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리 와봐, 잘 먹고 잘 살아라" FA로 떠났지만…이렇게 격의 없는 스승과 제자 봤나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25.04.29 12: 41

“너 이리 와봐.”
지난 26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 프로야구 KT 위즈 이강철 감독은 경기 전 타격 훈련 때 배팅 케이지 쪽에서 친정팀 KT 선수들과 만나 담소를 나누는 한화 이글스 투수 엄상백(29)을 보곤 “다른 팀들한테는 작살이 나더니 우리한테만 6회까지 던졌다”며 괘씸한 표정을 지었다. 
엄상백은 그 전날(25일) KT전에 선발등판, 6이닝 4피안타 2볼넷 1사구 6탈삼진 1실점으로 첫 퀄리티 스타트에 성공했다.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하며 승리는 거두지 못했지만 총 투구수 102개로 시즌 첫 100구 이상 투구를 했다. 

KT 이강철 감독(왼쪽)이 26일 경기 전 인사를 하러온 한화 엄상백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waw@osen.co.kr

최고 시속 148km, 평균 143km 직구(29개)보다 체인지업(61개) 구사 비율 크게 높여 재미를 봤다. 여기에 커터(7개), 커브(5개)를 간간이 섞어 던지며 KT 타자들을 제압했다. 앞서 4경기에선 1승3패 평균자책점 6.89로 부진하며 기대에 못 미쳤지만 친정팀과 첫 대결에서 반등에 성공했다. 
엄상백이 3루 덕아웃으로 인사를 하기 위해 성큼성큼 다가오자 이강철 감독은 기다렸다는 듯 “너 이리 와봐. 6회까지 던진 거 어제가 처음이지?”라며 살짝 긁은 뒤 “잘 던져라. 다른 팀하고 할 때도 잘해라”며 엄상백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오랜만에 만난 이 감독을 끌어안은 엄상백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했다. 
한화 엄상백. 2025.04.18 / dreamer@osen.co.kr
엄상백은 2015년 1차 지명으로 KT에 입단한 뒤 지난해까지 10년의 시간을 수원에서 보냈다. 2019년 KT 지휘봉을 잡은 이 감독과도 5시즌을 함께하면서 수준급 선발투수로 성장했다. 이를 발판 삼아 지난해 시즌 후 4년 최대 78억원 조건에 한화로 이적했다. 팀은 떠났지만 스승과 제자로서 격의 없는 친분은 여전하다. 
이 감독은 엄상백을 향해 “너무 부담 갖지 마라. 내가 첫 FA였잖아. 잘 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할수록 더 안 되더라. 상백이 너도 편하게 하던 대로 해라”고 말했다. 통산 152승을 거둔 당대 최고 언더핸드 투수로 해태 타이거즈 왕조의 핵심 선발이었던 이 감독은 2000년 FA 1호 이적으로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3년 8억원으로 최고 대우를 받으며 이적한 이 감독은 그러나 무릎 부상 여파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FA 이적 후 부진한 엄상백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경험과 진심에서 우러나는 조언이었다. 
22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2025 신한 SOL BANK KBO리그’ KT 위즈와 한화 이글스의 개막전을 앞두고 한화로 이적한 엄상백이 이강철 KT 감독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2025.03.22 / soul1014@osen.co.kr
이어 이 감독은 엄상백에게 “우준이도 있잖아. 어제도 우준이가 다 해줬더라”며 함께 KT에서 한화로 FA 이적한 유격수 심우준도 언급했다. 25일 경기에서 심우준이 5~6회 두 번이나 3유간 깊은 땅볼 타구를 잡아 정확한 1루 송구로 아웃을 잡아내며 엄상백을 도왔다. 
이 감독은 “우준이 아니었으면 볼 개수 20개는 더 늘어났을 텐데”라며 못내 아쉬워했고, 엄상백도 “그거 2개로 다 끝났습니다”라고 웃으며 이 감독의 말에 동조했다. 
개인적인 안부도 주고받으며 한참 동안 이야기 꽃을 피운 두 사람. 이 감독은 “잘 먹고, 잘 살아라”며 엄상백을 웃으며 떠나보냈다. 엄상백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 감독은 “착한 놈이다. 진짜 착해”라면서 “너무 착해서 나한테 많이 혼나기도 했다”며 씩 웃었다. 이제는 다른 팀이지만 옛 제자를 향한 스승의 애틋함이 묻어났다. /waw@osen.co.kr
2019년 미국 애리조나 투산 스프링캠프에서 KT 이강철 감독이 엄상백을 지도하고 있다. 2019.02.07 /OSEN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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