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실수를 한다."
엔지 포스테코글루 토트넘 감독(59)이 '인종차별 가해자' 로드리고 벤탄쿠르(27, 토트넘)를 둘러싸고 징계 이야기가 나오자 공개적으로 그를 두둔했다.
14일(이하 한국시간) 영국 매체 이브닝스탠다드에 따르면 아스날과의 2024-2025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맞대결(15일 오후 10시) 사전 기자회견에 참석한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손흥민을 향해 인종차별한 벤탄쿠르가 징계받을 위기에 처하자 그를 감싸고도는 발언을 했다.
토트넘 미드필더 벤탄쿠르는 손흥민과 관련된 발언으로 인해 잉글랜드 축구협회(FA)로부터 기소됐다. 앞서 12일 ‘BBC’ 등 영국 언론은 “FA가 손흥민을 인종차별한 벤탄쿠르 징계를 검토하고 있다. FA는 인종, 출신국가, 성별 등에 따른 차별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벤탄쿠르가 부적절한 언행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는 FA 규칙 3조1항을 어겼기에 최소 6경기~최대 12경기 출전금지까지 내릴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인종차별 논란을 낳은 상황은 이러했다. 6월 15일 우루과이 TV 프로그램 '포르 라 카미세타'에 출연한 벤탄쿠르는 진행자로부터 한국 선수 유니폼을 부탁받았다. 토트넘의 캡틴 손흥민 유니폼을 원한다는 뜻이었다. 벤탄쿠르도 "쏘니?(손흥민의 별명)"라고 되물었다.
벤탄쿠르는 "손흥민 사촌의 유니폼일 수도 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진행자는 맞장구를 치면서 함께 웃었다. 아시아인 모두가 비슷하게 생겼다는, 명백한 인종차별 발언이다.
논란이 일자 벤탄쿠르는 6월 15일 1차 사과문을 공개했다. 그는 "쏘니 나의 형제여. 일어났던 일에 대해 사과할게. 그건 정말 나쁜 농담이었어. 나는 당신을 정말 사랑하고, 절대 당신이나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상처 주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아줬으면 해. 사랑해 형제여”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사과문은 24시간이면 사라지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라오면서 ‘진정성 논란’을 일으켰다.
토트넘도 가만히 손 놓고 있었다. 구단의 공식 입장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인종 차별에 대해 빠르게 성명문을 발표했던 과거 사례와는 다른 대처였다.
결국 손흥민이 나섰다. 그는 6월 20일 "벤탄쿠르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실수했다는 것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모욕적인 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벤탄쿠르의 사과, 손흥민의 사과 수용과 관계없이 FA에서 벤탄쿠르에게 징계를 내릴 수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징계 가능성이 나오자마자 벤탄쿠르는 재차 사과문을 올렸다. 그는 6월 22일 "인터뷰에서 손흥민을 언급했던 것에 대해 난 그와 대화를 나눴고 우린 깊은 우정을 바탕으로 이 일이 단지 불행한 오해였다는 것을 서로 이해했다"라며 "모든 것은 명확해졌고, 해결됐다. 내 발언으로 기분 나빴던 분들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는 정확히 했다. 벤탄쿠르는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난 손흥민만 언급했을 뿐 다른 누구도 언급한 적 없다. 누구를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모욕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 모두에게 큰 존경을 표한다"라고 덧붙였다.
토트넘은 뒤늦게 "구단 내 어떤 종류의 차별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논란이 절정에 달했지만 벤탄쿠르는 우루과이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2024 코파 아메리카에 임했다.
토트넘의 정확하지 못하고, 안일하게 인종차별 사건을 무마시킨 태도가 오히려 일을 키웠다.
14일 풋볼런던에 따르면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벤탄쿠르의 FA기소에 대해 “예상했던 일”이라며 토트넘은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또 그는 "우리는 이 사건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 기다리고 있다”라면서도 “손흥민과 벤탄쿠르가 사건에 대해 충분히 대화했고, 손흥민은 벤탄쿠르의 사과를 받아들였다”라고 벤탄쿠르를 감싸는 듯한 발언을 했다.
풋볼런던은 벤탄쿠르의 인종차별 발언이 토트넘과 선수 커리어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단 의견을 냈다.
매체는 “인종차별적 발언에 대한 징계는 FA에서 매우 심각하게 다루는 사안이다. 벤탄쿠르가 혐의를 인정할 경우 징계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벤탄쿠르가 이를 부인할 경우, FA는 추가 조사를 통해 징계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벤탄쿠르가 최대 징계(12경기 출전 정지) 만큼은 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는 “우리는 벤탄쿠르가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동시에 그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라며 “우리 모두는 실수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실수로부터 배우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번 사건은 축구계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금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FA는 인종차별 발언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번 기소 역시 그 일환으로 진행됐다.
벤탄쿠르는 FA의 최종 결정을 기다리고 있으며, 그의 출전 가능 여부는 향후 며칠 내에 결정될 예정이다.
FA는 벤탄쿠르가 9월 19일까지 혐의에 대해 답변할 기한을 주었으며, 그의 입장에 따라 징계 수위가 결정될 것이다. /jinju217@osen.co.kr
[사진]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 / 로드리고 벤탄쿠르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벤탄쿠르 소셜 미디어 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