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에는 비가 전화위복이었다. 우천 취소 영향으로 에이스 코디 폰세가 등판을 뒤로 미뤘지만 대체 선발로 나선 신인 정우주(19)가 LG 트윈스 강타선을 봉쇄했다. LG의 1위가 확정될 수 있는 경기에서 정우주는 최고 시속 155km 강속구를 앞세워 배짱 두둑한 투구를 했고, 한화는 가을야구에서 믿고 쓸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확인했다.
정우주는 지난 29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2025 신한 SOL Bank KBO리그 LG와 홈경기에 선발 등판, 3⅓이닝 1피안타 1사구 3탈삼진 무실점으로 잘 막았다. 정우주의 호투에 힘입어 한화는 7-3으로 승리, 매직넘버 ‘1’을 남겨둔 LG의 정규리그 우승 축포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정우주의 선발 등판은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그 전날인 28일 LG전에 폰세가 선발로 준비했지만 우천 취소가 됐다. 우천 지연이 길어진 사이 불펜 피칭으로 공을 던지며 준비를 마친 폰세가 컨디션 관리 차원에서 등판을 뒤로 미루는 변수가 발생했다.
김경문 감독은 정우주를 대체 선발로 낙점했다. 불펜으로 잘 던지고 있는 정우주이지만 선발로 나선 건 1경기뿐이었고, 비로 인한 한화의 선발투수 변경은 LG한테 호재가 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염경엽 LG 감독은 “야구는 누가 나오든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긴장의 끈을 풀지 않았고고, 우려는 현실이 됐다.
1회 시작부터 정우주는 연속 삼진으로 예사롭지 않은 스타트를 끊었다. 1번 홍창기를 가운데 높게 보더라인에 살짝 걸치는 시속 153km 직구로 루킹 삼진 잡은 정우주는 2번 신민재도 바깥쪽 높은 슬라이더로 또 루킹 삼진을 이끌어냈다.
오스틴 딘에게 유격수 내야 안타를 맞은 뒤 김현수를 몸에 맞는 볼로 내보내 1,2루 득점권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문성주를 7구 승부 끝에 슬라이더로 유격수 땅볼 유도하며 실점 없이 첫 이닝을 넘어갔다.

1회에만 29개 공을 던지며 힘을 뺐지만 2회에는 공 9개로 끝냈다. 구본혁을 초구에 우익수 뜬공 처리한 뒤 오지환을 바깥쪽 높은 커브로 또 루킹 삼진을 잡았다. 박동원도 3루 땅볼로 아웃시킨 정우주는 3회에도 연속 삼자범퇴에 성공했다. 박해민을 3루 땅볼, 홍창기를 2루 땅볼, 신민재를 유격수 땅볼로 유도했다.
4회 오스틴을 중견수 뜬공 처리한 뒤 교체된 정우주는 마운드를 내려가며 홈팬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개인 최다 3⅓이닝을 던지며 투구수 53개로 마친 정우주는 최고 시속 155km, 평균 152km 직구(35개) 중심으로 커브(10개), 슬라이더(8개)를 던졌다. 강력한 직구에 LG 타자들의 타이밍이 밀렸고, 커브나 슬라이더로도 카운트를 잡고 결정구로 쓸 만큼 제구가 잘 이뤄졌다.
경기 후 정우주는 “어제(28일) 선발로 나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많이 떨리고 긴장했지만 좋은 결과가 나왔다. 중요한 경기라서 잠도 못 자고 그랬는데 막상 경기장에 올라가니 그런 생각이 안 들어서 잘 던질 수 있었다”며 “(문)동주 형 던질 때 LG 타자들이 너무 잘 쳐서 걱정하긴 했지만 제 공을 믿고 던져야 후회가 없다고 생각했다. 맞더라도 제 공을 던지자고 했는데 운이 좋았다. 오늘 제가 긴 이닝을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1회만 던지고 내려오더라도 확실하게 무조건 막자는 생각으로 했다”고 말했다.

이달부터 커브를 적극 구사하며 투구 레퍼토리도 다양해졌다. 정우주는 “커브가 잘 들어가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 (류)현진 선배님이 커브 던지는 걸 많이 봤고, 요령을 조금 터득했다. 부끄러워서 선배님께 커브를 직접 물어보진 못했다. (동기인) 키움 (정)현우가 선배님을 찾아와서 배운 커브를 제가 현우한테 물어봤다. 현우가 설명을 잘해줘서 도움이 됐다”고 커브 장착 과정을 설명하며 쑥스럽게 웃었다.
정우주의 이날 호투는 가을야구에서 활약을 더욱 기대케 한다. 올 시즌 50경기(52⅔이닝) 3승3홀드 평균자책점 2.91 탈삼진 82개를 기록한 정우주는 후반기 21경기(28⅓이닝) 1승 평균자책점 1.27 탈삼진 50개로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포스트시즌 분위기가 물씬 풍긴 이날 LG전에서 보여준 호투는 김경문 감독과 양상문 투수코치로 하여금 가을야구에서 어떤 상황에서든 믿고 쓸 수 있겠다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기는 상황에서 필승조부터 선발이 일찍 내려갔을 경우 길게 던질 롱릴리프로도 활용이 가능해졌다.
한국시리즈에서 만날 수 있는 LG 상대로 좋은 기억을 안고 시즌을 마친 것도 의미가 크다. 정우주는 “선배님들과 형들도 그렇고 LG전은 뭔가 공기가 많이 다른 것 같다. 더 잘 던지기 위해 집중했고, 결과가 좋게 나와 기분이 좋다. LG전 마지막 결과가 괜찮았으니 한국시리즈에서 다시 만난다면 좋은 기억을 갖고 던질 듯하다”며 “포스트시즌에서는 아마 불펜으로 나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위기 상황이 오거나 막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목숨 걸고 막도록 하겠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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