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장르, 이런 소재의 영화가 없지 않았나. 주목할 만한 신인 감독의 등장이다. 자극적인 요소 없이 일상적으로 잘 녹인 복합장르의 영화다.”
이선균(48)은 24일 오후 서울 안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OSEN과의 인터뷰에서 내달 6일 극장 개봉하는 영화 ‘잠’에 대해 “‘이 양반이 다 계획이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유 감독님이 낭비 없이 영화를 잘만들었다. (나중에 골라서 쓰기 위해) 일부러 더 많이 찍어놓지도 않았고 콘티 그대로 가면서 촬영 분량의 90% 이상이 담겼다”고 완성본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잠’(감독 유재선,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 루이스픽처스)은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이선균 분)와 수진(정유미 분)을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 ‘잠’은 올해 5월 열린 76회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부문에 진출해 개봉 전 해외에서 먼저 선보였다.
이선균은 이 영화의 출연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확정되기 전) 봉준호 감독님이 제게 전화를 하셔서 ‘유재선 감독은 아주 훌륭한 친구’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기대가 컸다. 봉 감독님의 말씀이 작품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인데 막상 시나리오를 읽으니 군더더기 없이 너무 좋았다”고 시나리오부터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밝혔다.
이선균이 다정한 남편 현수를, 배우 정유미(40)가 의지 강한 아내 수진을 연기해 ‘찐부부’ 케미스트리를 발산했다. 두 사람은 ‘첩첩산중’(2009), ‘옥희의 영화’(2010), ‘우리 선희’(2013) 등의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 만남이다.
현수 역의 이선균은 “부부가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게 멜로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코믹하게 다가와서 좋았다”고 말했다.
이선균은 몽유병을 않는 현수로 인해 점점 예민해지는 수진의 상태를 강조하기 위한 촉매제 역할에 집중했다.
“현수가 수면 도중 이상한 행동을 하는데 막상 잠은 잘 잔다. 근데 또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게 수진에게 큰 영향을 준다. 그래서 감독님과 (현수의) 리액션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초반에는 드러내지 않다가 마지막에 가서 발산하도록, 감정이 변화하는 걸 중요하게 여겼다.”
현수는 무의식 중 날것의 음식을 먹거나,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기행을 벌인다.
현수의 몽유병에 대해 그는 “그 정도 상태면 위험하다. 격리조치를 해야 한다.(웃음) 그럼에도 현수와 수진은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할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게 코미디다. 만약에 제가 그랬다면 아내를 친정으로 보냈을 거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어 이선균은 “그런 행동들을 제가 기괴하게 잘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영화에서 음식을 먹는 장면을 연기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좋았던 거다. 저는 생선 먹는 게 부담됐는데 스태프가 ‘저희가 먹어봤는데 괜찮다’고 하시면서 영상을 보내주셨다. 대본을 보면서 걱정했던 것에 비해 수월하게 찍었다”고 제작진의 노고를 높이 샀다.
유튜브를 통해 몽유병 환자들의 다양한 사례를 찾아봤다는 이선균은 “요즘엔 유튜브에 너무 잘 나와 있어서 계속 봤다”고 캐릭터 연기에 도움을 받은 지점을 밝혔다.
‘잠’은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운 공포영화는 아니지만 오컬트적 요소가 있는 스릴러 드라마다. 이에 이선균은 “주변에서 ‘잠은 많이 무섭냐?’고 물어보더라. 저는 이미 알고 있으니 객관화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선균은 유재선 감독이 기획 의도를 잘살려 완성본에 담았다고 칭찬하면서 “감독님이 장르적인 재미를 넣었다. 그래서 군더더기 없이 일상적인 영화가 나왔다. 촬영할 때도 콘티 그대로 쭉 진행을 했다 보니 버릴 장면이 없더라. 엔딩도 어떤 톤으로 갈지 감독님과 얘기하면서 고민했다. 엔딩에 대해 관객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고 전했다.
공포영화를 잘 보냐는 물음에 “제가 옛날에 ‘주온’을 보다가 중간에 포기했다.(웃음) 옛날에 ‘링’까지는 봤었는데…”라고 답해 웃음을 안겼다.
홍상수(63), 김지운(59), 봉준호(54) 등 배우라면 함께 하고 싶은 감독들과 작업해 온 이선균이 앞으로 더 이루고 싶은 꿈이 있을까.
이선균은 “배우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감독님들을 만난 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그 감독님들과의 작업이 주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 고맙다”며 “어떤 감독님과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보다 제게 주어진 숙제를 잘하고 싶다. 장르나 캐릭터에 대한 욕심은 없다”고 답했다.
“연기 갈증도 있고 채우고 싶은 게 많다. 저는 배우로서 고여있지 않으려고 한다.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단정지으면 정체하게 된다. 물론 한 사람의 표현법이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여러 감독님들과 호흡하면서 찾아가는 거다.”
/ purplish@osen.co.kr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