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나라 홈 팬 앞에서 선 옌스, "참패는 슬프지만... 팬 응원 미쳤었다" [서울톡톡]
OSEN 이인환 기자
발행 2025.10.11 20: 22

"반응이 남다르더라".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은 1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세계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A매치 평가전을 치러서 이스테방과 호드리구에게 나란히 2골, 비니시우스에게 원더골을 허용하면서 0-5로 대패했다. 한국은 1999년 이후 26년 만에 브라질전 승리를 노렸지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면서 무산됐다.
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을 8개월 앞둔 시점에서 치러지는 이번 경기는 단순한 친선전이 아니라, 홍명보호가 남미 강호를 상대로 전술 완성도와 실전 경쟁력을 점검할 중요한 시험대로 평가됐지만 별다른 성과를 남기지 못한 채 오히려 새로운 숙제만을 떠안게 된 상황이다.

이날 세계적 명장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이끄는 브라질은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호드리구, 마테우스 쿠냐, 카세미루 등 최정예 멤버를 모두 출격시키면서 한 수 위의 전력을 제대로 보여줬다. 홍명보호는 상대의 뛰어난 개인기 앞에 준비한 스리백과 중원의 빈 틈이 공략당하면서 본선 무대를 앞두고 조직력 강화라는 또 하나의 숙제를 안게 됐다.
선발로 들고온 중원 조합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 홍명보 감독은 기대주 혼혈 선수 옌스 카스트로프를 후반전에 황인범을 대신해서 교체 투입했다. 전반에만 2골, 투입 직후 바로 내리 2골을 허용하면서 상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시작한 카스트로프는 부지런하게 뛰면서 기존 한국 미드필더들과 다른 타입의 존재감을 제대로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현 시점 한국 대표팀의 다른 미드필더드들과 달리 카스토르프는 미친 개라고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공격적인 모습과 파괴적인 플레이를 통해서 브라질에 맞섰다. 단순하게 볼을 예쁘게 찬다는 것이 아니라 투지와 홀동량을 통해 어떻게든 승리에 대한 갈망을 보여주는 것이 돋보였다.
카스트로프는  브라질 선수들을 상대로도 기가 죽지 않고 적극적으도 달려드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에는 중원으로 나섰으나 왼쪽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뛰었다. 특별히 공격 포인트나 슈팅으로 연결되지는 못했으나 '미친 개'처럼 뛰어다니면서 답답하던 경기에 그나마 활력소를 불어넣었다.
경기 직후 믹스트존에서 만난 옌스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그는 “기분이 조금 복잡하다. 저는 항상 이기고 싶고, 승리를 사랑한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 힘든 경기였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홈 데뷔전을 치르게 되어 너무 기뻤다. 팬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열광적으로 응원해줬다. 분위기는 정말 놀라웠다. 결과에는 아쉽지만, 이런 응원을 받을 수 있어 감사하다”고 웃었다.
한국인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옌스는 독일에서 성장했지만, 지난여름 국적 변경 절차를 마치고 한국 대표팀의 새 일원이 됐다.
지난 9월 미국 원정(미국·멕시코전)에서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던 그는 이번 10월 A매치를 통해 처음으로 국내 팬들 앞에 섰다. 그 무대는 폭우 속에서도 6만 명이 넘게 들어찬 서울월드컵경기장이었다.
홈 데뷔전에서 카스트로프는 “이런 따뜻한 환영은 처음이다. 한국 팬들은 정말 대단하다. SNS로도 응원 메시지를 많이 받았고, 경기장에서도 엄청난 에너지를 느꼈다. 이런 사랑을 받게 돼 행복하다. 앞으로 더 좋은 경기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옌스는 이날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했다. 후반 시작과 함께 중앙 미드필더로 투입된 그는 경기 후반에는 왼쪽 윙과 10번(공격형 미드필더) 자리까지 오가며 움직임을 넓혔다. 그는 “6번 자리에서 시작했지만 경기 후반부엔 공격적으로 전환했다. 코칭스태프가 제 유연함을 알고 있다. 어디서 뛰든 상관없다. 팀을 돕는다면 그게 제 행복이다. 포지션보다 중요한 건 팀이다”고 강조했다.
브라질전 참패에 대한 질문에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스트로프는 “0-5라는 결과는 분명 아쉽다. 하지만 우리는 더 잘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브라질은 정말 강했다. 그들은 훌륭한 선수들로 가득하다. 그래도 우리는 배웠다. 감독님도 ‘하루는 쉬고, 이후 경기를 분석하자’고 하셨다. 다음 경기에서는 더 영리하게 싸울 방법을 찾을 것이다"고 다짐했다.
이날 경기에서는 두 개의 역사적인 순간도 함께했다. 이재성(마인츠)이 A매치 100경기 출전으로 센추리클럽에 이름을 올렸고, 손흥민(33·LAFC)은 137번째 출전으로 차범근·홍명보(이상 136경기)를 제치고 한국 축구 최다 출전 단독 1위에 올랐다.
카스트로프는 이 기록에 깊은 존경심을 드러냈다. 그는 “손흥민 선수와 홍명보 감독님이 세운 기록을 봤다. 정말 놀랍다. 매년 꾸준히 10경기 이상을 소화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두 분 모두 존경스럽다. 저도 언젠가 한국 선수로서 그만큼 많은 경기를 뛰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카스트로프는 팬들에게 진심을 전했다. 그는“감독님이 경기 전 ‘오늘은 전진하라’고 하셨다. 저는 ‘좋아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언제나 제 역할을 다하겠다. 한국 팬들은 정말 미쳤어요(crazy). 그들의 응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 뜨거운 응원에 보답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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