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B 윤도현과 박세리가 ‘유 퀴즈 온 더 블럭’ 추석 특집에 출격했다.
27일 오후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는 윤도현과 박세리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날 윤도현은 희귀암 선고를 받은 뒤 극복해가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윤도현은 지난 8월 SNS를 통해 지난 3년 간 암 투병을 해오다가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밝혀 모두를 놀라게 했던 바.
림프종의 일종인 희귀성 암 선고를 받은 그는 “치료가 끝나고 6개월 정도 있다가 의사 선생님께서 암세포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축하드린다고 하시더라”며 “기사가 이렇게 많이 날지도 몰랐다. 정말 많은 분들이 연락을 해주셔서 이번에 많은 사람들이 걱정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구나를 다시 한 번 느꼈다.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매년 건강검진을 받아왔다. 건강해야 음악도 할 수 있으니까. 별 이상이 없이 늘 서면으로 결과를 받았다. 그때도 서면으로 받기로 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전화가 병원에서 와서 병원에 오셔서 결과를 들었으면 좋겠다 하시더라. 안좋은게 나와서 직접 말씀드려야 될 것 같다 하는데 심장이 벌써 뛰더라”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설마 암은 아니겠지 하고 병원에 갔는데 암이라고 말씀을 하시더라. 순간 정말 많이 놀랐다. 당황스럽다는 게 이런거구나 머릿속이 하얘지더라”라며 “그래도 다행히 초기에 발견 됐고 희귀암이긴 하지만 치료를 하면 낫는 암이니까 열심히 해보자 하시더라. 진행이 5년 전부터 시작됐더라. 발견하기가 어렵다. 추적해보니 발견 5년 전부터 조금씩 진행되어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모님께도 알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그는 “자식 걱정을 많이 하지 않냐. 도저히 말씀을 못 드리겠더라. 조심스럽게 계속 숨기고 있다가 1차 약으로 치료를 하는데 부모님한테는 놀러간다고 했다. 1차에서 웬만하면 없어진다고 하는데 안 없어지니까 좌절감이 들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1차 치료 실패하고 2차는 방사선 치료인데 신중하게 결정했다. 몸이 힘들수도 있어서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투병 중에도 라디오, 뮤지컬 등 활발하게 활동한 그는 “라디오는 빠질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알려지니까. 치료를 받을 때 라디오 스태프들에게 알렸다. 한 달간 힘들 수도 있다고. ‘라디오는 할 수 있다, 걱정하지 마라’ 하고 매일 정확한 시간에 치료를 받아야 해서 오전에 치료를 받고 점심 식사하고 라디오를 갔다”며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몸에 신호가 오더라. 소화가 안되고 구토가 나고 피로감이 남달랐다. 라디오 끝나고 오면 말라비틀어진 느낌이 든다. 그때 몸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윤도현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받아들이고 완치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기고 나서 부터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 활동을 많이 했다. 록 페스티벌도 하고 단독 공연을 17도시를 6개월간 돌았다. 정말 열심히 했다”고 전했다.
그는 암 투병 사실을 밝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암 환자라는 것을 밝히면 저 때문에 멤버들과 회사에 피해가 생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무래도 스케줄도 줄거고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다. 약물도 방사선 치료도 힘들었다. 라디오할 때 목소리가 잘 안나오더라. 극복하려고 라디오 하면서도 계속 먹으면서 하고 그러면서 버텼다. 라디오 하면서 암 환자 분들이 진짜 많지 않나. 그런 분들이 사연을 보내시면 공감이 너무 되니까 코멘트가 너무 진심이었다. 결국 제가 듣고 싶은 말을 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암 환자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SNS로 완치 사실을 밝혔다는 그는 “저도 겪었으니까 치료받으면서 힘드시고 또 심적으로도 아마 많이 위축되실 텐데 똑같은 시간이라면 긍정적인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며 “많은 환자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셨다. 그 댓글을 보면서 몇날 며칠을 답을 다 달았다. 그 마음을 아니까 답을 안할수가 없더라. 저도 응원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커지면 결과도 좋게 나오는 것 같더라. 가족분들 옆에서 힘드실텐데 다함께 힘내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윤도현은 ‘사랑 Two’, ‘오 필승 코리아’, ‘사랑했나봐’ 등을 무반주로 부르는가하면 자신에게도 의미가 깊은 ‘흰수염고래’ 무대를 꾸미며 희망을 전했다.
다음으로는 한국의 골프 영웅 박세리가 등장했다. 그는 골프를 시작하게 된 계기로 “제가 둘째 딸이고 세 자매 중 유일하게 운동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육상부에서 육상을 했고 중학교도 육상부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갔다. 그런데 아버지가 6학년 때 골프를 해보라는 제의를 하셨다. 골프 연습장에 데려가서 쳐봐라 했는데 그때는 흥미가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런데 아버지 친구분이 골프 대회 관람을 데려 갔는데 학생 선수들을 소개해주셨다. 뭔지 모르는 스파크가 튀었다. 해봐야 겠다 하고 시작했다. 제가 욕심이 많다. 내가 무엇을 선택하든 항상 최고가 될 거야 라는 생각이 있었다. 또래 친구들에게 자극을 받아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16살에 중학생 아마추어 신분으로 프로선수를 제치고 우승하며 이름을 알린 박세리는 스무살에 미국 LPGA에 도전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되게 부정적이었다. 환경 조차 너무 다르다보니까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들어올 건데 왜 굳이 가냐 했다. 영어 공부도 안하고 단순하게 큰 무대에 가보고 싶다 생각에 무작정 갔다”고 밝혔다.
US 오픈에서 최연소 우승한 박세리는 당시 양말을 벗고 맨발로 물 웅덩이에 직접 들어가 퍼팅을 하는 모습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는 “처음에는 공이 빠진지 몰랐고 물 근처까지 갔겠구나 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가니까 연못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그런데 공이 잔디 위에 떠있더라. 기회가 남았구나 아직 끝난게 아니구나 싶어서 도전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진출하면서 목표 중 하나가 저 대회를 선수 마감 전에 한 번이라도 우승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첫 출전에 이룬 거다. 저 대회 우승하고 부터가 저도 시작이었다. 하면 되는구나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하나도 없다. 선수 생활을 오래했지만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손의 감각이 최고였던 게 그 때 한 번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이후 슬럼프를 겪었다는 박세리는 “1년 반 정도 힘들었다. 국내 대회 초청 이후 미국 대회를 바로 와서 했는데 그때 시작이 됐다. 시차때문에 피곤해서 그렇겠지 하고 넘어갔는데 다음대회에서 더 안좋더라. 입스가 오는데 필드에 서는 순간부터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어떻게 해야 되지 그런 생각밖에 안들었다. 어제와 다른 나가 너무 무섭더라. 하루하루가 너무 괴로웠다”고 고백했다.
그는 “옆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린거다. 힘들어 근데 나만 힘든 거 아니니까 그렇게 최면을 걸면서 더 잘하려고 채찍질만 했던거다. 잘했다 수고했다를 한 번도 안했다. 번아웃 처럼 와버린거다. 그다음부터는 하나씩 정리를 했다. 시작했던 나로 다시 가보자 하고 하루하루 다르게 생각했다. 오늘이 좀 더 나아진 것 같다 생각 하다보니 어느순간 다시 연장전에 가게 되고 또 우승을 하고 재기를 했다. 그 대회가 큰 의미였다. 너무 기뻤다. 다시 돌아올 수 있어서”라고 전했다./mk3244@osen.co.kr
[사진] ‘유 퀴즈 온 더 블럭’ 방송화면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