은 "주변에서 극장을 닫는다니까 아쉬운 마음이 있다고 하는데, 그때 그 순간 본인의 인생에서 귀중한 시간을 돌이켜 보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조금 슬프기도 하지만 '학전 어게인'이다. 굉장히 기쁜 선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모냥 빠지지 않게' 잘 준비하겠다. 관객분들도 믿고 공연을 찾아주셔도 될 것 같다"며 좋은 공연을 약속했다.
한편 '학전 AGAIN 프로젝트'는 학전 출신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내년 2월 28일부터 3월 14일까지 학전 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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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준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