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와이번스가 2018 한국시리즈에서 업셋 우승을 했다. 2010년 이후 8년 만에 거둔 네 번째 우승이다. SK왕조의 역사가 희미해지는 순간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아직은 KBO리그 최강은 아니다. 이번 우승은 새로운 왕조를 향한 첫걸음이다. 몇 회에 걸쳐 V4의 장정을 짚어본다.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순간, 그라운드의 가장 높은 곳에서 한 선수가 양팔을 치켜들며 환호하고 있었다. SK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짓는 공을 던진 그 선수 주위로 동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국시리즈라는 치열한 정글. 마지막 순간 서 있던 최후의 선수는 바로 SK의 에이스 김광현이었다. 2018년 11월의 일이다.
그러나 시계를 1년 6개월 전으로 돌렸을 때, 김광현은 스스로 재기를 장담하지 못하고 있었다. 불과 18개월 전 김광현은 불안한 상상에 휩싸인, 보통의 재활 신분 선수였다.

“과연 이 팔로 다시 전력투구를 할 수 있을까”
수술 후 기브스를 푼 김광현은 낙담했다. 밝은 미래를 기약하며 수술대에 올랐고, 재활 과정이 힘들 것이라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각오를 했던 부분이었다. 그런데 막상 팔이 움직이지 않자 온갖 생각이 그간의 다짐을 흔들어놓기 시작했다. 왼팔이 가동범위는 현격하게 제한되어 있었다. 야구 선수 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2017년 초 팔꿈치인대접합수술(토미존 서저리)을 받은 김광현은 1년의 재활 시기를 보냈다. 김광현은 “가장 힘들었던 시간”에 대한 질문에 “수술을 하고 나서 기브스를 풀었을 때”라고 떠올린다. 김광현은 “팔이 예전만큼 움직이지 않았다. 이 팔로 예전처럼 전력을 다해 던질 수 있을지 조차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길게 자란 머리카락에는 멋이 아닌, 고민이 담겨져 있었다.
몸이 아픈 것은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어느 정도 예상을 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마음을 짓누르는 중압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자신의 수술 당시 사진을 본 김광현이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수술 과정을 촬영한 동영상은 차마 꺼내보질 못했다. 김광현은 “운동이 힘든 것보다는, 정신적인 부분이 많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김광현의 화려한 귀환 이면에는, 1년의 아픔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주위에서 힘과 용기를 줬다. 이승호 당시 재활코치와 고윤형 컨디셔닝코치는 김광현이 넘어지지 않게끔 항상 옆에 있었다. 김광현은 “코치님들께서 최대한 편하게 해주셨고, 격려도 많이 해주셨다. 사실 아픈 게 가장 스트레스였는데 코치님들의 배려가 정말 고마웠다”고 했다. 김광현은 1년 동안이나 자신을 헌신적으로 돌본 코치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재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결과는 2018년의 대활약이었다.
팔꿈치 인대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진 김광현이었다. 1년간 뛰지 못한 설움을 날리기라도 하듯 시즌 초반부터 위력적인 공을 던졌다. 김광현은 올 시즌 25경기에서 136이닝을 던지며 11승8패 평균자책점 2.98의 뛰어난 성적을 냈다. 규정이닝에 8이닝이 모자랐지만, 평균자책점은 단연 토종 1위의 성적이었다. 어깨와 팔꿈치 때문에 고전하던 김광현은 리그 최고의 투수라는 수식어가 틀리지 않았음을 멋지게 입증했다.
선수 자신의 엄청난 의지, 코칭스태프의 각별한 노력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김광현이었다. 그리고 SK는 여기서 또 하나의 결정을 내린다. 바로 김광현의 이닝 제한이었다. 2018년 1년이 아닌, 2019년 이후 10년을 바라본 선택이었다. 순위 싸움이 급한 상황에서 대단한 전략이자, 또한 대단한 인내였다. 다시 출항을 알린 김광현이라는 배는, 세심한 관리 속에 험한 물살을 헤쳐 나갈 수 있었다. 물음표는 점차 느낌표로 바뀌었다.
염경엽 당시 단장은 김광현의 이닝 제한이라는 아이디어를 일찌감치 세워두고 있었다. 수술 당시부터 메이저리그(MLB) 사례를 연구했다. 그 결과 복귀 시즌은 평균적으로 110이닝, 2200구 정도를 소화하는 게 탈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트레이 힐만 SK 감독도 이런 생각에 큰 틀에서 공감했다. 계약 기간 마지막 해에 성적이 급할 수도 있었지만, 힐만 감독은 인내심을 발휘하며 김광현의 성공적인 귀환을 도왔다.
전체적으로 투 트랙이었다. 무엇보다 김광현 자신의 생각이 중요했다. 등판이 끝날 때마다, 등판 후 하루를 자고 난 뒤마다, 등판을 앞둔 상황마다 김광현과 코칭스태프 사이에 솔직한 의견이 오고갔다. 심지어 경기 중에도 그랬다. 힐만 감독은 김광현의 건강을 가장 첫 머리에 놓고 경기를 운영해나갔다.

내부적으로는 치열한 토론도 이어졌다. 최근 MLB의 재활 데이터를 놓고 김광현의 올 시즌 소화이닝이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에 대한 논의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논의 결과에 따라 김광현의 휴식 기간이 결정됐고, 때로는 “더 던질 수 있다”는 김광현의 고집을 애써 꺾기도 했다. 하지만 김광현은 구단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건강했다. “팔 상태가 좋아 한 번도 걱정해본 적이 없었다”고 씩 웃은 김광현은 그렇게 조금씩 한계를 돌파하며 최후의 승자가 됐다.
김광현의 승리이기도 했지만, SK 트레이닝·컨디셔닝 파트의 승리, 좀 더 나아가서는 구단 전략의 승리이자 힐만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승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선수와 구단 모두 잘 알고 있다. 이제 풀타임 복귀를 고대하고 있는 김광현은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내년이다. 준비 단계에서 할 것이 많다”면서 “팬 행사가 끝난 12월 1일부로 올 시즌은 잊겠다”고 다짐했다. 가슴 졸인 2년이 끝난 지금, 이제 김광현과 SK는 앞으로의 10년을 내다보고 있다. /skullboy@osen.co.kr