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이 스프링캠프까지 데리고 와주실 줄은 몰랐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김경문 감독은 신인 선수의 지명 순번이나 이름값에 얽매이지 않는다. 두산 시절 육성선수로 입단한 김현수(LG)를 중심타자로 발탁하는 등 수많은 무명 선수들을 스타로 키워낸 김경문 감독은 선수의 숨은 가능성과 간절함을 눈여겨본다. “프로는 일찍 지명됐다고 해서 성공하는 곳이 아니다. 밑에서 들어온 선수들이 더 열심히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곳이 프로다. 숨은 노력과 보이지 않는 노력으로 자기 것을 끄집어내는 선수가 프로에 와서 이기고 성공한다”고 말한다.
음지에서 묵묵히 노력하는 선수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자 하는 김 감독은 이번 호주 멜버른 스프링캠프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젊은 선수들을 여럿 데려왔다.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하고 들어온 육성선수 신분의 신인도 두 명이나 이례적으로 1군 스프링캠프에 합류했다. 투수 박부성(25)과 함께 내야수 이승현(23)이 그 주인공이다.
포항제철고-성균관대 출신 우투좌타 내야수 이승현은 고교 시절 포함 두 번이나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낙방했다. 지난해 9월 열린 2025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11라운드 마지막 순번까지 이승현의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이승현은 “드래프트 당일에 경기를 뛰고 있었다. 현장 중계를 직접 못 봤지만 경기 중에 지명이 안 된 걸 알았다. 고등학교 때 지명이 안 됐고, 대학에 와서 4년이란 오랜 시간을 열심히 준비했다. 4학년 때 성적도 나쁘지 않아 지명을 기대했는데 안 돼 너무 아쉬웠다”고 떠올렸다.
야구를 그만둬야 할 상황이었지만 한화에서 연락이 왔다. 따로 발표도 없는 육성선수 계약이지만 그토록 바라던 프로 문턱을 밟았다. 그는 “지명 안 되면서 ‘난 여기까지인가’라고 생각했는데 한화에서 좋은 기회를 주셨다. 육성선수라도 프로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기뻤다”고 말했다.
절실함을 안고 한화 유니폼을 입은 이승현은 빠르게 김경문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다. 지난해 10월 대전에서 열린 신인 첫 훈련 때부터 수비력으로 존재감을 어필했고, 11월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캠프에 따라갔다. 이어 올해 1군 스프링캠프까지 참가하면서 가능성을 계속 테스트받고 있다.

이승현은 “육성선수로 들어와 마무리캠프를 간 것만으로도 좋았다. 솔직히 스프링캠프는 기대를 안 했는데 서산에서 운동을 하다 명단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경문) 감독님께서 스프링캠프까지 데리고 와주실 줄은 몰랐다. 정말 큰 기회를 주셔서 영광이었고, 더욱 잘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고 말했다.
177cm, 77kg으로 체구는 작지만 빠르고 민첩한 이승현은 주 포지션이 유격수로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한다. 한화에 들어와선 유격수와 2루수를 같이 연습하고 있다. 수비력을 앞세워 1군 스프링캠프에 왔지만 지난해 대학리그에서 21경기 타율 3할7푼2리(78타수 29안타) 2홈런 17타점 13도루로 타격과 주루에서도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였다. 스스로도 “엄청 빠른 건 아닌데 자신 있게 뛴다. 타격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신 있다”고 당차게 말했다.
스프링캠프에서 FA로 한화에 합류한 유격수 심우준에게 여러 가지로 많이 배우고 있다는 이승현은 “앞으로 남들이 봤을 때도 야구에 진심이고, 진짜 야구가 좋아서 하는 선수로 보이고 싶다. 타격도 중요하지만 야구는 수비가 우선이고, 제게 공이 오면 무조건 아웃이라는 편안한 느낌을 주고 싶다”며 “육성선수는 5월부터 (정식선수로) 1군 등록이 가능하다. 스프링캠프에서 최대한 좋은 모습을 보여 5월부터 콜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waw@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