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도 아닌데…되게 무안했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유격수 심우준(30)이 이적 첫 홈런을 결승포로 장식했다. 최고참 류현진을 비롯해 팀 동료들의 무관심 세리머니에 당황하면서 더욱 잊지 못할 순간이 됐다.
심우준은 지난 29일 대전 LG전에서 2-2 동점으로 맞선 4회 솔로 홈런을 폭발했다. LG 좌완 선발 송승기의 4구째 몸쪽에 붙은 시속 146km 직구를 작정한 듯 강력한 몸통 회전을 통해 잡아당겼다. 잘 맞은 타구는 쭉쭉 뻗어나가더니 좌측 담장을 살짝 넘어갔다. 비거리 105m, 시즌 1호 홈런. 한화의 3-2 승리를 이끈 결승 홈런이었다.
기분 좋게 베이스를 돌고 1루 덕아웃에 돌아온 심우준. 김경문 감독과 코치들로부터 축하를 받았지만 선수들에게서 외면을 받았다. 메이저리그식 ‘사일런트 트리트먼트(Silent Treatment)’로 신인급 선수들이나 외국인 선수들이 첫 홈런을 쳤을 때 주로 하는 일종의 신고식이다.
한화 소속으로 기록한 첫 홈런이었고, 동료들은 침묵으로 맞이했다. 올해로 12년차가 된 심우준은 조용한 덕아웃을 보곤 당황했다. 류현진과 채은성부터 무표정으로 다른 곳을 바라봤고, 후배 문동주는 덕아웃에 턱을 괴며 심우준을 외면했다. 지난해 상무에서 전역한 뒤 KT로 돌아와 첫 홈런을 쳤을 때도 경험한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그 강도가 세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경기 후 심우준은 동료들의 무관심 세미머니에 대해 “처음은 아니다. 작년에 전역하고 나서 KT에서도 했는데 그때는 별로 무안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되게 무안했다. 걸어들어오는데 (류)현진이 형부터 표정들이 아예 웃을 생각을 안 하더라. (덕아웃) 뒤로 들어갈 뻔 했다”며 웃은 뒤 “나중에 다들 환호해주셔서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심우준에겐 그동안 스트레스를 날려보낼 수 있는 한 방이었다. 지난해 시즌 후 4년 최대 50억원에 한화와 FA 계약한 심우준은 개막전 7회 결승 2루타로 시작했지만 이후 극심한 타격 부진에 빠졌다. 29일까지 시즌 25경기 타율 1할8푼4리(76타수 14안타) 1홈런 6타점 OPS .491. 이달 중순에는 허리에 담 증세로 4경기에 결장하는 등 몸과 마음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심우준은 “팀이 이기고 있지만 타격에서 도움이 안 되다 보니 저 혼자 답답한 부분이 있었다. 티를 낼 수도 없고, 최대한 참고 수비에 집중했다”며 “오늘 홈런이 특별한 의미가 될 것 같다. 결승 홈런이 될 수 있게 막아준 우리 투수들과 베테랑 포수 (이)재원이 형, 좋은 수비를 한 우리 야수들까지 모든 선수들에게 감사하다”고 동료들에게 고마워했다.


지난 주말 대전 KT전부터 최근 3경기 연속 안타로 조금씩 타격감이 잡히는 모습. 이날 홈런도 실투가 아니라 몸쪽에 잘 붙은 직구를 공략한 것이라 의미가 있다. 심우준은 “타격 컨디션이 워낙 안 좋고, 카운트 싸움도 안 되다 보니 (포인트를) 앞에 두고 강한 타구를 그라운드 안에 넣으려고 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스윙을 돌린 게 좋은 결과로 나왔다”고 설명했다.
타격은 아쉽지만 심우준은 원래 수비에 특화된 선수다. 유격수로서 물샐틈없는 수비가 한화 마운드 안정화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심우준은 “투수들이 잘 던지고 있고, 수비에서 책임감은 늘 있다. 잘 던지다가 실수 하나가 나오면 팀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연습할 때부터 매 경기 수비에 집중하고 있다. 못 치더라도 수비는 어떻게든 집중해서 최대한 점수를 안 주려고 했다”며 “저뿐만 아니라 (노)시환이, (이)도윤이, (황)영묵이도 수비를 잘하고 있다. 그래서 팀 전체가 좋아지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지난 27일 KT전도 7회 쐐기 1타점 3루타를 터뜨렸던 심우준이 9번 타순에서 이렇게 하나씩만 쳐줘도 수비 기여도를 포함해 한화에 엄청난 힘이 될 수 있다. 심우준도 “하루에 하나씩만 친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노아웃이나 원아웃에 누상에 나가서 움직여주고 상대를 흔들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 답답하긴 하다. 앞으로 더 출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앞으로는 저 덕분에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게, 타격 쪽에서도 조금 더 잘하겠다”고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