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은 26일(한국시간) 프랑스 렌 세송세비녜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2025 월드투어 슈퍼 750 프랑스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왕즈위를 2-0(21-11, 21-7)으로 꺾고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경기 내용은 처참했다. 세계 랭킹 1, 2위의 맞대결이라기보다, 왕과 신하의 관계를 보는 듯했다.
왕즈위는 올 시즌 내내 안세영의 뒤를 쫓았지만, 단 한 번도 넘어서지 못했다. 이번 프랑스오픈을 포함해 말레이시아오픈, 전영오픈, 인도네시아오픈, 일본오픈, 덴마크오픈 등 올해 결승 무대에서만 6연패. 왕즈위는 안세영이 나오는 순간 스스로 무너지는 듯했다.



1주일 전 덴마크오픈 결승에서도 그랬다. 1세트를 5-21로 완패하고, 2세트에서 18-10으로 앞서며 승기를 잡았지만, 끝내 안세영의 집요한 수비와 연속 득점에 흔들리며 역전패. 스스로 경기 후 “승부의 흐름을 감당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공포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결국 이번 프랑스오픈 결승에서도 심리적 압박은 그대로 드러났다. 왕즈위는 1세트 초반까지는 접전을 벌였지만, 11-12 상황에서 안세영의 스매시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더니 연달아 범실을 쏟아냈다. 1세트를 내주자 2세트는 아예 경기력이 붕괴됐다. 시작하자마자 0-5로 끌려갔고, 이후 안세영이 13-2까지 달아날 때까지 제대로 된 반격조차 못했다.
중국 매체 ‘소후’는 “왕즈위의 패인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라며 “이제는 안세영을 보면 경기 전부터 질려 있다. 최근 7번의 맞대결, 그것도 모두 세계대회 결승전에서 패한 것은 단순한 실력이 아니라 정신력의 문제”라고 혹평했다.

이번 대회에서 안세영의 행보는 완벽했다. 8강부터 결승까지 만난 상대가 모두 중국 선수였다. 8강에서 세계 14위 가오팡제를 2-1로 제압했고, 준결승에서는 ‘천적’ 천위페이(세계 5위)를 87분 혈투 끝에 꺾었다. 천위페이는 안세영에게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선수로 알려졌지만, 이날 패배로 두 선수의 상대 전적은 14승 14패 동률이 됐다.
그리고 결승에서는 왕즈위를 완전히 압살했다. 한 대회에서 중국 선수 3명을 연파한 것은 단순한 우승 그 이상의 상징이었다. 과거 중국이 장악하던 여자 단식의 주도권이 완전히 안세영에게 넘어갔음을 증명한 것이다.
특히 결승전은 그야말로 ‘클래스 차이’였다. 안세영은 셔틀콕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왕즈위의 예측 가능한 패턴을 철저히 읽어냈다. 스매시와 드롭, 수비 전환까지 완벽했다. 경기 후 중국 관중석에서는 한숨이 터져 나왔고, 왕즈위의 코치진은 고개를 숙였다.
프랑스오픈 우승으로 안세영은 이번 시즌 9번째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이는 자신이 2년 전 세웠던 여자 단식 단일 시즌 최다 우승 기록(9회)과 타이. 남녀를 통틀어는 일본의 모모타 켄토(2019시즌 11회 우승)가 보유한 세계기록이 남아 있다.

이제 남은 대회는 두 개다. 11월 호주오픈과 12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BWF 월드투어 파이널. 두 대회 모두 우승한다면 안세영은 모모타의 대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소후’는 “안세영은 단순히 강한 선수가 아니다. 그녀는 경기의 흐름과 상대의 멘탈을 모두 지배한다”며 “왕즈위는 이제 ‘경쟁자’가 아니라 안세영의 성공 스토리를 꾸며주는 조연이 됐다”고 평가했다.
중국 팬들도 SNS ‘웨이보’를 통해 “세계 랭킹 1위와 2위지만, 그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천위페이와 야마구치 아카네는 그래도 싸운다. 왕즈위는 경기 전부터 진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프랑스 현지 중계진의 말처럼, 이번 결승은 기술이 아니라 심리전이었다. 왕즈위는 안세영의 스매시 한 방에도 흔들렸고, 안세영은 그 흔들림을 정확히 읽었다. 포효하며 스스로를 북돋우던 안세영의 표정은 자신감 그 자체였다. 반면 왕즈위는 고개를 숙인 채 셔틀콕을 줍는 시간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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