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거란 전쟁'이 오랜만에 나오는 대하사극으로 업계와 드라마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사극왕' 최수종까지 전면에 내세운 캐스팅 라인업으로 민족주의적 전개에 대한 최근 시청자들의 반감과 디테일한 전쟁씬, 세대를 뛰어넘은 교감을 이룰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KBS는 9일 오후 서울시 구로구 신도림동 디큐브시티 더 세인츠에서 2TV 새 대해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극본 이정우, 연출 전우성 김한솔) 제작발표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배우 김동준, 지승현, 이시아, 하승리, 최수종이 참석해 전우성, 김한솔 감독과 함께 윤인구 아나운서의 진행 아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고려 거란 전쟁'은 관용의 리더십으로 고려를 하나로 모아 거란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고려의 황제 현종과 그의 정치 스승이자 고려군 총사령관이었던 강감찬의 이야기를 그린 대하사극이다. KBS가 공영방송 50주년을 맞아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대하사극의 부활을 내걸고 특별기획한 작품이다. 이를 위해 KBS는 총 270억 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기존 예능이 방송되던 KBS 2TV 밤 시간대 편성을 재편해 대하사극 시청 시간대를 마련했다.
이를 위해 '고종 순종 최수종'으로 불리는 한국 사극의 아이콘 최수종이 강감찬 장군 역할을 맡아 출연한다. 그로서는 지난 2013년 종영한 드라마 '대왕의 꿈' 이후 10년 만에 출연하는 대하사극이다. 김동준은 강감찬의 정치적 제자이자 동반자인 고려 황제 현종 역을 맡아 출연한다. 그 역시 2013년 방송된 드라마 '천명: 조선판 도망자 이야기' 이후 10년 만에 사극에 도전해 호기심을 자극한다.
여기에 지승현이 흥화진의 늑대라 불리는 장군 왕규, 이시아가 기품 있는 황실의 여인 원정왕후, 하승리가 궐 밖의 여인이었으나 황제의 아내가 된 원성왕후 역을 맡아 함께 한다. 이 밖에도 이원종이 고려 장군 강조, 김준배가 거란의 장수 소배압 역을 맡아 긴장감을 높인다.
# 민족주의 탈피, 고증으로 해답 찾나
'고려 거란 전쟁'에 앞서 국내 '대하사극' 장르는 긴 시간 공백기를 겪었다. 제작비가 급격하게 인상되며 대하사극의 막대한 비용을 충당하기 어려웠던 탓도 있지만, 자국 역사를 지나치게 미화한다는 민족주의적 전개, 소위 '국뽕'에 대한 시청자 일각의 반감도 한 몫했다. 제목부터 고려와 거란의 전쟁사를 다룬 '고려 거란 전쟁'은 이 같은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전우성 감독은 "적군까지도 고증을 마치고 규격화된 군복을 입혔다. 실제 당시 거란은 적군이지만 군사력에서도 당대의 탑이었고, 문화적으로도 뛰어난 국가였다. 그래서 극 중 적군 황제인 야율융서와 장수 소배압도 강력하게 그려냈다. 당연하게도 강력한 적군을 이겨낼 수 있어야 당시 고려의 뛰어난 모습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통되게 남은 양국의 기록들을 참고해서 입체적으로 재현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라고 고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나아가 그는 작품의 메시지에 대해 "그 시대와 이 시대의 유사점이 있다면 현재 우리는 미중 간의 헤게모니 다툼이 격화돼 있다. 고려 거란 전쟁 당시에는 중원에서 송과 거란의 싸움이 있었다. 송이 거란에게 돈을 바치면서 평화를 유지하고 거란은 패권국이 되려고 했지만 두 나라 모두에 고려가 필요했다. 그 와중에 고려가 외교적으로 어떤 입장을 선택했는지가 물론 지금과 똑같이 붙이면 안 되지만 다같이 생가해볼 만 하다고 봤다. 실제 거란이 침입했을 때 현종과 강감찬, 권력자 강조, 신하들의 입장이 다 다르다. 작가님이 그 세 가지에 대해 다 그럴 수 있겠다 생각할 만큼 입체적으로 만들어주셨다. 어떤 메시지를 드리기 보다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의 장이 이 드라마를 통해 같이 열리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 전투씬 디테일, 대회전 귀주대첩도 살릴까
작품 전반의 전투씬을 지휘한 김한솔 감독은 "저는 이 드라마의 제목을 제일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다. '왜 그 시대냐'라고 물을 때 우리 민족의 가장 빛난 시간이 이 때 아닐까 생각했다. 고려라는 말 자체가 코리아의 어원이라고 하지 않나. 당시에는 고려를 '고리'라고 읽었다고 하더라. 그 이후 한반도 나라의 이름은 바뀌었지만 해외에서의 이름은 코리아다. 그 기원이 맞닿아있다고 봤다"라고 했다.
특히 그는 "전쟁을 하면 사람이 죽지만 고려 거란 전쟁은 평화를 이룬 전쟁이다. 거란은 패권국을 꿈꾸고 계속 전쟁을 일으키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귀주대첩에서 우리가 승리함으로써 거란의 전쟁을 막았다. 이후 100년 동안 동아시아는 전쟁이 없다. 그래서 아라비아 상인들이 벽란도를 통해 고려에 직접 들어오고 아름다운 코리아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우리 한민족의 가장 밝고 화려한 멋진 시간이 그 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귀주대첩은 기적같은 최수종 장군님의 승리다. 이후 저희가 땅따먹기를 하려고 올라간 전투가 아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춰서 송나라와 거란에게 평화를 제안한다. 그게 너무 멋지게 다가왔다"라고 덧붙였다.
김한솔 감독은 또한 전쟁 씬에 대해 "시대적으로도 그렇고 '전쟁'이 좋은 말은 아니다. 그런데 제가 전쟁 담당이다. 살육을 좋아하고 그런 건 아니다. 동아시아 패권을 잡기 위해 거란이 정말 많은 전쟁을 펼칠 떄 우리가 평화를 이룩한 훌륭한 시간이라 멋지게 다루고 싶었다. 전쟁을 멈춘 전쟁이다. 아름다운 시간이다. '대하사극'을 많이 말씀해주시는데 '대하'가 무슨 말인지 안 지 얼마 안 됐다. '큰 강'이라는 뜻이더라. 그 뜻을 알고 더 좋아했다. 장쾌하고 넓은 강을 보는 느낌의 사극이지 않을까 싶다. 항상 스펙터클과 결부될 수 밖에 없다. 아시다시피 제작비가 워낙 상승하다 보니 너무 많은 비용이 필요해졌다. 엄두를 못내다가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드라마가 오랜 만에 나왔다"라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저희가 정말 고민을 많이 했고 파격저인 촬영을 했다. KBS 드라마 센터 한 부지를 철거하고 엄청나게 큰 대형 크로마 세트장을 지었다. 귀주대첩은 99%를 거기서 다 찍었다. 한국 사극 역사상 최초일 거다. 그 곳을 뭐로 채우냐면 그 뒤는 또 우리 내부의 역량과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CG 업체가 참여해서 채워줬다. 앞에 있는 전쟁 의상이나 사물들을 채워주셔서 적절히 배합해서 촬영했다. '대하'라는 말에 걸맞은 게 귀주대첩, 흥화진 전투다. 귀주대첩의 경우 대회전이다. 각국의 20만 명, 10만 명이 모여서 싸운 거다. 대한민국의 삼대첩인데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기술력이 뒷받침 되지 않아서 그러지 않았나 싶다. 이번에 기술력이 뒷받침 돼서 대규모 인원이 총 연출을 해냈다. KBS 지금까지 CG료의 몇배를 사용했다. 그걸 허락해주셔서 감사하다. 그 고려의 기원을 한번 알리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작품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최수종 또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 "'고려 거란 전쟁'에는 세 개의 큰 전쟁이 있다. 삼수채, 흥화진, 귀주대첩. 그렇지만 전쟁 드라마가 아니라 사람 사는 이야기다. 다 사람 사는 이야기 중에 사랑이 부족해서 욕심이 생기면 남의 것을 탐하고 그런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다 나와있다. 그 속에 펼쳐지는 사람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진짜다. 저를 믿어 달라"라고 자신했다.
# 대하사극=중장년층 전유물? 시청 세대 통합 관건
그런가 하면 최수종은 "예전에 대하드라마를 하면 제가 막내였다. 그런데 이번에 제가 제일 어른이다. 저보다 선배가 없다. 제가 움직이면 후배들이 다 일어난다"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작가 선생님이 써주신 것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표현하려고 한다. NG도 안 내려고 한다. 제가 어떤 길을 가고 어떤 배우가 되려고 하는지를 후배들이 같이 하는 동안 제 모든 게 정석은 아니지만 봐줬으면 좋겠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제가 대하드라마를 몇 편 했을 뿐인데 감사하게도 '사극왕'이라고 해주신다. 아니다. 훨씬 더 잘하시는 선배님들 많으시다. 모든 드라마를 할 때 떨리고 부담감이 든다. 아직도 기운은 날아다닌다. 다시 국어사전을 어플로 찾아서 보통 친구들보다 처음 대본 읽는 시간이 두배로 길다. 제가 읽는 부분에 장음, 단음 표시를 하기 때문에 그렇다. 국내 방송 뿐만 아니라 넷플릭스 방송이 된다는 소식도 듣고 그런 것에 대한 부담감, 더 잘 만들어야 하고 인물을 잘 표현해야 한다고 해서 말씀드린 작가 분들이 원하는 강감찬의 표현을 위해 열심히 하고 있다. 아직 방송도 시작 안 했는데 연말 상은 꿈도 꾸지 않고 있다"라고 겸손을 표했다.
작품에 대한 자신감 만큼 목표 시청률은 높았다. 과거 출연작으로 60% 대 시청률을 기록한 적도 있는 최수종은 자신의 출연작 중 10위 안에 대부분의 작품이 4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터. 이에 "소망하기를 10위 안에 들고 싶다"라며 "'고려 거란 전쟁'은 정말 대하사극 중에 최고의 사극이었다"라고 한번 더 강조했다.
공교롭게도 동시간대 경쟁작인 MBC 금토드라마 '연인'에도 출연 중인 지승현은 "요즘 사극이 정말 많다. 저 역시도 '연인'도 나왔고 다들 재미있게 보고 있다. '고려 거란 전쟁' 역시 대하사극이지만 팩션이다. 사실에 기반을 두고 없는 부분을 채워나가는 드라마다. 그런 이야기를 예전에는 최수종 선생님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서 역사 공부를 했는데 요즘은 역사가 선택 과목으로 바뀌었다는 아쉬운 얘기도 있더라. 시청자 분들이 함께 이야기하면서 이래서 우리가 '코리아' 구나라는 말을 듣고 싶다. 요새는 화제성이 대세라고 해서 시청률보다 화제성 1위 도전하겠다"라고 강조해 중장년층 시청자들 위주의 시청률 순위 뿐만 아니라 2049 시청자들 위주의 화제성 순위 또한 겨냥한 점을 밝혔다.
이 밖에도 김한솔 감독은 "'고려 거란 전쟁'의 시기는 정말 대한민국이 가장 빛났던 시절이다. 말씀드린 대로 코리아가 전세계로 퍼져나간 시기다. 그래서 시청률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특히 해외에서 많이 보셨으면 좋겠다. 역사라는 게 결국 어떤 면에서는 민족의 자긍심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우리나라 가수들이 전세계를 휩쓸고 기업들이 전 세게에서 훌륭한 걸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어디 있을까 보면 이 시기까지 있을 것 같다. 흥화진 전투를 보면 양규 장군이 3천명, 4천명으로 40만을 일주일 동안 막는다. 정말 기적적인 일이다. 그 에너지가 어디에 있을까 했을 때 이 시기에 있는 것 같다. 민족의 에너지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대한민국의 빛나는 시기를 조그만 나라이지만 저력이 있는 나라라는 걸 느끼실 것 같다. 전쟁 담당으로서 말씀드리지만 최수종 장군님 보러 왔다가 지승현 장군님 주워갈 거다. 강감찬 장군님만 알고 있다가 흥화진의 양규 장군님의 활약을 보고 편집하다가 네 번 울었다. 편집감독님이 주책 떨지 말라고 했다"라고 거들었다.
끝으로 전우성 감독은 "촬영은 중반 정도인데 2차 전쟁 끝나가고 있다. 촬영하는 배우 분들은 그걸 직접 체험하시지만 저는 배우님들 연기를 보면서 전쟁을 체험하고 있다. 촬영하면서 눈물이 여러번 났다. 평화의 소중함. 우리 역사의 빛나느 강점은 지키는 싸움을 했던 것이고 그걸 통해 우리 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에 있다. 드라마 즐겨주시고 평화의 소중함, 평화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출연진과 제작진의 자부심과 정성, KBS의 과감한 투자는 어떤 성과를 이룰까. 수신료의 가치에 한국의 기상을 더한 '고려 거란 전쟁'. 시청자 평가가 달린 첫 방송은 오는 11일 토요일 오후 9시 25분에 KBS 2TV에서 공개된다. / monamie@osen.co.kr
[사진] OSEN 민경훈 기자, K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