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을 위해 못 던지고 희생하고 있으니…”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대반등을 이끄는 김경문 감독은 요즘 이 선수가 인사할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6년차 사이드암 투수 김승일(24). 한화가 최근 11경기 전부 3점차 이내 접전을 치르면서 추격조 김승일에게 등판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고 있다. 7일 대전 삼성전 전까지 1군 엔트리에는 있지만 16일, 11경기째 등판이 없다.
경남고 출신으로 2020년 2차 10라운드 전체 98순위로 한화에 지명된 김승일은 2021년 8월 현역으로 군입대했다. 2023년 2월 전역했지만 그 사이 한화의 보류선수명단에서 제외됐고, 독립야구단 성남 맥파이스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내며 야구의 끈을 이어갔다. 지난해 초 육성선수로 한화에 재입단한 김승일은 퓨처스리그에서 던지다 9월18일 창원 NC전에서 데뷔하는 등 1군에서 3경기를 경험했다.
올해 퓨처스리그 5경기(5⅓이닝) 1홀드 평균자책점 1.69로 안정감을 보였고, 지난달 13일 1군에 콜업됐다. 18일 대전 NC전에 12-4로 크게 앞선 9회 구원등판, 탈삼진 1개 포함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막았다. 최고 구속이 시속 148km까지 측정될 정도로 공에 힘이 있었고, 좌타자 최정원을 헛스윙 삼진 처리할 때 던진 커브는 몸쪽으로 급격히 꺾였다. 헛스윙 이후 몸에 맞으면서 삼진이 되는 진귀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틀날 김경문 감독은 김승일에 대해 “작년보다 공이 좋아진 것 같다. 스피드도 더 붙었고, 스프링캠프에 가지 못했는데 마음속에 오기가 있었는지 본인이 노력한 게 보였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20일 NC전 7-0으로 앞선 8회 첫 타자 오영수를 헛스윙 삼진 처리한 뒤 도태훈과 한재환에게 각각 4구, 5구 만에 연속 볼넷을 주며 제구가 흔들리자 강판됐다. 그날 경기를 끝으로 김승일은 강제 휴식을 취했다.

지난달 23일 사직 롯데전부터 6일 대전 삼성전까지 한화는 11경기 연속 3점차 이내 접전 승부를 펼쳤다. 1점차 5경기, 2점차 5경기로 1~2점차 초접전 승부 반복해 김승일의 등판 타이밍이 오지 않았다. 이 기간 한화는 9승2패로 이기는 경기를 반복했다. 패한 경기도 1~2점차로 쉽게 지지 않았다. 이전의 한화는 대량 실점으로 경기 중후반 승부가 완전히 넘어가 추격조 투수들이 나서는 경우가 많았지만 올해는 그 반대였다.
11경기 전부 선발투수들이 5이닝 이상 던졌고, 그 중 9경기가 6이닝 이상으로 불펜 부담을 줄였다. 두 번의 우천 취소로 필승조들이 적절하게 쉬는 시간도 주어지면서 불펜이 큰 무리 없이 돌아갔다. 무엇보다 한화 타선이 이 기간 총 36득점, 평균 3.3점에 그쳐 여유 있는 상황 자체가 없었다.
김승일이 쉬는 사이 한화 불펜은 한승혁이 9경기 8⅓이닝, 김서현이 8경기 8이닝, 박상원이 6경기 6이닝, 정우주가 5경기 4⅔이닝, 김범수가 4경기 1이닝, 김종수가 3경기 1⅔이닝, 조동욱이 2경기 ⅔이닝을 각각 던졌다. 준필승조로 투입되던 조동욱도 마운드에 오를 기회가 많지 않았다.

팀이 연승을 계속 이어가며 1위까지 올랐지만 김승일을 볼 때마다 김경문 감독도 마음이 쓰였다. 김경문 감독은 7일 삼성전을 앞두고 “(김)승일이가 인사할 때마다 미안한데 곧 경기에 나올 거라 본다”며 “그때 나와서 (실전 경기) 감각이 없어 투구 내용이 안 좋아도 팀을 위해 못 던지고 희생한 거니까, 조금 더 기다려줄 것이다”고 말했다. 등판 간격이 너무 길어진 만큼 한 번의 투구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김 감독은 타선이 점수를 확 내길 바랐는데 이날 삼성전에서 마침내 타격이 폭발했다. 6회에만 심우준의 싹쓸이 3타점 2루타, 이원석의 시즌 첫 홈런으로 6득점 빅이닝을 몰아치며 10-2로 스코어를 벌렸다. 8점차 넉넉한 리드 상황이 되자 9회 김승일이 마운드에 올랐다. 17일, 12경기 만의 출장.
오래 기다린 등판이었지만 결과가 많이 아쉬웠다. 선두타자 김성윤에게 유격수 내야 안타를 맞은 뒤 양도근을 7구 승부 끝에 볼넷으로 출루시켰다. 7구째 바깥쪽 직구가 존을 살짝 벗어났다. 이어 윤정빈에게 중전 적시타를 맞아 1실점했다. 중견수 이상혁이 다이빙 캐치를 시도했지만 잡지 못했다. 내야수 출신인 이상혁은 외야수 전향 3년차. 중견수 수비 경험이 많은 선수라면 잡을 수도 있는 타구였기에 김승일로선 아쉬운 순간이었다.

계속된 무사 1,2루에서 김승일은 르윈 디아즈에게 우중월 스리런 홈런을 맞았다. 3구째 가운데 낮은 시속 145km 직구를 디아즈가 제대로 받아쳐 비거리 125m 홈런으로 장식했다. 10-6으로 스코어가 좁혀지자 한화는 결국 마무리 김서현을 올렸다. 김승일은 아웃카운트 하나 잡지 못한 채 3피안타(1피홈런) 1볼넷 4실점으로 강판됐다.
총 투구수 18개로 스트라이크(8개)보다 볼(10개)이 더 많았고, 네 타자 전부 1~2구 연속 볼로 시작할 만큼 카운트 싸움이 되지 않았다. 투구 내용만 보면 당장 2군에 내려가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16일간 등판 기회가 없는데도 팀에 파이팅을 불어넣은 김승일의 희생을 높이 산 김경문 감독이다. 엔트리에 남아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져도 놀랄 일은 아니다. /waw@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