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를 잘해야 쓰지, 왜 방망이만 잡고 있나.”
이틀 전 ‘천재 유격수’ 김재호의 은퇴식을 본 KT 위즈 이강철 감독이 남긴 말이다. 수비가 돼야 1군에 정착할 수 있고, 수비를 잘해야 김재호처럼 영예로운 은퇴식을 통해 커리어를 마칠 수 있다는 게 인터뷰의 골자였다.
2024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한 김재호는 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5 신한 SOL뱅크 KBO리그 KT와 시즌 12번째 맞대결에서 은퇴식을 가졌다.
중앙고를 나와 2004년 두산 1차지명된 김재호는 오랜 백업 생활을 거쳐 2014년 주전으로 도약, 두산의 세 차례 우승(2015·2016·2019) 주역으로 활약했다. 특유의 넓은 수비 범위와 영리한 플레이, 압도적인 송구 능력을 바탕으로 2015~2016년 KBO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 2년 연속 수상의 기쁨을 안았다.
김재호의 프로 통산 성적은 21시즌 1793경기 타율 2할7푼2리(4534타수 1235안타) 54홈런 600타점으로, 1793경기 출장은 역대 베어스 프랜차이즈 최다 기록이다. 천재 유격수라는 별명과 함께 두산 내야진의 야전 사령관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500승 지도자' 이강철 감독에게 김재호는 ‘수비를 너무 잘했던 선수’였다. 2018년 두산 수석코치로 김재호와 한솥밥을 먹은 이 감독은 “방망이만 좋아서는 야구를 오래할 수 없다”라고 운을 떼며 “감독 입장에서는 수비가 좋으면 방망이를 손해 봐도 계속 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타격도 늘게 돼 있다. 김재호는 손시헌이 있었음에도 수비가 되니까 백업으로 시작해 결국 주전으로 도약했다. 그리고 이렇게 레전드 대우를 받으면서 은퇴까지 하게 됐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김재호는 야구도 잘했고, 무엇보다 수비를 짜증나게 잘했다. 같이 경기하면 짜증이 났다. 주자가 뛰는 거에 맞춰서 영리하게 공을 던졌다. 1, 3루에서 땅볼 타구가 가면 무조건 병살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이 감독의 말대로 김재호의 영예로운 은퇴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공격과 수비를 다 잘하면 좋겠지만,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공격이 아닌 수비를 잘해야 롱런할 수 있다. 이 감독은 “요즘 선수들은 수비가 돼야 올라오는데 다들 방망이만 잡고 있다”라고 작심 일침하며 “어린 선수들이 김재호를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 수비가 돼야 오래 살아남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우리 팀의 경우 권동진도 결국 수비가 되니까 계속 쓸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조성환 감독대행에게 김재호는 키스톤콤비로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 명 유격수였다. 조 대행은 “현역 시절 한 번 만나서 같이 키스톤콤비를 해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난 2루수여서 같이 하고 싶은 욕심이 났다”라며 “지도자가 돼서 한 팀으로 만난 김재호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좋은 선수였다. 팀에 계속 좋은 영향을 미쳤고, 나도 여러 가지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기억에 많이 남는다”라고 좋은 기억을 떠올렸다.
김재호의 ‘천재 유격수’라는 타이틀 뒤에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조 대행은 “내야수들이 김재호 선수처럼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김재호보다 더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만큼 김재호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달려오지 않았나 싶다. 좋은 기억밖에 없다”라며 “하나 덧붙이면 수비 훈련을 할 때 김재호보다 진지하게 하는 선수는 아직까지 없다”라고 김재호를 향해 경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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