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려고, 7600억 적자 기업에서 야구팀이 부활했다…닛산자동차 16년 만에 재시동
OSEN 백종인 기자
발행 2025.02.19 08: 15

[OSEN=백종인 객원기자] 준비에만 1년 넘게 걸렸다. 단장이 부임하고, 새로 감독을 모셨다. 그때부터 선수들을 하나하나 뽑았다. 전국을 돌며 유망주만 엄선했다. 22명의 파릇한 젊은이들이 모였다. 오래 비웠던 그라운드도 이곳저곳도 꼼꼼히 손봤다.
그렇게 다시 시동을 걸었다. 무려 16년 만이다. 의욕적인 새 출발을 세상에 알렸다. 역사 뒤편으로 사라졌던 사회인 야구팀 닛산자동차가 부활했다.
지난 17일의 일이다. 팀의 상징인 ‘블루 버드’가 새겨진 유니폼이 등장한다. 나인들의 힘찬 함성이 야구장에 울려 퍼진다. (블루 버드는 닛산자동차에서 40년 넘게 생산된 베스트셀러 모델이기도 하다.)

17일 공식 훈련을 시작으로 재출범한 닛산자동차 야구팀. 닛산자동차 홈페이지

하지만 벅찬 설렘도 잠깐이다. 주변은 온통 걱정스러운 눈길뿐이다. 모기업의 상황 탓이다.
불과 일주일 전이다. 닛산자동차는 2024회계 연도(2024년 4월∼2025년 3월)에 800억 엔(약 7600억 원)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4분기 실적을 기준으로 순손실을 낸 것은 11년 만이라는 해설이다.
이어진 악재가 주식시장을 흔든다. 돌파구로 여긴 혼다와 경영통합(합병)이 무산됐다. 성사만 됐으면 단숨에 글로벌 3위 완성차 기업이 탄생할 뉴스였다. 그러나 혼다 측이 ‘(닛산을) 자회사로 편입하겠다’라는 조건을 내걸며 협상이 깨졌다.
가뜩이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압력에 예민한 상태다. 닛산의 주가는 계속 하락세다. 그룹 내에서도 우려가 높다. 전 세계적인 생산 라인 축소와 추가적인 구조조정이 예상되는 시국이다. 앞으로 생존 기간이 길지 않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야구부가 뛰기 시작한 것이다.
1984년도 전국대회 우승 장면. 닛산자동차 홈페이지
감독에 취임한 이토 유키(52)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다. 그는 16년 전 해체 당시 선수였다.
“역사가 있는 팀의 부활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부담이 큰 게 사실이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없다. 기대할 만한 선수들이 모였다. 그들의 힘찬 투지가 회사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것으로 믿는다.”
닛산자동차는 1959년에 창단된 팀이다. 웬만한 프로구단 못지않은 연혁을 자랑한다. 전국대회(시도대항전)에서 2차례나 정상에 올랐다.
이름이 알려진 프로 선수도 꽤 여럿 배출했다. 주니치 시절 이종범의 팔꿈치에 골절상을 입혔던 투수 가와지리 데쓰로가 이곳 출신이다. 한신 타이거스와 긴테쓰 버팔로즈(오릭스로 통합) 등에서 통산 60승(72패)을 올린 잠수함이다.
오릭스의 투수 가와코에 히데타카(54승 76패)와 세이부 라이온즈의 우완 노가미 료마(58승 63패)도 여기서 잔뼈가 굵었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잠실) 때 한대화에게 3점 홈런을 허용한 세키네 히로후미도 당시 소속팀이 여기였다.
그러나 50년 전통도 세파를 이기지 못했다. 2009년 리먼 사태의 직격탄을 맞았다. 모기업이 흔들리며, 야구부와 탁구부, 육상부 등이 모두 문을 닫아야 했다. 다만 해체가 아닌 ‘휴부(休部)’라는 형태로 발표됐다.
2009년 마지막 경기를 끝내고 눈물짓는 나인들. 닛산자동차 홈페이지
야구부의 부활이 결정된 것은 2년 전이다.
당시만 해도 모기업의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전임 CEO(카를로스 곤)의 퇴출 이후 실적이 호조로 돌아섰다. 매출과 영업이익 등이 완연한 회복세를 보였다.
그러면서 향수를 자극하는 발표가 나온다. 차갑게 식은 그라운드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계획이다. 1년간 다시 팀을 구성하고, 2025년 상반기에는 응원석을 함성으로 채운다는 희망이었다.
그런 꿈이 실현된 것이 17일의 공식 훈련 재개였다. 22명의 젊은 유망주들과, 많은 보도진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또다시 안타까운 벽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토 감독은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회사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는 것 같다. 팀도 마찬가지로 쉽지 않다. 활동 재개 1년째부터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것은 어떤 지 모르겠다. 이쪽 지역에는 워낙 강한 팀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젊은 선수들로 이뤄졌다. 가능성은 무한대라고 생각한다.”
그는 숨 가쁘게 뛰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덧붙인다.
“나 자신이 16년 전의 아픔을 직접 겪었던 사람이다. 당시에도 비슷했다. 지금은 야구부의 존재 가치를 느껴주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늘리는 것이 큰 미션이다. 저들을 보시라. 모두가 상황을 알고 있지만, 22명 중에 누구 하나도 그만두겠다는 친구는 없다. 아무도 절망하지 않는다. 각자 열심히 치고, 달릴 뿐이다.”
1965년 닛산을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 닛산자동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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