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FA 시즌을 맞아 선발 복귀가 또 다시 무산됐지만, 대신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불펜에서 최고의 투수로 우뚝 선 뒤 스토브리그에서 보상을 받는 것이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우완투수 이영하(28)는 2025시즌을 무사히 잘 보내면 대망의 FA 자격을 얻는다. 기나긴 학교폭력 법정 공방(무죄 판결)으로 인해 등록일수를 손해 본 그는 2026시즌이 끝난 뒤 FA 권리 행사를 바라볼 수 있었지만, 작년 11월 프리미어12 참가로 등록일수를 획득, 올해 예비 FA 시즌을 맞이하게 됐다.
이영하는 “내가 예비 FA라는 게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평소와 똑같은 기분으로 지내고 있다”라며 “물론 올해가 끝나면 FA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많이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야구를 가치 있게 하려고 하다 보면 구단에서 잘해주시지 않을까 싶다”라고 덤덤한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고 평소와 똑같이 시즌 준비를 한 건 아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미니캠프에 참가해 비활동기간을 알차게 보냈고, 자비를 들여 스프링캠프 선발대 편성을 자처했다. 이영하는 지난 19일 양의지, 정수빈, 양석환, 김대한, 이병헌 등 동료 5명과 함께 본진보다 닷새 먼저 스프링캠프가 펼쳐지는 시드니 블랙타운 야구장으로 향했다.
이영하는 “이번에도 일본에서 훈련을 해서 좋았다. 작년과 달리 동료들(김민규, 박신지, 박웅)과 함께 하니까 더 재미있었고, 운동도 훨씬 많이 했다”라며 “올해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만큼 중요한 시즌이라서 준비를 잘하고 싶다. 스프링캠프에서도 최대한 많은 공을 던지는 게 목표다”라고 비장한 각오를 전했다.

다만 ‘17승 에이스’의 귀환을 꿈꾸는 이영하는 이번 시즌 또한 사령탑의 선발진 구상에 들지 못했다. 이승엽 감독은 지난주 창단기념식에서 콜 어빈-잭 로그-곽빈-최승용 4선발에 최원준, 김유성, 최준호가 5선발 경쟁을 펼친다고 발표했다. 이영하는 올해도 감독이 믿고 쓰는 전천후 역할을 맡을 전망.
이영하는 “사실 선발투수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는데 선발투수도 중간투수도 다 투수가 아닌가. 이제는 그런 마음이 조금 없어진 거 같다”라며 “비시즌 조금 더 가치 있는 선수가 되는 길이 무엇일지 생각했는데 선수는 감독님, 코치님이 내보내주시지 않나. 어느 자리에서든 던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게 우선이다. 투수가 필요할 때 감독님이 나부터 찾을 수 있게 만드는 게 목표다. 물론 선발을 하고 싶지만, 이게 더 가치 있는 일이다”라고 성숙한 마인드를 뽐냈다.
홀드와 같은 FA 계약에 도움이 될 만한 타이틀 욕심도 없다. 이영하는 “타이틀 욕심은 없다. 감독님, 코치님이 누구를 내보낼지 고민할 때 내가 나가는 게 타이틀이다. 아무 때나 나가서 계속 잘 던지는 투수가 되는 게 큰 목표다”라고 말했다.

이영하는 FA 대박의 조건으로 팀의 6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꼽았다. 그는 “모두 정신 차리고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이 뭐가 필요한지 알고 준비를 해야 한다”라며 “재작년과 작년 모두 5위를 했는데 사실 5위로 끝나면 뭐를 한 거 같지도 않다. 가을야구 느낌도 안 난다. 플레이오프는 가야 가을 실감이 난다. 올해는 가을이 금방 끝나지 않도록 캠프부터 준비를 잘해야할 거 같다”라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우승하면 B 정도 성적을 내도 A로 쳐주지 않나. 우승하면 다 좋다. 팀 우승에 내가 많은 보탬이 되고 싶다”라며 “FA는 사실 내 복이다. 복이 있으면 잘 될 거고, 복이 없으면 힘들 것이다. 우승을 한 번 더 해보고 싶다”라고 밝혔다.
이승엽 감독은 지난주 창단기념식에서 “감독 부임 후 3년 안에 한국시리즈를 하겠다는 공약은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 팀 전력이 타 팀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라고 계약 마지막 해 한국시리즈 진출을 목표로 내걸었다.
지난 2019년 처음으로 우승을 맛본 이영하가 사령탑의 공약에 큰 힘을 보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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