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규(24, KRC 헹크)가 분데스리가 입성의 아픔을 딛고, '대한민국 원톱'의 자격을 똑똑히 증명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10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의 지오디스 파크에서 열리는 9월 A매치 친선경기에서 멕시코와 2-2로 비겼다. 후반전 손흥민과 오현규의 연속골로 경기를 뒤집었지만, 후반 추가시간 산티아고 히메네스에게 동점골을 허용했다.
이로써 한국은 1승 1무로 이번 미국 원정 2연전을 마무리했다. 지난 7일 미국을 2-0으로 꺾었고, 멕시코와는 아쉬운 무승부를 기록했다. 하지만 내년 여름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이 열리는 미국 현지에서 '북중미 강호' 두 팀을 상대로 훌륭히 싸운 것만으로도 분명한 수확이다.
만약 대표팀이 이번 경기에서 승리했다면 무려 19년 만에 멕시코를 잡아낼 수 있었다. 한국은 이번 경기 전까지 역대 전적 4승 2무 8패로 멕시코에 열세였다. 최근엔 3연패를 기록 중이었고, 마지막 승리는 200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이번엔 미국 땅에서 선제골을 내주고도 멕시코를 잡아내는가 싶었지만, 막판에 통한의 실점을 내주고 말았다.
멕시코는 FIFA 랭킹 13위를 자랑하는 강팀이다. 23위인 한국과는 10계단 차이. 미국도 랭킹 15위를 자랑한다. 홍명보호는 순위가 더 높은 미국을 잡아내고, 멕시코와 비기면서 11월 FIFA 랭킹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월드컵 포트 배정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가능성이 커졌다. 현재 한국은 2포트 끝자락에 걸려있기에 한 경기 한 경기 성적이 중요하다.

다잡은 승리를 놓친 점은 아쉽지만, 오현규의 활약이 빛났다. 그는 미국전과 달리 손흥민을 대신해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전했고, 초반부터 멕시코 수비를 괴롭혔다. 오현규는 전반 15분 가슴 터치에 이은 부드러운 컨트롤과 강력한 몸싸움으로 멕시코 수비를 따돌린 뒤 왼발로 슈팅했지만, 골키퍼에게 막혔다.
기회를 노리던 오현규는 후반 30분 폭발했다. 이강인이 뒷공간으로 전진 패스를 찔러넣었고, 오현규가 수비 라인을 무너뜨리며 침투해 공을 잡았다. 오현규는 수비를 앞에 두고 박스 우측으로 들어간 뒤 낮게 깔리는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골문 반대편 구석을 꿰뚫었다.
엄청난 결정력을 자랑한 오현규는 후반 41분 교체되며 벤치로 물러났다. 축구 통계 매체 '풋몹'에 따르면 이날 그는 약 86분간 슈팅 4회와 유효 슈팅 2회, 빅찬스 창출 1회, 드리블 성공 1회 등을 기록하며 1골 1도움을 올렸다. 평점도 8.4점으로 경기 최우수 선수로 뽑혔다.

왕성한 활동량과 제공권, 침투 능력, 강력한 슈팅까지 다재다능함을 보여준 오현규다. 물론 그는 전반 20분 역습 상황에서 부정확한 슈팅으로 절호의 득점 기회를 놓치는 등 보완해야 할 점도 있었다.
하지만 오현규는 이를 깨끗이 잊게 하는 맹활약으로 대표팀 스트라이커로서 확실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조규성이 장기 부상으로 신음하고, 오세훈이 일본 무대에서 주전 경쟁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오현규가 확실한 원톱으로 자리잡는다면 큰 호재다.
홍명보 감독도 상대에 따라 다른 스타일을 지닌 손흥민과 오현규를 번갈아 기용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미국전에선 손흥민이 3-4-2-1 포메이션의 스트라이커로 선발 출전했고, 멕시코전에선 오현규가 선발로 나섰다.
멕시코전 후반엔 손흥민이 교체 투입되면서 둘이 함께 호흡을 맞추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오현규가 앞으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홍명보 감독도 행복한 고민에 빠질 수 있다.


오현규의 이번 활약이 더욱 반가운 이유는 그가 최근 아픔을 겪었기 때문. 그는 지난 여름 이적시장에서 분데스리가 VfB 슈투트가르트 입단을 앞두고 있었다. 헹크도 원래는 오현규를 주전 공격수로 낙점했지만, 2800만 유로(약 455억 원)에 달하는 구단 역대 최고 이적료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현규의 이적은 이적시장 마감 직전 갑자기 무산됐다. 그가 슈투트가르트로 날아가 메디컬 테스트를 받던 도중 문제가 발생한 것. 표면적 이유는 오현규의 십자인대 부상이었다. 그러나 벨기에와 독일 언론에 따르면 슈투트가르트 측에서 이적료를 800만 유로(약 130억 원) 낮추려 했고, 임대까지 제안한 게 이적이 취소된 결정적 원인이었다.
결국 헹크 잔류가 확정된 뒤 대표팀에 합류한 오현규. 그는 "다 지나간 일이다. 좌절하거나 슬픔에 빠지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라며 "무척 실망스럽지만, 전화위복으로 삼아 더 강해진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거다. 내가 더 강해져야 한다. 난 고등학교 이후 단 한 번도 무릎에 문제가 없었다"라고 힘줘 말했다.
그리고 오현규는 멕시코전 득점으로 자신의 다짐을 증명했다. 그는 득점 직후 자신의 무릎을 가리켰고, 두 팔을 벌려 '십자인대? 뭐가 문제야?'라고 묻는 듯한 세리머니를 펼쳤다. 이제 아픔을 뒤로 한 채 2026 북중미 월드컵 무대를 목표로 달리는 오현규다. 그는 지난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27번째 '예비 멤버'로 동행하긴 했지만, 아직 월드컵 출전 경험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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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대한축구협회, 헹크 소셜 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