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마뚜루] 이준희 씨름협 새 회장, ‘씨름판 갑질 근절, 심판 음주 금지’ 등 각종 폐해에 조용한 개혁의 칼을 들다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25.04.08 11: 57

유승민이 대한체육회의 새로운 수장으로 뽑히는 등 올해 초부터 여러 체육 단체를 이끌어가는 얼굴이 대폭 바뀌었다. 이를테면, ‘신선한 변화의 열풍’이 체육계에 불고 있다. 그 가운데 우리네 전통 민속경기인 씨름을 총괄하는 대한씨름협회도 사상 처음으로 프로씨름 1세대인 이준희(68) 전 씨름협회 경기운영본부장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새 회장 자리에 올랐다.
사실 연배로 따지자면, 그의 회장 선출은 뒤늦은 감이 있었다. 그만큼 그동안 씨름판의 ‘인물 쇄신’이 더뎠다는 뜻도 되겠다.
이준희 씨름협회 회장은 그야말로 ‘준비된’ 인물이었다. 선수 시절 ‘씨름판의 신사’라는 그럴싸한 별명으로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그는 지도자로서도 명성을 날렸고, 은퇴 뒤에는 협회 경기 분야 담당자로 장기간 씨름판에 몸담고 있었던 터였다. 따라서 그 누구보다 씨름계의 속사정과 이런저런 문제점, 폐해를 잘 알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준희 회장이 취임 이후 가장 먼저 실행한 것은 정실인사 배제였다. 측근 위주였던 옛 인사행태를 불식하고 진작부터 눈여겨 봐두었던 능력 있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무엇보다 판정의 위중, 엄격함을 고려해 심판들이 자칫 오해를 살 수 있는 관계자와의 음주(대회 기간 중)를 철저히 단속하고 있다. 이해충돌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지의 발로였다. 물론 사적인 제약이 아닌 공사 구분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조치였다.
심판진 쇄신을 상징적인 하나의 사례로 들었지만, 이준희 회장이 씨름협회, 나아가 민속씨름이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방만한 협회 운영 개선과 아울러 이른바 외연 확장,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협회 수익 창출 같은, 어찌 보면 당연히 추구해야 할 일들을 목표로 삼은 것은, 장기적으로 실추한 씨름의 위상을 드높이겠다는 각오를 세웠기 때문이다.
이준희 회장은 “경기 진행이나 운영자가 아닌 신분으로 현장에 모처럼 돌아와 보니 대회 때마다 지적할 일이 많아 입이 근질근질하다”면서 웃었다. 하지만 위치가 위치다 보니 그 자리에서 바로 말하지는 않는다. 그가 매긴 현재 협회 운영 점수는 60점. 점차 개선해 나가는 방향으로 방침을 잡았다.
이 회장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심판 문제. 심판의 잘못된 판정 하나로 선수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도, 열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판부는 손발이 잘 맞아야 한다. 이인봉 신임 심판위원장이 경험이 많고 철학도 바른 사람이어서 기용하게 됐다. 심판들의 음주를 금지한 것은 사적인 제재가 아니라 특별한 회식이 아니면 대회 중에 ‘장난’을 치지 못하게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뜻이다. 음주측정까지 생각해 봤으나 비용이 너무 들어 포기했다”는 그의 설명에 수긍이 간다. 그렇다고 씨름 심판들이 술을 즐겨 마신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오해를 부를 수 있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는, 협회 나름의 기준선을 둔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회장은 “우리는 다른 종목과 달리 지도자를 심판으로 안 쓴다. 최대한 공정성을 확보하고 편파성을 배제하기 위함이다. 앞으로 판정에는 부심이 좀 더 움직여야 하지만 아직 정착되지는 않았다. 심판운영은 가급적이면 조화롭게 경기로 결판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호각으로 끝내면 안 된다. 벌칙 승부로 직결 안 되도록 ‘첫판은 경고패, 끝판은 경고패 지양’하는 것이다. 씨름 경기의 묘미인 샅바 잡기도 표준화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직원들도 적극적으로 일하도록 유도하는 중이다.
이 회장은 기억력이 비상하다. 예전에는 지인들의 전화번호를 줄줄이 외웠다. 두뇌 회전이 빠르고 판단이 정확하다. 협회 살림살이 확충을 위해 이미 거액(2억 5000만 원)의 광고를 따오기도 했다. 씨름은 시 단위보다는 군 단위 지방자치단체가 선호한다. 씨름협회는 그 점을 적극 활용, 씨름 홍보와 외연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그 맨 앞에 이준희 회장이 서 있다. 그가 직접 발 벗고 나서 뛰고 있다.
바람직한 것은 방송 중계권료를 받는 것이다. 예전 프로 민속씨름 때와는 달리 현재는 협회가 일정액의 중계료를 내고 하는, ‘을’의 위치다. 옛 영화를 되찾으려면 무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씨름판 자체의 몸집은 엄청나게 커졌다. 이름 있는 선수들의 몸값은 보통 계약금만 수억 원에 이를 정도로 활황이다. 자치단체 실업팀의 연간 예산만도 20억 원 이상이다.
중장기로는 민속씨름의 재분리나 씨름 토토의 부활이 과제지만 문화체육관광부와의 조율 등 어려움이 있다. 씨름계가 이준희 회장을 새로 뽑은 것은 개혁이나 분위기 변화에 대한 열망이 분출됐기 때문이다. 이 회장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당연히 부담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준희 회장의 뇌리에는 단계적인 쇄신과 변혁에 대한 구상이 진작부터 자리 잡고 있다. 이제 그런 생각을 현실화하고, 차곡차곡 실천할 일이 그의 앞에 놓여 있다.
글/ 사진. 홍윤표 OSEN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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