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랭킹 1위와 세계 랭킹 2위지만, 격차는 너무나 컸다. 왕즈이(중국)이 '셔틀콕 여제' 안세영(23, 삼성생명) 상대 7연패에 빠지며 또 눈앞에서 우승을 놓쳤다. 그러자 중국 내에선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중국 '넷이즈'는 27일(이하 한국시간) "5-21로 진 뒤 7-21로 졌다! 왕즈이가 안세영에게 연속으로 참패했다. 하지만 그는 폭격당한 뒤 수상대에서 미소 지었고, 경기 후 너무 힘들다고 솔직히 말했다"라고 보도했다.
안세영은 26일 프랑스 세송 세비녜의 글라즈 아레나에서 열린 2025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슈퍼 750 프랑스오픈 여자단식 결승에서 중국의 왕즈이를 2-0(21-13 21-7)으로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가벼운 승리였다. 안세영은 1게임 초반 잠시 4-6으로 밀렸지만 금세 흐름을 되찾았고, 안정적인 수비로 손쉽게 첫 게임을 가져왔다. 2게임은 압도적이었다. 안세영은 시작부터 연속 5득점을 올리며 치고 나갔고, 한 번의 위기도 없이 21-7 대승을 거뒀다. 안세영이 우승자가 되기까지는 4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로써 안세영은 지난 19일 덴마크오픈 우승에 이어 2주 연속 정상에 올랐다. 시즌 누적 우승은 무려 9회. 이는 2023년 안세영이 세웠던 단일 시즌 여자 선수 최다 우승 기록과 타이다.
안세영은 2025년에만 말레이시아오픈(슈퍼 1000), 인도오픈(슈퍼 750), 오를레앙 마스터스(슈퍼 300), 전영오픈(슈퍼 1000), 인도네시아오픈(슈퍼 1000), 일본오픈(슈퍼 750), 중국 마스터스(슈퍼 750), 덴마크오픈(슈퍼 750), 프랑스오픈(슈퍼 750)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 결과 상금 기록도 새로 썼다. 안세영은 프랑스 오픈 우승 상금 6만 6500달러(9200만 원)를 더하며 시즌 누적 상금이 10억 3960만 원을 돌파했다. 이는 한국 배드민턴 역사상 단일 시즌 첫 10억 원 돌파 신화다. 커리어 누적 상금도 어느덧 220만 달러(30억 6000만 원)를 넘어섰다.
경기 후 안세영은 "내 감정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스스로 자랑스럽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최고의 무기였다"라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BWF도 "만 23세 안세영은 월드투어 시대 최초로 프랑스 오픈 3회 우승을 달성한 여자 단식 선수가 됐다. 아직 젊은 선수지만, 배드민턴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라고 조명했다.

반면 왕즈이는 이번에도 안세영을 만나 무너지며 '천적' 관계를 이겨내지 못했다. 상대 전적도 4승 15패로 크게 뒤처지게 됐다.
왕즈이는 직전 대회였던 덴마크 오픈에서도 안세영의 벽을 넘지 못하고 준우승에 머물렀다. 당시에도 일방적인 승부였다. 안세영은 왕즈이를 2-0(21-5 24-22)으로 물리치며 정상에 올랐다. 1게임에선 단 5점만 내주는 압도적 경기력을 자랑했고, 2게임에선 10-18에서 경기를 뒤집는 역전 드라마를 썼다.
두 대회 연속 '셧아웃' 패배를 면치 못한 왕즈이. 경기 후 그는 "너무 지치고 피곤하다. 난 결승전이 큰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잘 쉬고 회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완패를 깨끗이 인정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왕즈이는 경기가 끝난 직후 안세영과 악수하며 미소 지었고, 시상대에서도 아쉬움을 드러내기보다는 밝은 얼굴로 안세영과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중국 팬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모양이다. 넷이즈는 "왕즈이는 다시 한번 결승에서 안세영에게 무너졌다. 단 7일 만에 두 번의 결승에서 완전히 참패했다"라며 "왕즈이는 덴마크 오픈 결승 1세트에서 안세영에게 5-21로 패했다. 이번엔 7-21로 패했다. 이걸 보면 조금은 발전한 것 같지 않은가?"라고 비꼬았다.
또한 매체는 "왕즈이는 세계 2위로서 다시 한 번 세계 1위 안세영에게 패배했고, 두 사람의 격차는 매우 컸다"라며 "시상대에서 왕즈이는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 이 역시 덴마크 오픈과 똑같다. 그는 우승을 놓쳤다는 낙담도, 안세영에게 참패했다는 낙담도 전혀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팬들도 왕즈이를 향해 비판을 쏟아냈다. 넷이즈에 따르면 한 팬은 "왕즈이는 좋은 신체조건을 낭비하고 있다. 언제 깨달을 수 있는 걸까?"라고 한숨을 내쉬었고, 다른 팬은 "바로 어제 천위페이가 안세영을 상대로 그렇게 잘 싸웠는데 어떻게 왕즈이가 이렇게 무너질 수 있는 건가?"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팬은 "왕즈이는 정신력을 더 키워야 한다. 예전에는 좀 더 싸울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이제 7연패를 겪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걸까?"라고 불만을 표했다. 심지어는 "왕즈이는 매번 경기할 때마다 마치 개처럼 피곤하다고 느낀다. 대체 평소에 어떻게 체력훈련을 하는 건가?", "다음 생에 태어나자", "패기가 없어졌다" 등의 비난도 이어졌다.

왕즈이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중국의 한 언론인은 '시나스포츠'를 통해 "왕즈이를 비난하는 팬들은 상황을 오해하고 있다. 왕즈이의 미소는 체념이 아니라 존중의 표현”이라며 “그녀는 결코 무기력한 선수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현지 취재진에 따르면 왕즈이는 예의를 갖춘 거다. 안세영은 경기 후 왕즈이와 악수하며 몸 상태를 걱정했다. 비난하는 팬들과 달리, 왕즈이의 피로를 걱정해 준 건 안세영이었다. 심지어 왕즈이에게 저녁 식사 초대까지 제안했다"라며 "왕즈이의 미소는 단순한 패배 인정이 아니다. 안세영은 훌륭한 선수이자 좋은 친구이며, 왕즈이는 진심으로 그녀의 우승을 축하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안세영 역시 왕즈이에게도 감사를 표하며 승자의 품격을 보여줬다. 그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우승 기념 게시글을 올리며 "세 번째 프랑스오픈 타이틀을 얻었다! 같이 경기해준 왕즈이 선수에게 감사드린다. 다음에 제가 저녁 쏘겠다, 알겠죠?!"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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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대한배드민턴협회, 넷이즈, 중국 배드민턴 대표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