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 선수, 이대로 보내기 아쉽잖아요.”
‘배구 여제’ 김연경(37·흥국생명)의 위대한 커리어의 마지막 날이 될 수 있었던 지난 4일 대전 충무체육관. 여자부 챔피언 결정전 3차전을 앞두고 상대팀 고희진 정관장 감독은 김연경에 대해 위트 있는 코멘트로 필승 의지를 보였다.
1~2차전 패배로 벼랑 끝에 몰린 정관장으로선 꼭 잡아야 할 경기. 김연경의 현역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는 날이라 많은 취재진이 현장을 가득 메웠다. 흥국생명의 우승 축포와 김연경의 마지막 순간에 관심이 집중됐다.
고희진 감독은 “많은 주목을 받는 경기인데 저 또한 김연경 선수가 한 경기 더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대로 보내기에는 아쉽다. 정말 잘한다. (2차전에서) 왜 세계 최고 공격수인지 보여줬다”며 “김연경 선수가 한 경기라도 더 뛰는 모습을 전 국민이 기대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역할이 필요하다. 쉽게 못 보낸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축 선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부상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반격은 쉽지 않아 보였다. 세터 염혜선(무릎), 리베로 노란(허리)이 진통제를 먹고 뛰는 가운데 ‘쌍포’ 메가(무릎), 부키리치(발목)도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부상 병동이 넘기엔 김연경의 벽이 너무 높아 보였다.

예상대로 1~2세트를 내주면서 흥국생명이 통합 우승에 한 세트만 남겨뒀다. 이대로 끝날 것 같았던 순간 정관장의 대반격이 시작됐다. 질 때 지더라도 고 감독은 셧아웃만 면하고 싶었다. 3차전을 앞두고 “한 세트만 잡자”고 선수들을 독려했는데 5세트까지 내리 잡을 줄 몰랐다. 벼랑 끝에서 3-2 리버스 스윕을 한 것이다.
2연패 이후 반격의 1승. 단순한 1승이 아니었다. 경기 후 감격한 고 감독은 “V리그 역사에 남을 감동적인 경기라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정상적인 몸 상태라면 그렇게 감동이라고 표현을 못 드릴 텐데…다 부상을 안고 있는 선수들로 다시 이런 경기를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명경기였다. 우리 선수들의 투혼에 박수를 보낸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무릎 통증으로 제대로 움직이기 어려운 염혜선의 투혼은 눈물겨울 정도였다. 염혜선이 통증을 다스리는 시간을 벌기 위해 고 감독이 심판과 대화를 하기도 했다. 불굴의 의지로 토스를 계속 올린 염혜선은 “오늘 안 끝나서 다행이다. 홈에서 끝나면 억울하다. 선수들도 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뛰었고, 4차전도 이겨서 5차전까지 갈 수 있게 매달려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허리 통증에도 수비에서 온몸을 날린 노란은 “다들 힘든 상황이지만 아프다는 게 핑계가 될 순 없다. 아픈 걸로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았다”며 “주변에서 경기 출전을 강요하는 건 없고, 제가 뛰고 싶었다. 이 자리까지 오기 위해 정규시즌부터 고생해왔다. 안 뛰면 너무 허탈할 것 같았다. 걷지 못하고, 너무 아픈 것 아니면 뛰어야겠다는 생각이다”고 진심을 이야기했다.
외국인 선수 부키리치도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었지만 이길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 선수들 모두 힘든 상황을 잘 이겨낸 것 같아 다행이다”며 “발목이 100% 상태는 아니지만 경기를 하면서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자신했다.
챔프전 4차전은 하루 쉬고 6일 오후 2시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다. 대전 홈에서 남의 잔치를 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질 대 지더라도 5차전까지 가고 싶다. 염혜선은 “코트에서 죽자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며 “4차전을 꼭 잡고 인천에 가고 싶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정관장 선수들의 이 같은 결연한 의지라면 김연경의 은퇴가 한 경기 더 미뤄져 챔프전 5차전까지 꽉 채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