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연맹(KOVO)이 2025 여수·NH농협컵 프로배구대회 남자부를 둘러싸고 혼란을 자초했다. 대회 취소를 발표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다시 재개를 선언하며 팬과 관계자 모두를 혼란에 빠뜨렸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일정 차질을 넘어, KOVO의 국제 규정 이해 부족과 위기 대응 미숙이 복합적으로 드러난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KOVO는 14일 새벽 “국제배구연맹(FIVB)으로부터 대회 개최 최종 승인을 받지 못했다”며 남자부 대회를 전면 취소한다고 공지했다. 그러나 같은 날 오전, FIVB가 조건부 승인을 통보하자 곧바로 입장을 뒤집었다. 취소와 재개를 오가는 전례 없는 ‘번복 행정’이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벌어진 것이다.
FIVB가 내건 조건은 △정규리그에 영향을 미치지 말 것 △국제이적동의서(ITC) 미발급 △외국 클럽팀과 외국인 선수 참가 금지 △2025 세계선수권대회 등록 선수 출전 금지 등이다. 이로 인해 초청팀 태국 나콘라차시마는 대회에서 제외됐고, 남자부 잔여 경기는 현장 선착순 무료 관람으로 전환됐다. 기존 예매자는 전액 환불된다. 대회를 기다린 팬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고, 이미 이동과 숙박을 준비한 원정 응원객과 지역 숙박·식음 업계에도 피해가 불가피하다.

KOVO 관계자는 “작년에도 9월에 컵대회를 열었고 지금 시기에 개최해왔다. 우리는 컵대회가 정규리그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며 “일본 같은 경우에도 프로 레벨의 대회를 태국에서 여러 팀과 하고 있고, 심지어 외국인 선수도 뛰고 있다. 그런 판단 잣대에 있어 우리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있는 거다. 갑작스럽게 대회 하루 전에 이렇게 통보하는 건 저희도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연맹의 우왕좌왕 행정은 현장에 직접적인 파장을 낳고 있다. 정규리그 개막을 앞두고 전력 점검 기회를 삼으려던 각 구단은 계획이 무너졌고, 스폰서와 대회를 유치한 여수시 역시 이미지와 비용 부담을 떠안게 됐다. 이미 예매했던 관중은 환불 절차를 밟아야 하고, 선수단은 불확실한 경기 일정을 감내해야 한다.

KOVO는 “팬과 여수시민, 구단 관계자, 스폰서분들께 불편을 끼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FIVB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재발 방지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하루 사이에 ‘전면 취소’와 ‘조건부 재개’를 오가는 과정에서 드러난 준비 부족과 대응 미흡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정규리그를 불과 한 달여 앞두고 터진 이번 사태는 국내 배구계의 국제 규정 이해도와 행정 신뢰도 전반을 되돌아보게 한다. 단순히 일정 변경을 넘어, KOVO가 위기 관리 체계를 강화하고 국제 협의 절차를 면밀히 준비하지 않는다면 비슷한 혼란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wha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