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나 쉽게 우리나라 군부가 무너져내렸었다는 걸 성인이 돼서 접하고 놀랐다. 제가 총소리를 들었던 그날의 겨울 밤부터 현재까지 44년이 흘렀는데 제 마음 속에서 의구심이 들었던 일종의 화두였고, 제게는 오래된 숙제라 영화로 갈음해서 보여 드리고 싶었다. ”
김성수 감독은 9일 오후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새 영화 ‘서울의 봄’의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제가 고 3때 저희 집이 한남동이어서 그 총소리를 들었었다. 하지만 당시엔 그게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30대 중반이 돼서 그날의 사실을 알았고 우리나라 군부의 허술함에 당혹스럽고 놀라웠다”라며 이 같이 밝혔다.
이날 연출한 김성수 감독과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김성균 등의 배우들이 참석했다.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 제공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 지난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등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가 일으킨 군사 반란을 주제로 영화를 풀어냈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들이 반란을 일으키게 된 계기와 과정, 인물들이 나눈 대화에는 김 감독만의 상상력을 가미했다.
이날 김 감독은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이 되면 자신의 가치관으로 결정하고 판단하는 순간이 온다”라며 “1979년 12월, 제가 생각했던 상황으로 돌아가서 그 사람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고 판단하는지 극화하고 싶었다. 관객들에게 그날을 영화로 경험해 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전했다.
이어 김성수 감독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시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 역사를 찾아보시지 않을까 싶었다”며 “저는 80학번인데 제 20대는 절망감과 패배감 속에 갇힌 채 흘러가서 아쉬웠다. 그런 관점으로 역사 다큐멘터리를 재현하기보다 제가 생각하는 모습으로 그려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결말에 대해 김 감독은 “처음 잘쓴 시나리오를 받아봤을 때 역사 다큐멘터리만큼 너무 사실적이어서 (연출을) 고사했었다”며 “시간이 흘러 (신군부에) 끝까지 맞섰던 진짜 군인들의 시선으로 그날을 보면 반란군의 승리의 역사가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잘못했는지 알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양쪽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연출에 중점을 둔 부분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감독은 “처음엔 저도 역사적 사실을 샅샅이 봤었는데 각색을 하면서 뒤로 미뤄두었다. 역사와 제 상상을 놓고 저 스스로도 헷갈릴 정도로 재미있게 만들어보자 싶었다. 제가 지금의 늙은 나이로 느낀 바는 인간들이 항상 비슷한 맥락의 잘못을 저지르는 거 같다. 그래서 제 삶을 돌아보며 저를 투영하기도 했다”고 역사를 그대로 재현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상상력을 넣은 부분에 대해 그는 “그들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어서 제가 그들의 속으로 들어가서 제 해석에 입각해 멋대로 만들었다”면서 “제 해석을 배우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해서 멋진 연기로 표현해줬다. 사실과 상상은 하나의 스토리텔링이 될 때 비율을 나누기 힘들다. 역사에서 출발했지만 제 이야기에는 많은 상상이 가미됐다”고 설명을 보냈다.
이어 김 감독은 “마지막 부분엔 저의 이야기의 출발점이었던 사진으로 돌아와 끝내고 싶었다. 그들이 승리의 기록으로 남긴 곳에서 출발해 사람들이 그 시대를 돌아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감독의 말대로 배우들의 연기가 크게 돋보인다. 황정민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모티프로 삼은 전두광 캐릭터를 맡았다. 전두광은 10·26 사건의 배후를 수사하는 합동수사본부장을 겸직하게 된 후, 권력 찬탈을 위해 군내 사조직을 동원해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이날 황정민은 “감독님이 전체 동선을 잡으면 배우들이 모여 연극하듯 연습을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시나리오에 정답이 있어서 저는 있는 그대로 전두광 캐릭터를 만들었다”며 “대머리 가발을 쓴 분장이 어렵진 않았다. 우리나라 특수분장팀이 워낙 잘하기 때문이다. 분장은 초반 4시간 정도 걸렸는데 점차 익숙해지면서 3시간 반 정도 들더라. 근데 콜타임이 아침 7시면 새벽 3시에 일어나는 게 제일 힘들었다. 그점을 빼면 불편한 게 없었다”고 캐릭터를 표현한 과정을 전했다.
정우성은 서울을 지키기 위해 반란군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으로 분했다. “저도 오늘 영화를 처음 봤는데 보면서 느낀 답답함으로 인해 기가 빨렸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어 정우성은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며 “저 같은 경우는 이태신이라는 인물을 만들 때 그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을 맡았던 사람의 (실제)이야기를 배척하려고 노력했다. 감독님이 ‘서울의 봄’에서는 이태신이라는 인물이 가공된 인물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저는 그걸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이전 작업보다 감독님에게 더 많이 기대됐던 인물이었다”고 풀어낸 과정을 들려줬다.
이성민은 반란 세력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대비책을 세우는 육군참모총장 정상호를 연기했다. 정상호는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 분)의 반란으로 납치돼 군사반란의 도화선을 만든다.
“김성수 감독님과 처음 작업을 했다”는 이성민은 “감독님이 저를 선택해 주셨는데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긴장하면서 작업을 했다. 이미 역사적으로 다 알고 있는 걸 연기한다는 게 관객들께 얼마나 긴장감을 줄 수 있을지 걱정했다. 어떻게든 긴장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잘해보려고 노력했던 거 같다”고 캐릭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김성균은 강한 신념을 가지고 반란군에 끝까지 저항하는 육군본부 헌병감 김준엽 역을 맡았다. “저 역시 김성수 감독님과 첫 작업이었다. 여기 계신 선배님들을 다 존경해서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참여를 했다”고 출연한 이유를 밝혔다.
이어 그는 “이미 결말을 알고 있지만 손에 땀을 쥐면서 임했다. 현장 역시 너무 재미있고 좋았다”고 돌아봤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대해서는 “신념을 가진 인물이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똑바로 가는 사람”이라며 인물의 신념에 집중해서 표현했다고 덧붙였다.
김성수 감독은 끝으로 “영화 만든 감독이 이렇게 얘기하는 게 바보 같지만 저는 이 배우들이 연기의 향연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너무 만족스럽고 자부심이 있다”고 극장 관람을 바랐다.
‘서울의 봄’은 오는 11월 22일 극장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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