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에 드로그바(46)는 아프리카가 낳은 불세출의 축구 스타다. 코트디부아르 태생으로, 일세를 풍미했다. 2000년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아로새겼다. 2006-2007시즌(20골)과 2009-2010시즌(29골)에, 득점왕 타이틀을 품에 안으며 EPL을 호령했다. 2005-2006시즌엔, 도움왕(11개)에도 올랐을 만큼 득점력 못지않은 어시스트 능력도 무척 뛰어남을 뽐냈다.
EPL 마당만 휩쓴 게 아니었다.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역사에도 자신의 이름을 선명하게 새겨 넣었다. 지난달까지 아프리카 출신 UCL 최다 득점 기록은 당연히(?) 드로그바가 보유하고 있었다. 44골! UCL 무대를 수놓은 내로라하는 ‘검은 대륙’ 출신의 뛰어난 골잡이들을 모두 굽어볼 만한 골을 터뜨렸다.
눈부신 득점 기록에 상응하는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음은 물론이다. 첼시에서 맹활약하던 시절, 네 번씩(2004-2005, 2005-2006, 2009-2010, 2014-2015시즌)이나 EPL 우승컵에 입맞춤했다. 2011-2012시즌엔, UCL 등정을 이루는 감격도 누렸다.
역시 진리였다. “영원한 절대 강자는 없다”라는 말은 철칙처럼, 드로그바도 시나브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다. 드로그바가 쌓았던, 무너지지 않을 듯싶었던 아성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균열이 가더니 급기야 붕괴했다.
드로그바 시대를 역사의 뒤안길 속에 묻어 버린 주인공은 모하메드 살라(32·리버풀)다. “드로그바 시대는 저물었다. 이제부터는 나의 시대다”라고 외치듯, 하나씩 하나씩 드로그바의 자취를 지우는 살라다.
‘검은 대륙’ 출신 UCL 최다 득점 기록 경신하며 ‘살라 시대’ 개막 알려
지난 10월 2일(현지 일자), 살라는 UCL 역사를 장식할 만한 뜻깊은 발걸음을 내디뎠다. 아프리카 출신 선수로서 UCL 최다 득점 기록을 세우는 영예를 누렸다. 곧 UCL 역사에서, 드로그바 시대에 마침표를 찍고 새롭게 ‘살라 시대’가 열렸음을 널리 알리는 굵고 깊숙한 걸음을 옮겼다.
이날 2024-2025 UCL 리그 페이즈 2라운드 볼로냐 1909전(2-0 승)에서, 살라가 경기 후반 30분께 터뜨린 추가 득점은 단순한 한 골이 아니었다. UCL을 누빈 수많은 아프리카 출신 선수를 제치고 가장 앞에 나설 수 있었던 뜻깊은 한 골이었다. 45골! 다시 말해, 드로그바가 세웠던 종전 기록을 갈아치우고 한 걸음 앞서 나가는 역사적 한 골이었다. 1955년 ‘유러피언컵’으로 출범했던, 유럽 마당에서 가장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UCL에서, 검은 대륙을 모태로 하는 선수 중 최다 득점 기록을 수립하는 순간이었다(표 참조). 2023-2024 UCL 막이 내릴 때까지 44골을 기록해 드로그바와 공동 선두를 이뤘던 살라에게, 어쩌면 기록 경신은 단지 시간문제였을 뿐일 듯싶다.
살라는 2013-2014시즌 UCL 무대에 데뷔(이하 본선 기준)했다. 스위스 슈퍼리그의 바젤에 둥지를 틀고서였다. 그리고 바젤을 디딤돌로 해 UCL 득점부에 이름을 올렸다. 2골을 뽑아냈다. 2015-2016시즌 AS 로마에서 1골을 보탰다. 살라의 잠재된 득점 능력은 리버풀에서 비로소 활화산같이 불타올랐다. 리버풀에서 맞이한 첫 시즌(2017~2018)에 기록한 11골을 비롯해 모두 42골을 터뜨렸다.
사실, 드로그바의 아성은 이미 2년 전에 균열이 갔다. 그리고 그 균탁의 파열음을 낸 주인공 역시 살라였다. 2009-2010시즌, 드로그바가 세운 아프리카 출신 EPL 최다(2회) 득점왕 기록을 12시즌 만에 깨뜨린 인물이 바로 살라였다. 2021-2022시즌, 살라는 23골을 뽑아내 득점왕 타이틀을 거머쥐며 포효했다. 동갑내기 맞수인 한국인 골잡이 손흥민(32·토트넘 홋스퍼)과 함께 오른 득점왕이었다. 이에 앞서, 살라는 2017-2018시즌(32골)과 2018-2019시즌(22골) 득점왕 2연패를 이루며 드로그바와 어깨를 나란히 한 바 있다.
경기당 평균 득점에 있어서도, 살라는 드로그바를 따돌렸다. 살라는 81경기를 소화하며 45골을 잡아내 경기당 평균 0.56골을 나타냈다. 더 많은 경기(92)에 출장하고도 골 수에서 열세를 보인 드로그바(0.48골)에, 경기당 평균 0.08골의 우위를 보였다. 경기당 평균 득점에서, 살라는 아프리카 출신 UCL 다득점 5걸을 모두 압도하기도 했다.
살라와 드로그바는 각각 한 번씩 UCL 정상에 섰다. 특히 2011-2012 UCL에서, 드로그바는 ‘첼시 우승극’의 히어로였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절대 강자인 바이에른 뮌헨과 맞붙은 결승전에서, 종료 직전(후반 43분) 동점골(1-1)에 이어 승부차기 마지막 주자로 나서 성공시켜(4-3) 첼시에 UCL 첫 우승의 영광을 안겼다. 살라도 못지않았다. EPL 명문인 토트넘과 패권을 다툰 2018-2019 UCL 결승전에서, 전반 2분 만에 선제 결승 페널티킥골을 낚아 완승(2-0)의 주역이 됐다. 아울러, 리버풀이 여섯 번째 빅 이어(UCL 우승컵)를 품에 안고 환호하는 데 1등 공신이 됐다.
드로그바는 2017-2018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반면, 살라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 맥락에서, 살라와 리버풀이 2024-2025 UCL에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궁금하다. 아직은 우열을 가리지 못한 UCL 우승 횟수에서마저, 살라가 드로그바를 제치고 앞장설 가능성이 얼마든지 열려 있음은 그런 궁금증을 더욱 부채질한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