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파악하고 논의 중이다"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지난 2년간 적극적으로 안착시킨 '클리어링 하우스' 제도 앞에서, 대한축구협회는 여전히 '정착 과정'이라는 진단에 머물렀다.
대한축구협회 김승희 전무이사는 21일 축구회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광주FC의 연대기여금 미납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행정착오였고, 선수의 고의는 아니었다"라며 "리그 안정성과 선수 보호를 고려해 대응 중"이라 전했다. 또한 "FIFA, AFC와 소통 중이며, 제도적으로도 정비하겠다"라고 덧붙였다.
FIFA, 클리어링 하우스 제도의 현실과는 괴리가 있는 답이었다.
FIFA는 2022년 11월부터 '클리어링 하우스(Clearing House)'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전 세계 이적 시장에서 발생하는 훈련보상금과 연대기여금의 체계적이고 투명한 관리를 위해 도입됐다.
클리어링 하우스는 과거처럼 각 구단이 개별적으로 보상금을 신청하거나 추적하지 않아도 된다. 이적이 발생하면 FIFA가 자동으로 관련 데이터를 확인하고, 적격 여부를 평가한 뒤 해당 금액을 보상받을 클럽에 직접 송금하는 방식이다. 복잡했던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고, 보상금 누락을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시스템이다.
![[사진] 클리어링 하우스가 본격적으로 작동한 2023년부터, 기존 수동 시스템보다 월등히 많은 보상금이 빠르고 정확하게 지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2024년엔 전체 보상금 중 88%가 FCH를 통해 자동 분배됐다. / FIFA 제공](https://file.osen.co.kr/article/2025/05/21/202505211141776935_682d3fa769872.png)
그 결과는 이미 뚜렷하다. FIFA는 지난 2024년 11월 보고서를 통해 2년간 이 제도를 통해 전 세계 5,000개 이상 구단에 약 3억 5,000만 달러(약 4,850억 원)를 분배했다고 밝혔다. 그 중 1억 5,660만 달러(약 2,170억 원)는 훈련보상금으로 지급됐다.
심지어 파라과이의 스포르티보 오브레로는 106년 역사상 처음으로 이 제도를 통해 보상금을 받았다. 가나의 타말레 자이투나도 "모든 절차가 투명하고 명확하다"라며 감사를 표했다.
이는 소외되던 작은 클럽들까지 제도의 혜택을 체감하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여전히 미지급 사태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FIFA 징계까지 이어졌다.
광주FC는 북마케도니아 출신 공격수 아사니의 영입 과정에서 연대기여금 3,000달러를 송금했으나 오류로 반환됐다. 하지만 구단은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겨울 이적시장에서 10명 이상의 선수를 등록했고, 이후 K리그1과 FA컵을 포함해 총 15경기에서 무자격 선수를 출전시켰다.
이는 단순한 '착오'의 수준을 넘는 사안이다. FIFA는 징계 통보 시 협회와 구단 모두에게 공문을 발송하며, 대한축구협회 역시 관련 문서를 받았다. 그러나 협회는 이를 가볍게 넘겼고, 광주에 적절한 행정적 통지를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연맹과 구단 모두 징계를 인지하지 못했고, 한국 프로축구 리그 운영의 신뢰성 자체가 흔들렸다.
![[사진] FIFA의 클리어링 하우스 제도는 단 2년 만에 보상금 처리량을 3배 이상 끌어올리는 성과를 냈다. 자동화·투명화된 구조 덕분에 이전에는 보상금을 받지 못하던 클럽들도 수혜를 보기 시작했다. / FIFA 제공](https://file.osen.co.kr/article/2025/05/21/202505211141776935_682d3fa9430c1.png)
김승희 전무는 21일 해당 사안에 대해 "FIFA와 소통 중이며, 클리어링 하우스도 아직 정착 중인 제도"라고 평가했다. 그는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정착되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FIFA는 이미 제도를 운영하며 자동화된 정산 체계를 안착시켰다는 점이다. FIFA는 클리어링 하우스 제도를 통해 투명성과 재정 안정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행정 인프라가 부족한 나라들조차 제도를 받아들이고 실질적 이득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축구협회가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는 진단을 내리는 것은 국제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뿐만 아니라 김 전무의 발언에는 제도 정비의 로드맵, 책임 주체, 실무적 개선안 등 구체적 계획이 전무하다. "정확히 파악하겠다"는 말로는 팬들의 우려를 잠재울 수 없다.
광주FC의 고의성 여부와 별개로, 이번 사태는 축구협회와 K리그 행정 시스템이 FIFA의 현대화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다.

클리어링 하우스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국제 축구 시장의 신뢰를 구축하는 핵심 시스템이다. 그 신뢰를 3,000달러의 미납과 15경기의 무자격 출전, 그리고 "소통 중입니다"라는 막연한 발언으로 흔들었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 정착'이 아니라 '의지 전환'이다.
김승희 전무이사가 "정직함과 꾸준함"을 강점으로 내세운 만큼, 이 사태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제도 정비를 구체적이고 투명하게 실행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reccos23@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