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한그루가 긴 공백을 끝내고 복귀에 나섰다. 10년만에 다시 브라운관에 모습을 드러낸 그가 더 단단해진 마음가짐을 전했다.
최근 한그루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KBS2 일일드라마 ‘신데렐라 게임’ 종영 인터뷰를 진행했다. ‘신데렐라 게임’은 원수에 의해 가짜 딸로 이용당해 복수의 화신이 된 여자가 진정한 복수의 의미를 깨달으며 성장, 치유하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작중 한그루는 생활력, 책임감 가득한 열혈 처녀 가장 구하나 역으로 분했다.
총 101부작의 긴 호흡을 이어가는 동안 육아와 촬영을 병행했던 한그루는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고민을 전했다. 지난 2015년 9살 연상의 사업가와 결혼해 이듬해 쌍둥이 남매를 출산한 뒤 활동을 잠시 멈췄던 한그루는 2022년 이혼을 발표한 뒤 홀로 두 아이를 보살피고 있는 상황. 이에 그는 “애들 키우던 체력으로 버텼다. 도우미 없이 혼자 아이들을 키웠다. 애들이 있으면 피곤해도 못 자고 못 쉬고 하던 게 일로 바뀌니까 생각보다 할 수 있을 것 같더라. 진짜 힘들면 운전만 해줄 매니저님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피곤하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다가 끝까지 오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번 작품을 통해 한그루는 2012년 방영된 MBC ‘오늘만 같아라’ 이후 약 13년 만에 일일드라마에 출연하게 됐다. 그는 “어릴 때는 사실 힘들다는 생각도 안 해봤다. 체력이 너무 좋으니까. 지금은 확실히 잠을 못 자면 다음날 머리도 빨리 안 굴러가고 가끔 멍해지더라. 확실히 20대와 출산 후 30대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평소 운동을 부지런히 해서 너무 다행이다. 체력관리를 잘해야 할 것 같다고 느꼈다”고 달라진 점을 꼽았다.
이어 “작품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그때는 사실 빨리 미니시리즈를 하고 싶었다. 일일드라마는 주말드라마와 미니시리즈로 가는 등용문이었지 않나. ‘나도 끝나면 주말드라마 하고 미니시리즈 해야지’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앞으로 살면서 이렇게 주인공을 할 수 있는 작품이 또 있을까’라는 생각에 너무 소중하고 특별했다”고 털어놨다.
다만 2014년 방송된 tvN ‘연애 말고 결혼’ 이후 10년 만에 맡는 주연인 만큼 부담감도 적지 않았을 터. 한그루는 “부담감이 엄청 컸다”며 “시청률이 안 나오면 ‘나 때문인가?’ 싶고, 시작할 때도 ‘절대 민폐만 끼치지 말자. 내가 누가 되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매일 했다”며 “감독님도 잘하시는 분이지만 선생님들, 후배 친구들이 너무 다 잘해서 진짜 운이 좋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제가 인복이 있는 스타일인데 이번에도 ‘나는 진짜 타고났다’고 생각했다”고 함께한 이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신데렐라 게임’ 속 구하나는 동생들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 낮에는 N잡러, 밤에는 검정고시생으로 살아는 인물. 한그루는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구하나의 모습에서 자신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는 “주인공 하나 역할이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것과 너무 똑같더라.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대상이 나는 아이고 하나는 동생들이지만 저도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었다. 뭔가 해보려 하고, 이혼 후에 아이들을 케어 해야 하니까 계속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뛰어다니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본을 보고 너무 감정이입 되더라. 이렇게 절박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건 제일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하고 싶었다”고 떠올렸다.
또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동생들을 위해 희생하는 구하나에 대해서도 “책임감이 정말 강한 사람인 것 같다. 저도 책임지고 하기로 했으면 어떻게든 끝까지 갖고 가려고 한다. 하나는 가족이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어떤 이유가 되고 어떤 생각이 들어도 끝까지 가족은 내가 지켜야 하는 대상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반복되는 파양 속에서 진심으로 저를 딸처럼 대해주는 가족을 만난 거지 않나. 그런 게 하나의 인생에 있어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싶을 정도로 큰, 드라마 같은 일이었을 거다. 그래서 가족에 대해 특별함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싶다. 사실 저에게도 이 작품이 그런 느낌이다. 내가 일을 하는 것도 감사한데, ‘이제 누가 나를 주인공으로 써 주겠어’라는 생각이 많았다. 그랬는데 저를 캐스팅해 주신 것도 너무 감사하다”고 털어놨다.
10년만에 활동 복귀에 나선 한그루는 아직 소속사 없이 홀로 활동 중인 상태다. ‘신데렐라 게임’을 촬영하는 동안에도 매니저를 두지 않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냈다고. 그는 “혼자 운동하고 스타일리스트 픽업하고 다녔는데 생각보다 재밌더라. 아침에 현장 가는 길에 피곤하면 차에서 자지 않나. 그런데 운전하면서 가면 잠도 깨고 오늘 하루는 어떻게 할지 정리할 수 있다. 다들 어떻게 고생하는지 많이 파악하게 된 순간이었다.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마음가짐이 달라진 부분이 많았지만, 드라마 한편이 만들어지는 데 있어서 각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 모인 거지 않나. 항상 이때 경험들을 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저희도 연기하는 게 직업인 것일 뿐이지 배우라고 해서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 않나. 그걸 항상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돌이켜 봤다.
원래는 빨리 소속사에 들어가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었지만, 한그루는 ‘신데렐라 게임’을 하면서 조급함에서 벗어났다고 전했다. 그는 “이걸 하고 나니 뭐든 다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좀 더 여유를 갖고 있어 보자고 생각했다”며 “가만히 있는 건 시간 낭비 같아서 회사 미팅도 하고 이전에 있었던 샛별당 대표님의 도움을 받아서 캐스팅 디렉터나 제작사에 프로필 돌리고 시간 나면 가서 인사도 했다”고 밝혔다.

한그루는 “사람들은 나라는 사람을 실제로 모르지 않나. 저를 만나서 얘기한 적 없고, 유튜브 이런 데에는 너무나 잘못된 정보들이 많으니까 그걸 일일이 해명하지 않는 이상 모른다. 그리고 ‘이번에 일일드라마 주인공 했으니 다른 데서 작은 역할 주면 안 한다고 하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제는 역할의 크기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걸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가서 얘기하고 홍보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다니면서 제 생각을 많이 전했다. 촬영 날에도 미팅이 잡히면 시간 조율해서 경비실에 부탁해 프로필 뽑아 가서 오디션도 보고 이랬다”고 열정을 전했다.
육아에 본업까지 병행하며 쉴 틈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만큼 번아웃이 온 적은 없는지 묻자 그는 “틈이 없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육아를 할 때는 애들 재우고 나서 가끔 번아웃이 왔다. ‘나는 왜 여기서 이런 걸 하고 이렇게 살고 있을까’ 싶었는데, 일을 시작하니 그럴 틈이 없더라. 쉬는 날은 애도 봐야하고, 계속 촬영이니까 나태해지거나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저한테는 좋았다.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열심히만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시간인지 느꼈다”고 밝혔다.
지난 10년간의 공백기동안 한그루는 아이들을 키우는 데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러다 이혼을 하게 되면서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한 끝에 다시 연기를 시작하게 됐다고. 한그루는 “‘이제라도 누가 나를 써줄까?’, ‘나라도 나를 안 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무서웠다”며 “애매해졌다. 사실 나이는 엄청 많은 게 아닌데 결혼하고 애를 낳고 이혼을 한 사람이니까 역할을 줄 때 캐스팅하는 분 입장에서 ‘어떤 역할로 써줄까’ 이런 고민을 많이 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그러던 중 ‘연애 말고 결혼’ 이후 인연을 이어왔던 송현욱 감독의 제안을 받아 ‘야한(夜限) 사진관’에 음문석(백남구 역)의 아내 진나래 역할로 출연하며 활동 복귀의 물꼬를 틀 수 있게 됐다. 한그루는 “또래 배우들은 점점 올라가고 활약할 때지 않나. 그런데 저는 가는 방향이 조금 다르고, 그 친구들이 조금은 나중에 하고 싶어 하는 역할을 지금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도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결혼과 출산, 이혼의 경험들이 결국에는 다른 또래 배우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역할까지 소화할 수 있게끔 하는 또 하나의 무기가 된 셈이다.
그는 “어떤 작품이든 주어진 역할이 있으면 열심히 할거라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일할 수 있겠더라. 그래서 ‘어떤 역할이든 주세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예전에는 미팅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지금은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더 재밌고 많은 대본을 보게 된다. 역할도 다양하다. 이전에는 이렇게 많은 대본을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다고 생각하니 너무 좋다”며 “어떻게 보면 옛날엔 로코 같은 것만 했다. 지금은 안 해봤던 역할을 너무 많이 해볼 수 있다. 이모 역할이나 슈퍼 사장님 역할도 해볼 수 있고. 그런 거에 있어서 도전 많이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기대가 된다”고 달라진 마음가짐을 전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진짜 많이 성장했다”고 밝힌 한그루는 “세상과 내 직업을 바라보는 생각이 많이 변했다. 사실 제 인생을 봤을 때 배우로서는 당연히 커리어가 중간에 끊긴 게 좋은 게 아닐 수 있지만 필요했던 시간이라고 생각하게 되더라. 만약 일을 안 쉬고 결혼이나 이혼 경험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 ‘왜 저렇게 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바쁘게 살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게 쉽지 않고 사람이 높아질수록 옆에서 빈말로 격려해주는 사람이 훨씬 많아지니까 그에 취해 있기 쉽다. 그런데 한 발짝 멀리 있다가 다시 들어오면서 배우도 직업일 뿐이지 내가 특별해서 배우가 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진짜 많이 바뀌었다. 그게 제일 크고 감사한 성장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신데렐라 게임’을 하면서도 선배 배우들에게 애티튜드를 많이 배웠다고. 그는 “스태프들한테 너무 잘하고 후배인 저희도 진짜 잘 챙겨주신다. 뭔가를 물어보면 너무 잘 가르쳐주시고, 항상 일찍 와계신다. 그런 사소한 생활습관들이 ‘저 사람이 계속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한 모든 걸 설명해줬다. 그런 게 좋은 자극이 됐다. 계속 저런 생각들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걸 많이 불어 넣어줬다”고 감사를 표했다.
배우로서의 감각을 돌이키는 훈련도 됐다. 한그루는 “처음에 대사를 외우는데 머리가 안 돌아가더라. 외웠는데 와서 다 잊어버리고. 일일드라마는 양이 많지 않나. ‘어떻게 하냐’ 했는데 하다 보니 되더라. 일일드라마를 하게 된 게 어떻게 보면 훈련을 해보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미니시리즈는 이렇게 선생님들과 밀착해서 작품을 할 수 없지 않나. 선배님 옆에 붙어 있으면서 초심도 잡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가르쳐주셨다”고 털어놨다.
앞으로 ‘폭싹 속았수다’의 전광례(염혜란 분)처럼 꾸며지지 않은 진짜 날것의 모성애를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밝힌 그는 “또 일일드라마를 할 수 있냐”고 묻자 “처음에는 힘들어서 최소 2, 3년은 못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제작사에서 ‘8개월 후에 일일드라마 들어간다고 하면 할 수 있어?’라고 물어보셨을 때 바로 ‘네’라고 했다. 해야죠”라며 웃었다.
한그루는 “연기하는 것도 재밌고, 명확한 목표가 있다. 어릴 때는 내가 왜 일을 하는지 몰랐다. 18살 때부터 연기를 했는데, 맨날 시키니까 했지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은지 확실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너무 명확하다. 내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연기고, 또 아이들을 키워야 하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게 확실한 동기다. 이게 확실해지니까 뭔가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심플해 지더라”라고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저는 친숙한 배우가 되고 싶다. 어느 작품에 어떤 역할로 나와도 이질감 없이 볼 수 있는. 기존에 해왔던 역할들도 다 너무 좋았지만 사실 제 환경이 여러가지로 바뀌어서 돌아왔지 않나. 그래서 다양한 역할로 대중분들을 만나 뵀으면 좋겠다. 감사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고, 너무 행복했는데 그게 연기를 통해 시청자분들께도 전달되는 것 같더라. 진심이 닿는 배우가 돼서 많은 곳에서 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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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그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