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에도 경기를 강행해서 팬들이 좋아하는 선수가 다치면 어쩔 건가.”
21일 프로야구 수원벌 5시간 21분 혈투의 후폭풍이 거세다. 선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감독관 및 심판 재량에 의존하는 현행 우천 운영 규정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르고 있다.
KT 위즈와 두산 베어스는 지난 21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시즌 10번째 맞대결에서 5시간 21분 혈투를 치렀다. 6회초 1사 후 우천 중단이 선언된 가운데 지속적인 폭우로 인해 대기 시간만 77분이 소요됐고, 두산이 9회초 2사 후 김민석의 적시타로 동점을 만들면서 연장 헛심 공방 끝 2-2 무승부로 경기가 마무리됐다. 오후 6시 30분 시작된 경기가 오후 11시 51분이 돼서야 종료된 이유다.


이튿날 수원에서 만난 양 팀 사령탑은 심판진의 경기 강행 결단을 향해 불만을 표출했다. KT 이강철 감독은 “경기가 중단됐을 때 그라운드 관리 소장님이 경기 불가 판정을 내렸음에도 이를 강행한 건 잘못된 거다. 오늘(21일) 경기를 하게 되면 그라운드 상태 때문에 22일은 물론 23일까지도 경기를 못 한다고 했다. 한국시리즈도 아니고 왜 이렇게까지 한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우리는 김현수가 수비 도중 미끄러지면서 부상자까지 발생했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두산 김원형 감독은 “우리도 안재석이 수비 도중 미끄러졌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경기 도중 주루 쪽에서 뛰어야할 상황이 몇 차례 있었음에도 그라운드가 너무 좋지 않아서 작전을 펼칠 수 없었다”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프로야구 현행 우천 중단 시 기준점은 ‘30분’이다. 우천으로 심판진이 경기 중단을 선언하면 30분을 기다리고 이후 날씨와 기상청 예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경기 재개 또는 취소를 결정한다. 21일 경기는 오후 8시 24분 우천 중단에 이어 최초 9시 재개가 결정됐으나 비가 계속 쏟아지면서 그라운드 정비에 난항을 겪었고, 77분이 지난 9시 41분 경기가 재개됐다.

문제는 양 팀 선수들이 부상 위험에 노출된 채 11이닝을 소화했다는 점이다. 내야 방수포를 해체한 상태에서 폭우가 위즈파크를 덮치며 그라운드가 순식간에 물바다로 바뀌었고, 스펀지로 물을 빨아들인 뒤 복토 작업을 실시했으나 새롭게 깔린 흙이 비를 머금고 진흙으로 바뀌는 역효과가 났다. 선수들은 발이 푹푹 꺼지는 진흙에서 수비를 하고 달렸다. 급기야 부상자까지 발생했다.
결국 무리한 경기 강행은 이튿날까지 여파가 이어져 22일 그라운드 사정에 의한 취소가 결정됐다. KBO 김시진 경기감독관은 “현재 그라운드 복구가 불가하다. 여기서 경기를 했다가는 선수들의 큰 부상이 우려된다”라고 밝혔다. 더 나아가 수원 경기는 23일도 개최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라운드 복구를 위해선 21일 뿌린 흙을 모두 걷어낸 뒤 일광 건조를 진행해야 하는데 경기장이 위치한 장안구 조원동은 계속 비 예보가 있다.

현장이 원하는 건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납득을 할 수 있는 확실한 매뉴얼 정립이다. 실제로 올스타전 감독자 회의 때 우천 시 경기 운영과 관련한 논의가 이뤄졌는데 기존 30분에서 20분을 더해 50분을 기다린 뒤 1시간 이내 그라운드 복구가 가능하면 경기를 재개하고, 그 이상이 소요되면 취소를 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KBO는 향후 실행위원회를 통해 확실한 종합 매뉴얼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강철 감독은 “우천 취소와 관련한 어떤 확실한 공식을 만들어놓으면 팬들, 선수들, 현장 관계자들, 취재진 모두 그 룰을 따르면 되지 않나”라며 “어제(21일) 1시간 넘게 기다리고 다시 몸을 풀러 나가는 선수들을 보는데 다칠까봐 정말 걱정이 됐다. 오죽하면 김현수가 다리가 미끄러져서 허벅지를 다쳤겠나. 매뉴얼 정립이 하루빨리 필요해 보인다”라고 힘줘 말했다.

두산의 경우 만일 현행 30분 매뉴얼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21일 강우콜드 패배를 당했다. 그럼에도 사령탑은 그게 기준이고 룰이기에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144경기 가운데 1경기를 어떻게든 온전히 마치는 것보다 야구장을 찾은 팬들과 선수들을 보호하는 게 우선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원형 감독은 “팬들을 위한 게 크지 않나. 무리하게 경기를 강행해서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다치면 어쩌나”라며 “만일 심팜진이 매뉴얼을 따랐다면 우리는 그날 1-2로 졌다. 두산 팬들은 아마 화가 나셨을 거다. 그런데 우천 중단 및 재개와 관련한 기준점이 명확하면 때로는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좋고 나쁘고는 그 다음 문제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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