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포옛 감독이 전북 현대의 우승을 되돌아보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전북 현대는 5일 오후 전주월드컵경기장의 팬 익스피리언스 센터 내 이벤트 홀에서 하나은행 K리그1 2025 우승 미디어데이를 진행했다. 거스 포옛 감독과 주장 박진섭을 시작으로 이승우와 송범근, 전진우, 최철순, 홍정호가 참석했다.
지난 시즌 강등권까지 추락했던 아픔을 딛고 '명가 재건'에 성공한 전북이다. 전북은 포옛 감독의 지휘 아래 환골탈태하며 지난 33라운드 수원FC전 승리를 끝으로 K리그1 조기 우승을 확정했다.


그 덕분에 전북은 한국 프로축구 최초로 '라 데시마' 통산 10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2009년 첫 우승 이후 2010년대 전북 왕조를 일군 최강희 감독 시절의 기록에 이어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 2021년 이후 4년 만의 정상 등극이자 2018년 이후 첫 조기 우승이다.
한국 축구의 새 역사를 쓴 전북은 오는 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대전 하나시티즌과 맞대결을 앞두고 '우승 대관식'을 진행한다. 경기 시작 전부터 경기 종료 후까지 K리그1 10번째 우승을 축하하는 다양한 요소가 준비돼 있다.


포옛 감독은 아직 우승 뒷풀이를 만끽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뒷풀이는 나중에 할 거다. 우승은 진짜 어려운 일이다. 한 시즌에 한 팀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조촐하게 선수들과 기쁨을 나눴다. 선수들에게도 개인적으로 꼭 뒷풀이를 하라고 했다"라며 미소 지었다.
전북은 시즌 초반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2에서 탈락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포옛 감독은 "새로운 팀에 부임할 때마다 과정이 필요하다. 짧으면 2달에서 6달, 길면 1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라고 운을 뗀 뒤 '박진섭 시프트'를 별의 순간으로 꼽았다.
그는 "첫 원정 경기를 떠나기 전에 박진섭을 센터백 대신 수비형 미드필더로 두고 홍정호를 센터백으로 기용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팀이 전체적으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데 도움이 됐다. 이후로 긴 무패 행진을 달리면서 좋은 시즌을 보낼 수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포옛 감독은 시즌 MVP 후보로 주장 박진섭을 제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주장을 선임한다. 팀을 잘 이끌 수 있어야 하고, 내 전술을 대표해 지휘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주전으로 뛰고, 선수들과 많이 대화하며 배울 점이 있는 선수를 원한다. 박진섭은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내 선택은 절대 틀리지 않았다"라며 "박진섭 MVP 제출은 확답이다. 기사에 적어도 된다"라고 힘줘 말했다.
포옛 감독의 박진섭 칭찬은 계속됐다. 그는 "선수를 평가할 때 선수들의 꾸준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박진섭은 시즌 내내 그 모습을 보여줬다. 팀을 위해 헌신했고, 이기려는 열망과 리더십을 다 갖추고 있다. 박진섭 같은 리더는 전 세계 축구팀을 통틀어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리더가 많이 필요하다. 박진섭이 있어서 나도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다만 박진섭뿐만 아니라 15골 2도움을 기록한 전진우 등 다른 선수들도 내심 MVP 후보를 노리고 있을 터. 포옛 감독은 이에 대해 "기세를 꾸준히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 3~4달 전에는 전진우가 K리그 최고의 선수였다. 시즌 초반에는 수비 조직을 다지는 과정에서 모두가 어려움을 겪었다. 박진섭이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으면서 김영빈이 지난해 전북에 모자랐던 부분을 잘 채워주기 시작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또 이승우가 라커룸에서 팀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분위기 메이커로서 큰 역할을 해줬다. 경기에 나설 때도 많은 역할을 해줬다"라며 "무패를 이어가면서 계속 똑같은 선발 명단을 사용했다. 이름을 일일이 언급할 순 없지만, 뛸 자격이 있음에도 교체로 뛴 선수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 훈련에서도 수준을 높이 끌어올렸다. 출전 시간이 적어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모두 팀에 정말 좋은 역할을 해줬다"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이번 우승은 포옛 감독에게도 지도자 커리어 첫 1부리그 우승이다. 그는 "내게 정말 의미가 크다. 감독으로서 처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건 브라이튼이 3부리그에 있던 시절이다. 전북에 오기 전까지 나의 가장 큰 업적은 선덜랜드를 프리미어리그에 잔류시킨 것이었다"라며 " 이렇게 1부리그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건 감독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업적"이라고 되돌아봤다.
또한 포옛 감독은 "특히 지난해 어려운 시즌을 보냈기에 더욱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내게 전북이 우승할 수 있냐고 질문했다면 취했냐고 했을 거다. 하지만 기적적인 일이 일어나면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1년간 포옛 감독이 직접 겪어본 K리그는 어떨까. 그는 "직접적으로 다른 리그와 비교하긴 어렵다. 외국인 보유 제도나 샐러리캡이 각자 다르다"라면서도 "K리그는 대응하기 어려운 경기가 많다. 스쿼드가 많이 바뀐다. 지난 몇 경기 출전했던 선수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훈련하는데 막상 경기에 나서면 5~6명이 바뀌어 있곤 한다. 대응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래서 단순하게 생각하려 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상대 변화가 많기 때문에 가끔은 감독으로서 좌절스럽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K리그가 다시 아시아 최강이 되기 위해 보완해야 할 점도 언급했다. 포옛 감독은 "전북과 다른 팀들이 AFC 챔피언스리그(ACL)에서 우승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사우디아라비아가 많은 투자를 하면서 완전히 다른 레벨의 스쿼드다. 지난 시즌 알 힐랄과 광주 경기를 보면 광주가 정말 최선을 다했지만, 알 힐랄 스쿼드를 보면 불공평한 경기가 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라고 짚었다.
이어 그는 "재정적으로 K리그가 아시아 리더의 자리를 찾아올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더 좋은 여건으로 국제 무대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할 거 같다. 또 ACL이 추춘제로 바뀌면서 우리가 이번 시즌에 우승해도 내년 가을에나 출전할 수 있는 기이한 상황이기에 보완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우승 비결로는 선수들과 끈끈한 관계를 꼽았다. 포옛 감독은 "선수들과 유대감, 이해 관계가 중요했던 것 같다. 지난해 전북 경기를 많이 보고 분석했다. 전술적 부분은 개선하기 쉽다고 생각했다. 디테일만 조금 바꾸면 될 거라고 봤다. 반면 정신적인 부분은 바꾸기 힘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전 원정에서 스쿼드를 바꾼 걸 계기로 좋은 결과가 따라왔다. 이후로는 경기력이 좋든 나쁘든 이길 수 있는 팀이 됐다"라고 되돌아봤다.
그는 "기록 면에선 26경기 무패 행진을 언급하고 싶다. 정말 놀라운 기록이다. 앞으로 내 감독 커리어에 있어서도 이걸 깨려면 기적이 필요할 것 같다. 그만큼 큰 성취"라며 "팀이 좋은 성적을 내려면 이처럼 기세를 잘 타는 게 중요하다. 브라이튼에서 3부리그 우승했을 때도 초반에 8경기 정도 무패를 달렸다. 선덜랜드에서도 마지막에 기세를 타면서 잔류했다. 하지만 26경기는 앞으로도 절대 안 될 거 같다"라고 웃었다.

'게임 체인저'로 톡톡한 활약을 펼친 이승우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포옛 감독은 "이승우가 시즌 초반엔 주전으로 나섰다. 다만 그가 출전한 포메이션은 내가 그리 좋아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이후 시스템을 바꾸면서 이승우가 자연스레 벤치로 가게 됐다"라며 "스페인어로 직접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좋은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보니 아무런 오해 없이 솔직한 소통이 가능했다. 이승우에게도 벤치에서 시작하겠지만, 항상 너가 필요하다고 직접 말했다. 이승우도 상황을 잘 이해해 줬다"라고 밝혔다.
이제 전북의 다음 목표는 코리아컵 우승이다. 결승전에서 광주를 꺾는다면 시즌 2관왕을 달성할 수 있다. 포옛 감독은 "우승한 이후에 6주 정도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 지난 2~3주는 천천히 준비하기 시작했다. 남은 3주 정도는 강도를 높여 최대한 잘 준비하겠다. 선수들 부상 방지와 경기력 유지가 중요하다"라고 다짐했다.
포옛 감독은 아직 유럽에서 받은 러브콜은 없다고 공개했다. 그는 "유럽 구단에서 제안받은 건 없다. 여름에 몇몇 클럽이 연락하긴 했지만,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거절했다. 아직 전북과 계약 기간은 남아있다. 내일 구단과 중요한 미팅을 할 것 같다. 이미 프리시즌은 계획돼 있지만, 확답은 드릴 수 없다. 먼 미래를 생각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은 코리아컵에서 두 번째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끝으로 포옛 감독은 "구단이 날 먼저 해고할 때는 아무도 감독이 얼마나 충실했는지는 얘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 상황에선 감독이 구단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난 사임이든 경질이든 같은 반응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팀 성적이 좋아서 여러 루머가 나오고 있지만,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 지금까지는 아무 제안도 없기 때문에 전북에 남을 거라고 보면 될 거 같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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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북현대,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