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희 거르고 이대호’
과연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상황을 상상이나 했을까. 이제 롯데 타선의 중심이 누구인지를 상대팀이 입증하고 인정했다.
롯데는 지난 27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SSG와의 맞대결에서 연장 12회 무승부 끝에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올 시즌 첫 무승부였다.

롯데는 토종 에이스 박세웅을 선발로 내세웠다. 그런데 SSG도 국가대표 좌완 김광현이 선발 등판했다. 무게추가 어디로 기울지 쉽사리 예상하기 힘들었다. 결국 두 투수가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박세웅이 6이닝 108구 7피안타 1볼넷 7탈삼진 1실점 역투를 펼쳤다. 김광현도 6이닝 2피안타 2볼넷 10탈삼진 1실점(비자책점) 역투.
이후 롯데는 물론 SSG의 불펜들까지 완벽투로 타선을 틀어막았다. 어느 한 쪽으로 경기가 기울지 않고 경기는 연장으로 흘렀다.
롯데가 승부를 끝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11회말 선두타자 안치홍이 중전 안타로 출루했고 정훈의 희생번트로 1사 2루 기회를 잡았다. 한동희, 이대호로 이어지는 타석. 투수교체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가능했다. 여기서 SSG는 의미심장한 선택을 했다.
SSG는 한동희를 자동 고의4구로 걸리면서 1루를 채웠다. 1사 1,2루의 위기 상황에서 레전드 타자인 이대호와 승부를 택했다. 그러면서 마운드를 파이어볼러 유망주 조요한으로 교체했다. 결과적으로 롯데는 이대호가 병살타를 때려내면서 끝내기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1-1 무승부로 그대로 끝났다.
‘한동희 걸리고 이대호’라는 SSG의 선택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올해 한동희는 ‘리틀 이대호’의 호칭을 뛰어넘어서 이대호의 전성기 시절을 방불케 하는 타격 성적을 기록 중이다.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타율 4할1푼8리(79타수 33안타) 6홈런 17타점 OPS 1.213 득점권 타율 4할2푼9리의 특급 성적을 기록 중이다. 타율, 홈런, OPS 부문에서 리그 1위를 기록 중이다.
그렇다고 이대호의 성적이 나쁜 것도 아니다. 불혹의 은퇴 시즌에도 타율 3할6푼4리(77타수 28안타) 2홈런 9타점 OPS .882의 최상급 성적을 기록 중이다. 무엇보다 이대호의 아우라는 클러치 상황에서 빛을 발휘한다. 나이가 들어도 이대호에 대한 이미지는 변하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SSG 벤치에서는 현 시점에서 이대호보다는 한동희의 파괴력과 경기 영향력이 더 위협적이라고 판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롯데 타선의 중심은 더 이상 이대호가 아니라 한동희라는 것을 SSG 벤치의 자동 고의4구 선택으로 확인한 셈이다.

이대호는 언제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한동희가 롯데 타선을 이끌어주기를 바랐다. 공개 석상에서 한동희가 더 잘했으면 바람을 꾸준히 드러냈다. 과거에는 바람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이대호의 바람을 한동희가 이루고 있는 듯하다. 한동희 스스로도 롯데 타선을 이끌었던 우상의 부담감을 몸소 체감하면서 이를 짊어지고 이겨내려고 한다.
그는 “(이)대호 선배님은 항상 ‘네가 잘해야 내가 편하게 은퇴할 수 있다’라고 농담 같은 진담을 하시는 것 같다”라면서 “어차피 은퇴를 번복하실 생각은 없으신 것 같으니 제가 잘하는 수밖에 없다. 칭찬도 많이 해주시고 노하우를 많이 가르쳐주신다. 많은 추억을 쌓으려고 노력하는데, 그동안 많이 챙겨주신만큼 이제 계속 보답하고 있는 것 같다. 선배님의 은퇴 시즌이라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라고 말하며 이대호 후계자라는 타이틀에 누가 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다졌다.
본인의 의지가 현재 타석에서 기록으로 나타나고 있다. 승부처 상황에서 이제는 이대호라는 레전드 타자를 제치고 최고의 경계대상이 됐다. 롯데가 자체적으로 정리할 필요 없이 상대팀의 행동으로 그 사실이 입증이 됐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