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2020시즌 코로나19 사태로 전국, 아니 전세계가 휘청이던 당시 그는 프로유니폼을 입은 전도유망한 정글러였다. 그의 은사였던 ‘씨맥’ 김대호 징동 감독은 그를 가리켜 전성기 시절의 ‘타잔’ 이승용과 비유하기도 했다.
‘씨맥’ 김대호 감독 이외에 그를 지켜본 수많은 전문가들도 초중반 설계능력에 합격점을 내렸지만, 2025시즌 그의 현 주소는 퇴보였다. 유망주 시절 꿈꾸고 그리던 LCK 무대에서 그는 식스맨과 하위권 팀 정글러 였을 뿐이었다.
자칫 해외 진출을 고려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그는 자존심을 버렸다. 어느덧 신예 유망주에서 1부 무대를 경험한 베테랑 선수가 된 그는 그간 자신을 향한 비판과 조롱을 감내하고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었다. 단지 인정받고 싶고, 다시 일어서고 싶었다. 그리고 결국 성적으로 여전히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바로 KT 챌린저스팀의 정글러 ‘영재’ 고영재의 이야기다.

지난 27일 서울 홍익대 아트앤디자인밸리 WDG 스튜디오에서 열린 ‘2025 LCK CL’ 킥오프 결승전 T1과 경기에 KT의 정글러로 나선 ‘영재’ 고영재는 유망주 시절 많은 이들에게 인정 받던 자신의 강점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팀의 3-1 승리를 견인했다.
LCK CL 킥오프 결승전 MVP는 ‘영재’ 고영재에게 돌아갔다. 1세트 세주아니로 ‘지니’ 유백진의 아지르와 찰떡호흡을 과시하면서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고, 2세트에서는 자신이 신짜오로 협곡을 뒤흔들며 우승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았다. 2-1로 앞서던 4세트에서도 킨드레드로 고비마다 팀원들을 보호하면서 끝내 결승전의 주역에게 주어지는 MVP에 선정됐다.
무대가 1부에서 2부로 바뀌어 움츠렸을거라 걱정은 기우였다. 오히려 별렀던 자신의 기량을 성과로 증명했다. 한창 분위기가 좋았을 때 분위기메이커였던 그답게 “3-0으로 이길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쉽게 한 세트를 내줬다”며 유쾌한 웃음과 함께 너스레를 떨었다.
고영재는 “조금 아쉬운 승리라도 이겨서 기분 좋다”며 환한 웃음으로 우승 소감을 전했다.

‘캐스팅’ 신민제, ‘지니’ 유백진 , ‘파덕’ 박석현, ‘피터’ 정윤수에 식스맨으로 있는 ‘세로’ 안효찬까지 후배들의 든든한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었다. ‘피터’ 정윤수는 의례적인 말이 아닌 진심을 담아 “영재형에게 많은 걸 배운다”며 우승 인터뷰 중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진지함 속에서도 그의 넉살도 여전했다. 고영재는 “챌린저스를 3, 4년만에 온 것 같아 약간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할수록 여기서는 내가 제일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음 시즌도 열심히 해볼 생각”이라며 절정의 경기력으로 팀의 우승을 이끈 자신을 뿌뜻해했다.

이제 곧 움츠렸던 개구리가 뛰어다니는 경칩이다. 다가올 정규시즌에서도 2부를 감내하면서도 다시 끌어올린 그의 노력이 빛나기를 기대해본다. 고영재 또한 자신과의 약속으로 다가올 시즌의 각오를 피력했다.
“이제 시작이라 생각하고, 꼭 정규시즌에서도 좋은 모습으로 우승하도록 하겠다.” / scrapp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