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딜레마 속 김동준, “예부시랑(최수종) 너마저도..!”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3.12.05 15: 08

[OSEN=김재동 객원기자] 지난 3일 방영된 KBS 2TV ‘고려 거란 전쟁’ 8화에서 현종(김동준 분)은 딜레마에 빠져들었다.
흥화진의 양규(지승현 분)가 거란 40만 군세를 이겨냈다는 소식에 신이 나 직접 백성들 앞에 나가 승전보를 전한 게 얼마 전이다. 헌데 직후 삼수채 전투에서 30만 본진을 이끈 강조(이원종 분)가 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거기다 사로잡힌 후 거란에 신복(臣伏)한 이현운(김재민 분)의 변절로 곽주성과 영주성이 잇달아 함락됐다. 서경의 위기가 목전에 닥친 것이다. 서경이 무너지면 곧바로 개경. 고려 조야는 새로운 선택지를 고민해야 할 처지에 빠졌다.

조정의 대신들은 항복하고 친조(드라마에선 일국의 군주가 상국의 조회에 참석해 신하를 자청하는 의미로 쓰인 모양이다.)를 청하자고 한다.
“항복도 싸울 힘이 남아 있어야 할 수 있으며 싸울 군사가 하나도 남지 않을 땐 저들과 마주 앉을 기회조차 없사옵니다.”는 최항(김정학 분)의 말은 맞다.
“송나라도 군사력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거란과 전연의 맹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전란을 멈춘 덕에 송의 백성들이 그들의 터전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옵니다.”는 채충순(한승현 분)의 말도 틀리지 않다.
“소신들이 항복을 주창한다 하여 소신들을 반역자로 여기진 마시옵소서. 어떻게든 최악의 상황을 막아보려는 것이옵니다.”는 원로대신 유진(조희봉 분)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한다.
“분하고 억울하지만 이것이 위정자의 책무이옵니다. 자신의 굴욕을 감내하고서라도 백성들을 지켜내는 것이 폐하와 소신들의 의무이옵니다.”는 최항의 비장한 덧붙임도 수긍된다.
하지만, 하지만 그것만이 진정 백성들을 위하는 길이란 말인가? 아닐 수 있다. 다른 길도 있을 수 있다. 부디 계속 싸우는 것이 옳다고 나서줄 사람은 없는가? 그때 현종의 눈에 예부시랑 강감찬(최수종 분)이 든다. ‘그래, 저 이라면..’ 싶어 강감찬을 지목했다.
“친조를 청하시옵소서. 소신이 직접 친조를 청하는 표문을 짓겠사옵니다.”라니. 말 그대로 ‘예부시랑 너 마저도!’다.
강감찬 본인 입으로 뭐라 했던가. 승리하기 위해 치른 대가가 아무리 크다 해도 패배한 후에 겪는 고통에는 절대로 미치지 못한다며? 그러니 백성과의 신의가 무너지더라도 패전 소식을 전하면 안된다며? 황제가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선정은 외적을 격퇴하여 백성들의 터전을 수호하는 것이라며? 제 아무리 숭고한 가치도 승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가차없이 버려야 한다며? 그래놓고 항복하고 친조를 청하라? 제 손으로 직접 표문을 쓰겠다고?
아비같이 자상한 늙은 신하인줄 알았다. 바른 말 하기 좋아하는 고집쟁이 신하인줄 알았다. 잘난 척 백성과의 신의를 코웃음치더니 황제의 믿음조차 그리 하찮게 여기고 있었단 말인가.
분노한 현종이 강감찬을 독대했다. 이 늙은 이가 또 무슨 궤변을 늘어놓나 보자고 벼르는 심정으로. 그리고 그제서야 알았다. 그는 승리에 미친 늙은 이였다.
강감찬이 친조를 청한 이유는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거란의 진군을 멈추게 하고 그 사이 동북면의 군사들을 서경으로 입성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강감찬이 적게 될 표문에는 단지 친조, 말 그대로 고려의 군주가 거란의 군주를 직접 찾아가겠다는 것만을 청할 예정이다. 표문 어디에도 항복이란 글자는 없을 것이며 친조의 날짜도 명시되지 않을 예정이었다.
강감찬의 늙은 머릿속엔 친조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임을 알았다. 고려가 황제의 나라가 아닌 거란의 속국이 되는 일은 상상으로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았다.
나라 간의 약속? 외교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신의? 거란을 상대로는 의미 없단다. 어린 아이도 비웃을 거짓명분을 내세워 고려를 침략해온 거란이야말로 신의를 먼저 저버린 것들이니 그런 이들에게까지 공명정대한 외교를 펼칠 이유는 없다고 단언한다. 명쾌하다.
조정 대신들을 속인 이유도 논쟁 벌일 시간이 없어서란다. 대신들의 요구에는 ‘백성’이란 무소불위의 명분이 있다. 백성들의 피와 황폐화 될 국토를 내세우는 한 저들의 논리를 격파해 동의를 구하기까지는 부지하세월이다. 싸우기도 급한 시간에 애도부터 하자는 이들까지 납득시켜 가기엔 시간이 촉박하다. 애도와 반성은 이긴 후에나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강감찬은 꾀만 내지도 않는다. ‘적국의 황제를 기만하는 이 위험한 일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묻자 직접 가겠다며 윤허를 청한 후 손수 지은 표문을 지니고 서둘러 말을 달린다.
실제 강감찬이 사신으로 거란 본영을 찾았는 지는 역사 속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현종이 통주 전투로 서북면의 주력군 소멸 소식을 접하고 동북면의 도순검사였던 탁사정과 중랑장 지채문에게 명령, 서경으로 급히 가라고 한 것은 사실이다.
요나라 사서인 ‘요사’에는 통주 전투 5일 뒤 고려의 사신이 도착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고려사’ 기준 11월 30일로 그 직전에 지채문과 탁사정의 동북면 주력군은 서경에 도착한다.
‘고려거란전쟁’ 8화는 맞는 말들의 향연이라도 국난 앞에 국론 분열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었다. 9화에 예정된 서경성 분전기도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역사상 서경부 유수 원종석은 항복을 결정하고 지채문·탁사정 부대의 입성을 허용치 않는다. 그 역시 항복의 이유를 맞는 말로 다듬었을 터다. 결국 원종석이 잠입한 암수 손에 죽임을 당한 후에야 지채문·탁사정 부대는 입성하게 된다.
통주 패전 소식을 백성에게 알리자는 현종과 그래선 안된다는 강감찬의 대립도 생각해볼 지점이 많다. 우리는 이미 한양 사수를 천명해놓고 야반도주한 선조나, 서울 사수를 외치다 대전으로 도피한 이승만 정부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조나 이승만의 발빠른 도피가 국체 유지에 결정적이었다는 이론(異論)도 있을 수 있으나 그들이 백성과 국민을 기만했다는 사실만은 어떤 미사여구로 맞는 말을 지어내도 이론이 있을 수는 없다.
어차피 현종도 역사상 나주까지는 도피한다. 승리를 위한 작전상 후퇴고 그 몽진을 통해 끝내 거란군을 퇴각시키지만 그 여정이 백성을 기만한 채 이루어지진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난 앞에 나 만, 혹은 우리 만의 옳은 주장이나 무책임한 기계적 중립은 적전분열만 일으킨다. 그런 점에서 최선을 찾아내고 거침없이 추진하는 강감찬의 결단력은 참 영웅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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